1-5. 진짜 사나이 조지 2세, 그리고 로코코 스타일

총칼이 아닌 '스타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로코코의 사과 표지.jpg

군인가문 하노버 왕가는 전장에서 그 지위를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지금 재위에 계시는 조지2세 폐하는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때에는 실제로 군대를 지휘해서 대륙 원정을 떠나셔서 데팅겐(Dettingen) 전투에서는 프랑스 연합군을 보기 좋게 격파한 전쟁영웅이시기도 하다.

사실 이렇게 전쟁에 나가서 이기고 돌아오면 연회고 뭐고, 국가의 영광이라는 면에서는 다른 것 다 합한 것보다 효과가 크긴 하다. 그러니 문화니 뭐니 신경 안 써도 된다는 걸까.


한마디로 모든 스탯을 다 전투력에 몰빵하는 왕실이다.


조지왕의 군대가 강한 것은


‘야전군의 식사와 왕궁의 식사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


이라는 영국인 다운 유머가 있을 정도다. 왕이 친정하는 진중의 식사는 아무래도 보통의 군대보다는 나았을 것이겠지만, 그보다는 군인 같이 철저한 생활을 하시던 왕의 궁정 식사가 그만큼 화려함을 멀리했다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대개는 장군을 보내서 전투를 치르고, 간혹 친정을 하더라도 황금마차에 비단 천막에 처첩까지 끌고 다니는 군주들도 있을 정도다. 조지왕께서는 큰 키에 승마와 펜싱으로 관리가 잘 된 건장한 체구, 위엄있는 목소리와 엄숙한 표정을 지니신 분이다. 한마디로 누더기를 입혀도 딱 왕이라는 느낌이 오는 그런 분이다. 전장에서는 스스로 왕 이전에 군인으로 행동하시는 분이시다. 진짜 사나이 군인 왕이 병사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행군하는 군대는 바로 강철부대가 된다 해도 절대 과장이 아니다.


데팅겐(Dettingen) 전투만 봐도 이 왕실의 군주들이 군사적으로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연합군이 의견 불일치로 전력도 분산되고 프랑스군의 교란전술로 보급선이 끊겨서 궁여지책으로 하나우(Hanau) 성을 공략하러 진군하던 중에 일어난 전투다.


영국군 입장에서는 상황이 꼬여서 어쩔 수 없이 비교적 만만해보이는 적의 성채를 약탈해서 보급을 해보려는 어정쩡한 행군이었던 반면 이미 이런 움직임을 예상하고 있던 프랑스 군은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국군의 예상 행군로를 따라 마인강 건너편에 포병대를 배치해 두고 있던 프랑스군의 매복에 걸려서 초전부터 측면으로 포탄세례를 받는 고전으로 전투를 시작했다.

영국군으로서는 불의의 포탄세례를 맞아 희생이 늘어나는데 포병대는 마인강 지류를 건너 화승총탄 사거리 밖에 있는데다가, 어렵사리 강을 건너도 거기에는 포병대를 보호하기 위한 프랑스군 분대가 방어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후방으로 우회한 프랑스 부대가 우익과 좌익을 분리하여 난입하니 영국군은 선봉대가 완전히 무너져서 군기를 탈취당하는 상황에 몰렸다. 강을 건너 돌파를 하려는 방침과 후방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엉켜 일순 지휘계통이 마비된 상황이었고, 중군까지 아수라장이 되어 조지왕을 태운 말이 놀라 왕을 낙마시킬 뻔까지 했다.


여기서 프랑스군 야전사령관인 그라몽 공작(Duc de Gramont)이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서 기병대를 돌입시켰다. 문제는 아군이 혼전상태로 돌입하니까 포병대의 포격이 멈췄다는 점이다. 돌입을 늦추고 두어 시간만 더 포탄 찜질을 해주었으면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돌격으로 승리를 결정짓겠다는 그라몽 공작의 판단도 사실 이상할 것은 없었다. 전투야 어쨌든 이겨놓았고, 더 기다리다가 중요한 영국왕이 달아나기라도 하면 잡병들을 아무리 포로로 잡는다 한들 무슨 성과라고 하겠는가. 국왕만 잡으면 이런 전투 열 번 이긴 것 이상의 성과다.

전투가 아니라 전쟁 전체를, 아니 세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한 판 승부다. 대등한 전력이라도 한 번 결사의 돌격을 해보고 싶은 상황인데 하물며 적군의 전열이 다 무너진 이 때야 말할 게 있겠는가. 여기서 돌격을 안 하면 오히려 전략적 사고가 없는 단순한 군인이지.


기세를 한껏 탄 기병대의 돌입은 제대로 성공했다. 영국-오스트리아-네덜란드 연합군이 거의 와해 경지에 이르렀고, 기병대로 전열을 확 흩어버린 이 때 보병대를 돌입시킨 것까지도 계획대로 착착 들어맞았다.

"영국왕은 반드시 생포해라. 절대 죽이면 안 된다!"


이 시점에서 그라몽 공작은 조지왕을 반드시 생포해야한다고 지르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전투지휘를 대신했다고 한다. 이런 정도가 되면 목숨을 구하고자 패닉에 빠진 왕부터 우르르 도피의 행렬을 흩뿌리며 추태를 보이는 것이 정상인 상황이다. '왕'이 죽거나 잡혔을 경우의 후과를 생각하면 그게 오히려 전략적인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하지만.


왕은 중군의 자기 자리를 지키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창병대(Pikemen) 중앙으로 밀집. 화승총대(Musketeers)는 그 양옆으로 벌려서서 사격을 준비한다. 근위 기병대(Royal Guards)는 본부 중대만 짐의 신변에 남고 나머지는 후위로 지원을 가라!"


쩌렁쩌렁 울리는 왕의 명령에 군대는 신속하게 대형을 갖추었다. 일단 대형이 갖춰지니 정신이 들었고, 정신이 드니 이제 아비규환이 아닌 전장으로 돌아왔다. 영국군은 밀집대형의 창병과 화승총 부대의 사격으로 프랑스군의 기세를 무디게 하는데 성공했다, 싶은 순간에 바로 뒤집기 한판으로 전세를 엎어버렸다.

어찌된 일인지 영국군 병사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악귀같이 반격을 시작했다. 창병대는 물론이고 화승총대도 땅에 떨어진 칼이며 창을 집어들고 밀집대열을 전진시키자 손쉬운 승리를 예상하고 포로와 전리품에 눈이 팔렸던 프랑스군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백병전 개시 후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도주의 행렬을 전장에 수놓은 것은 프랑스 군이 되었다. 거기에 와해되어 흩어진 것 같던 선봉대도 전열을 수습해서 반격에 나서니 독안에 든 쥐가 된 프랑스군. 수많은 시신을 남기고 추한 모습으로 퇴각한 것은 조지왕이 아니라 그라몽 공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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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승전은 했지만 초전에 패주해서 위기를 자초한 선봉대의 장교들은 당연히 어떤 문책을 받을까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제군들!”


피해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점호가 끝나고 장군들을 따로 왕의 막사 앞으로 소집했을 때, 아마 몇몇은 영지박탈이나 몇 년간 런던탑(감옥) 생활도 각오했을 것이다. 적어도 선봉대 지휘관인 달림플 백작(John Darlymple)은 말이다. 어찌어찌 전투는 이겼지만 사실 전체 전황은 결코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왕의 부름에 우렁찬 대답이 아닌 씁쓸한 침묵이 흘렀다.


“저들이 나를 경애하는 건 알겠지만 다시는 내게 가까이 오게 하지 말게나.”


그 한마디를 던지시고 왕께서는 바로 막사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어리둥절한 장교들은 처음 서로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깨달은 것은···


용서받았다!


왕께서는 달리 꾸지람도, 문책도 없이 쿨한 유머 한 마디 던지시고 가신 것이다.

이런 왕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는 군인들이 줄을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육군만은 최강이라던 프랑스군이 점점 영국 육군에게도 밀리기 시작한 것은 이런 진짜 사나이 군인왕들이 통치하기 시작한 조지왕조 시대부터다.


프랑스인인 나로서는 씁쓸한 이야기지만 조지왕을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고, 군인의 몸을 타고나지 못한 왕세자께서 문화와 예술에 집착하시는 것이 이해가 되면서 안쓰럽기도 하다. 갈곳 모르던 나를 받아주신 왕세자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할 각오를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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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전설같은 대역전극으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을 승리로 이끈 왕이 귀환하심에 잔치가 없을 수 없는 일이겠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차려내는지 궁금한 나는 왕세자를 모시고 연회장에 참석했는데···.


왕궁의 요리사도 같은 요리사니까 직접적인 비평은 삼가도록 하겠다. 하지만 베르사이유궁의 전승기념회에 비하자면 이건 마을잔치 수준이라고 해야할지··· 루이14세 폐하께서라면 이 정도의 연회로는 승전기념은 커녕 패전 분풀이 식사도 안 될 정도였다는 인상이다.


그런 분위기인지라 로코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한 나의 연회스타일은 조지왕의 궁정에서라면 사치로 비난받았을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사치와 화려함은 나약함’이라는 것은 일찍이 시져의 ‘갈리아 전기’에도 기록되어 있는, 게르만 군인들의 뿌리깊은 사고방식이니까.


게다가 카톨릭 군주를 모시기가 죽기보다 싫어서 차라리 독일인 신교도(영국 국교회도 아닌)를 불러다가 왕으로 모신 이 나라에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유래한 로코코 스타일의 화려함도 카톨릭적인 것으로 몰아서 박해를 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술의 종교화고 종교의 정치화라고나 할까.


일개 요리사인 나로서는 이에 대해서 별로 할 말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그저 내가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뿐이지만, 카톨릭이라니 프랑스인이라니 하는 굴레를 씌워 추락을 노리는 사람들은 궁정 어디서나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세인트 제임스 팰리스의 국왕폐하의 궁정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귀족 나리들의 연회 스타일이 눈에 띄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왕이든 교회든, 권력과 권위로 아무리 내리누르려 해도, 사람들의 욕망은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에 따라 세상은, 문화는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것이다. 신과 왕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안겨주고 광대한 식민지를 개척해준다고 해도, 거기서 들어오는 물산과 부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신과 왕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누구도 입밖에 내서 얘기하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만은 아니라는 것은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기간에 프랑스 상품의 금수조치를 취했는데 런던의 귀부인들(바로 그 남편들은 영국군의 장교로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이 오직 한 가지, 파리의 최신 패션을 반영하는 인형들만은 예외를 두어달라고 청원을 한 일도 있다. 귀부인들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았지만 나는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만은 않다. 세상이란 그렇게, 싸움이나 폭력보다 더 중요한 가치와 힘이 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말하지 않고도 보여주는 역할, 그런 것이 바로 내가 강조하는 ‘스타일’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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