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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겸손 Nov 04. 2017

2. 걷다 보면 만나는 선물 보따리들

낮과밤님이 우에노(Ueno) 일대를 좋아합니다.

도쿄 우에노역 


반짝이는 골든위크 기간을 끼고 한 달여 도쿄에 머물렀다. 완연한 봄날의 도쿄, 내가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은 우에노 지역이다. 갈아타야 되니까 우에노이고, 아쉬우니까 우에노이며, 그냥 왔으니까 우에노이다. 왜 그리 우에노 일대를 반복했을까? 음… 그렇다! 우에노 루프에 걸린 것이다. 음… 아프니까 청춘이고, 도쿄니까 우에노다?! 음… 그런데 난 20대 청춘이었을 때도 아프지 않았다. 아직은 국가가 인정한 청춘인 데도 아프지 않은데? 그러니까 위엣 말은 하나마나한 소리라는 것이다.       


우에노 지역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었다. 도쿄에 꽤 긴 시간 머물 채비였지만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고향 친구가 도쿄에 살고 있기에, 그 친구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친정 식구 중 하나가 놀러 간다고 하고 가서는 시집간 딸내미를 잘 해주고 있나, 못 해주고 있나 감시하러 가듯.) 그래서 그 친구가 권하는 대로 따를 참이었다. 초대해주신 분의 기대에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목표로 삼은 것이 딱 하나 있으니, 도쿄 내 안도 타다오의 건축 설계작을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


여행 전 내가 알고 있는 도쿄 내 그의 건축물은 메이지 시대의 건물을 개축한 도쿄 국제어린이도서관과 21_21 Design Sight 두 작품, 그리고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자서전에서 그 스스로가 비교적 상세히 설명한 오모테산도힐즈였다. 아직 알고 있지 못하는 나머지는 일단 도쿄에 가서 출판물이나 현지의 인터넷 자료를 찾아 그날그날의 일정에 맞게 탄력적으로 움직일 요량이었다. 일정이 넉넉하니 2~3번 갈 폭을 잡았다. 


도쿄에 도착 후 친구 집(*이후 이 친구를 '바나나'라고 부르려 합니다!)과 동네에서 이틀을 어슬렁거리다가, 이러면 또 안 되지 싶어 3일째에 처음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의 우에노 사랑은 시작된 것 같다. 대략의 동선을 확인하려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보니 우에노는 교통의 요지였다. 서울에서 일산 정도의 거리로 체감되는 바나나의 동네에서 우에노로 바로 향하는 열차가 있으니, 혼자 여행할 시간을 맞으면 우에노를 거점 삼아 행선지를 정할 참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처음 나온 날인만큼 목표 달성을 해야지 않겠나 하는 심정으로 국제어린이도서관과 르 꼬르뷔지에의 설계작인 국립 서양 미술관을 가보기로 했다. 르코르뷔지에는 독학자 안도 타다오의 정신적 스승이다. 이 두 건물이 우에노 공원 근처에 있다니, 우에노 공원을 한 바퀴를 거닐다 방문해볼 참이었다. 그러면 우에노 일대를 자연스레 살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에노 온시 공원


우에노역에서 공원 개찰구로 나오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바로 국립 서양 미술관이 있다. 이곳을 시작으로 발길 가는 대로 걷다 보면 근사한 문화공간들을 깜짝 선물처럼 만날 수 있다. 우에노에서의 첫날(a.k.a 1일째ㅋㅋ), 선물 가게를 지나기 전부터 날 처음 사로잡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무수한 소리들이었다. 무지개떡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외국어들 그리고 그 사이로 일본어의 음성들이 흩날린다. 남녀노소 가지각색으로 재잘대는 소리의 톤과 결이 밝은 빛과 공기 중으로 흩뿌려진다. 우에노역에서 나와 출구 밖으로 나갈 때 무수한 인파와 사운드에 생경했지만, 하교길 아이들이 박차고 뛰어나가는 발걸음처럼 경쾌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위한 노신사님의 드로잉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도쿄의 여행자들. 전 세계인들이 도쿄에 호감을 갖는 이유는 일본 전통의 멋과 세련된 도시 감각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의 밑바탕을 이해할 수 있는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의 공공시설부터 최신 예술과 라이프스타일 경향을 보여 주는 갤러리와 디자인 숍까지 다양한 도쿄의 모습이 펼쳐진다. 열린 공간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문화공간들은 최상위급 문화특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우에노 일대가 유난히도 좋았던 것은 그 지역 특유의 정취 때문이다. 우에노 일대를 반복적으로 걸으면서, 이 지역에 대한 호감은 도시의 역사성 때문이라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우에노 일대는 도쿄의 서민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소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만나는 우에노 일대의 신사와 절, 건축과 조경, 수변 등은 공공자원으로 도쿄 시민들의 삶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선은 끊임없이 모험하며, 다양한 사물과 공간을 얽혀든다. 하지만 전체적인 조화로움에 편안함을 느낀다.


우에노 공원 내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시고 있는 신사 '우에노 도쇼구'

현대 일본 문화의 근간이 된 도쿄 지형은 에도 시대의 자취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근대화의 씨앗이 된 근세 에도의 자취를 어렴풋이 남기면서 근대에서 현대로 계속 이어지는 문화적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쿄인의 생활문화의 역량은 에도에서부터 메이지 시대를 거쳐 현재의 됴쿄의 물길처럼 잔잔히  흘러간다. 그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 우에노 지역이다. 풍경은 담백하고 세련되며, 사람들은 차분하지만 개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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