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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겸손 Dec 28. 2020

조디악 다시보기 메모

재조명된 데이비드 핀처 그리고 1970년대의 세계  

"1969년 샌프란시스코의 신문사 앞으로 날아온 연쇄살인범의 편지와 암호문. 그렇게 세상을 몰아넣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조디악 킬러' 하지만 이 희대의 살인마를 잊지 않은 사람들의 인생을 건 추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영화 '조디악'. 감독인 데이비드 핀처는 조디악 추적의  시간을 다룬다. 조디악은 1969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범죄를 저지른 연쇄살인자고, 영화가 다루는 대상은 조디악을 쫓는 사람들이다. 범죄 사건을 일로써 다루는 형사와 지역 기자, 그리고 기자와 같은 신문사에 소속한 삽화가가 그들이다.


1969년 샌프란시스코의 지역신문사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조디악의  편지가 배달되고, 그로부터 20여년에 친 사건 추적의 역사는 시작된다.  2시간 40 동안 22년의  시간을  느껴야만 하고, 지난한 추적의 과정을 끝까지 봐야한다


이 영화를 수 차례 다시 봤는데, 무엇보다 데이비드 핀처라가 다루는 ‘시간’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이야기면에서는 복잡하고, 편집면에서는 철저한 감독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마디를 정해놓고 제대로 분절한 느낌이랄까...


영화의 시간은 첫 편지가 발송된 1969년부터 1992년까지. 어떤 인물이 주가 되느냐에 따라 영화의 리듬감이 확연히 달라진다. 조디악의 범죄 현장이 묘사되는 초반 20-30분은 스릴러로서 관객들에게 공포와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후에는 잔인한 장면은 이후에 나오지 않는다.(이는 조디악의 행적과 일치하긴 한다). 그리고 형사와 기자의 추격, 그리고 조디악 추적의 양상이 달라지는 마지막 남은 1시간의 리듬감, 각자의 추적의 결과가 합쳐지며 마무리될 때까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확실하고, 조직되어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복잡한 암호문과 편지를 경찰이 아닌 신문사에 발송함으로써 지역 사회에 극단적인 불안을 조장한 조작한 조디악언론을 활용함으로써 수사 혼란을 유도   아는 자였다. 여기에 또한 미국의 지리적/공간적 특수성 역시 범죄 수사에 큰 구멍을 남긴다. 인근의  경계를 드나들며 사건을 벌이기 때문에, 3 지역의 형사들이 개별 사건으로 놓고 수사하게 되며, 사건 초기에는 제대로  공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1970년대를 생각하면 영화 속 범죄 수사는 분명 고도화되어있지만, 사건 현장 보존, 초도 수사, 과학 수사 등에서 시대적 한계와 맹점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1, 1년여의 걸친 끈질긴 수사 끝에 조디악의 포위망을 서서히 좁혀간다. 범인의 윤곽을 그려나간다. 정황은 충분하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 법의 체계가 자꾸만 브레이크를 건다.  


용의자를 특정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그렇게 1년이 또 지난다. 1972년, 사건을 쫓는 사람들의 삶이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한다. 형사를 비웃듯 조디악을 소재로 한 <더티해리>가 출연하기도 한다. 더티해리의 주인공은 극적이고도 통쾌한 방식으로 연쇄살인범을 복수하는 데, 이는 영화 <조디악>이 취하는 영화적 태도와 대비되는 것이다  <더티해리>는 미국 보수 세력의 무의식을 반영한다고 일컬어지는 영화. 사회 불안에 대한 공포와 1960년대의 히피 정신과 일탈에 질린 대중들에게 타격감을 제공한다.


영화의 배경이  1970년대 미국은 60년대 진보와 80년대 레이건으로 대표하는 보수 기틀 사이  기이한 시대이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변동에 휩싸이게 된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분열과 좌절,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한 정부에 대한 불신과 권위의 상실 속에 미국인들은 사회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쾌락과 안위 문제에 몰두하게된다. 국내외적으로 침체와 좌절을 겪는 미국의 70년대, 조디악과 같은 연쇄살인이 미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이 범죄 경향과 이상 징후를 데이비드 핀처는 <조디악>에 이어, <마인드헌터>에서 면밀하게 다룬다. 조디악이 국소적이라면 마인드헌터는 드라마라 그런지 미국 전역을 넘나드는데, 시간 제약이 없기 때문인지 더 친절하며 드라마 초반부터 제작의도를 출연자 대사로 다이렉트하게 다 말해준다. 


다시, 조디악으로. 속절 없이 시간은 흘러 어느새 1976년, 첫 편지로부터 4년이 지났다. 영화는 1시간쯤 남았을까? 이때부터 수사의 양상이 달라진다. 영화의 룩마저 바뀐다. 영화의 첫 장면처럼 당시 등장하는 샌프란시스코 부감, 금문교의 모습에서 불안감이 느껴진다. 시간의 무게 때문인지,사건의 무게 때문인지 밝은 노란 빈티지 톤이 다 증발, 잿빛의 칙칙한 블루로 바뀌어져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이야기 공간에 남아있던 인물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조디악의 종적을 감추고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진 사건이 되어간다.  긴 시간 동안 연쇄살인마 조디악의 정체를 쫓다가 삶이 망가지고, 사건으로부터 나가 떨어진다불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들은 이제 같은 그 자리에 없다(두 형사의 조합과 대사, 기자와 삽화가의 캐릭터 대비가 넘 재밌었는데,,,ㅠ<>ㅠ). 거의 혼자서 움직인다. 그래도 끝까지 쫓는 사람이 있다. 집착의 끝을 보여주는데, 영화를 보면 볼 수록 데이비드 핀처 역시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또 삽화가인 그레이스미스의 아들을 보고 있으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그 시절에 딱 그 정도 나이대가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시대를 겪었던 공포와 강렬함에 이끌려 이런 영화를 계속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추측도 가져보게 되었다.


1970년대 미국은 역동적이었던만큼 그에 비례해서 광기도 넘쳤던 거 같다. 보고 나서 얼마 이따가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할리우드’도 생각났는데 시대를 바라보는 방식이랄까 비슷한 사건을 다루는 태도가 너무 상반되서 잼나다고 생각. 각각의 감독다운 화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화염방사기로 불태워버리는 사람도 있고 사건 기록을 쫓는 사람도 있다.




# 이 영화를 올해 장마가 추적대는 8월 말에 우연히 보고 여러번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데이비드 핀처 정주행이 시작됐다.) 셔터아일랜드를 보고 나니 조디악이 계속 노출되었는데, 부감으로 잡은 택시 포스터가 인상적이라서 클릭하게 된 것.  보통 편하게 이야기하는 "재밌다"의 종류의 것은 아닌데,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정말 여러번 본 거 같다. 문외한인 내 눈으로도 봐도 볼 거리가 엄청 많은데. 영화 관련 지식이 있으면, 시작부터 끝까지 쉴 새없이 즐길 게 풍부한 영화라 생각 (라이팅, 촬영, 편집, 캐릭터, 대사 등 )


# 조디악과 마인드헌터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1970년대 시대사에 큰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데이비드 핀처가 <조디악>, <마인드헌터> 그려온 1970년대는 <하우스 오브 카드>가 그린 현대 미국과도 맞닿아있었다. 


# 조디악의 감독이 데이비드 핀처인 것을 조디악을 보고 나서 한참 후에 알게 됐다. 내 기억 속에는 파이트 클럽, 세븐 두 개의 감독으로 남아있었다가, 새로 동기화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 전작과는 완전 다른 영화다.


# 배우들의 연기도 정말 장난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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