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제날.
천주교식으로 모셨기에 제사는 없지만, 그래도 전통이라는 것은 지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남은 가족들이 봉안경당에서 진행되는 미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내리니, 선생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한참 전에 오셔서 머무셨던 듯 하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아빠와 30년 넘게 한 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셨다. 동갑인데다 같은 과목 담당,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셔서 자식들의 나이도 얼추 비슷하다. 퇴직을 하시고나서 이미 십년 이상이 지났지만 한달에 한두번은 꼭 만나 식사를 하셨고, 거의 매일 안부를 나누셨다고 한다. 두분 다 어쩌다 보니 홀애비 신세로 노년을 보내게 되셨는데, '우리 서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을 해주어야하니, 애들 전화번호를 교환하자.'라고 하여 비상연락처까지 교환해두셨다고 하니, 그야말로 절친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빠의 투병기간 동안 선생님은 한달에 한번 이상은 꼭 서울에 올라오셔서, 아빠를 만나셨다. 아빠가 오지 말라고 괴팍하게 짜증을 내셔도 그렇게도 오셨더랬다. 빈손으로 오시는 법이 없이.
"선생님~ 먼저 와계시네요~ 잘 지내셨어요? 감기로 고생하셨다고 들었는데 좀 어떠세요?"
"아이고~ 왔나~? 괜찮다 괜찮다. 얼른 들어가자."
미사가 시작되자 선생님의 어깨가 잠시, 그러나 한동안 들썩였다.
"너희 아부지가 병원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다는거야. 평소 같으면 그냥 잘갔다오게~ 하고 말았을텐데 그날따라 같이 가야되겠다 싶더구만. 그래서 진료실까지 따라 들어갔어. 의사가 대뜸 너 아부지한테 '사실 그대로 말을 해드리까요~ 아니면 좀 편하게 말씀을 드리까요?' 하대. 내사 가슴이 덜컹 내리 앉아가지고 너 아부지 얼굴을 보니, '있는 그대로 말씀 해 주이소.'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기라. 그래 병이 그래 진행이 되었다고 하대......"
선생님은 아빠와의 추억을 최신순으로부터 하나씩 꺼내어 되뇌이시고,
날이 좋으면 당신의 아내가 잠든 곳, 친한 친구가 잠든 곳을 둘러보고는 아내 또는 친구와 같이 먹던 음식을 포장하여 댁에 들어가셔서 막걸리 한잔 기울이시는 일상을 보내고 계신다.
"아이고 이사람아~ 내 감세~. 다음에 또 옴세~ 잘 있게나이~!"
미련이 가득한 목소리를 인사를 하시고, 유골함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겨우 일어서시는 선생님 뒷 모습이 쓸쓸하다 못해 아프다.
선생님은 아직 괜찮지 않으시다.
5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직장동료이자 친구를 보내는 것은, 정말 가족을 보낸 그 마음과 진배 없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과 아빠는 어떤 인연이었을까.
전생이라는 게 있다면, 두 분이야말로 가족이 아니었을지.
지금은 그저 선생님께서 얼른 편안해지셨으면 하고 바란다.
다만, 지금 이 애도의 시간이 선생님께 꼭 필요한 시간이라면 그래도 건강하게 그나마도 평안하게 그 기간을 보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늘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