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 예약해도 대기가 꽤 길대. 이제 좀 준비해둬야하지 않을까?
- ㅇㅇ. 그래야겠지? 뭐부터 해야하지?
- 주치의로부터 소견서를 받는 게 먼저라고 해. 호스피스에 갈 정도, 그러니까 현재 더는 치료가 어렵다는 소견서가 있어야 호스피스 병원에 대리진료라도 갈 수 있다네? 찾아보니 그래.
- 응. 종양내과에서 손을 땠다는 증거는 이미 병원기록 여기저기에 남아있다니까 뭐. 서류 떼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네.
이 날이 결국은 왔다.
2~3주 전까지만 해도 요추골절을 고통스러워 하시긴 해도, 아직 가실 날은 멀었다 생각했는데 주말마다 만나는 아빠는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있다. 옆에서 지난 한달 아빠 옆을 꼬빡 지켜낸 언니도 앞선 한 주 간은 아빠의 상태가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했다. 어디에도 입원시켜준다는 병원은 없다. 여기저기 온갖 곳이 아파 사설 앰뷸런스까지 타고 다녀보는 각종 병원, 심지어 응급실에서도 갖가지 검사만 할 뿐 특별히 나타나는 이상은 없다고 한다. 정밀 판독 상 이상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현재 환자분께 해드릴 수 있는 조치라는 게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다만, 보호자분들께 판독 결과나 나오면 자세히 설명드릴 수 있도록 일정 잡아드릴테니 대리진료를 오라고, 그리고 아마도 호스피스 소견도 받으시는데 무리가 없으실 듯 하니 종양내과 진료도 잡아드리겠다고.
언니와 나는 아빠의 투병 이후로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만나고 있다. 같이 커피를 앞에 두고, 혹은 간병에 고생하는 언니를 위한 음식을 차려놓고 함께 한다. 주로 다음주에 해야할 스케쥴 정리, 서로의 역할 분담 같은 것들이 대화의 주제이지만 때때로 몸은 쇠약해져가면서도 성격은 그대로인 아빠 흉을 하며 깔깔대기도 하고, 또 때론 눈물을 광광 쏟으며 공감하기도 한다.
- 오늘 아빠가 친구분하고 통화를 하시는데.. 뭐라시는 줄 알아?
- 뭐라고?
- "아이 씨. 병원에 가도 검사만 하고 아무것도 조치를 안해 줘. 얼굴 마비가 점점 심해지고 있고 이젠 말도 잘 안 되는데 말이야. 어제까진 말은 그래도 잘 됐는데 이젠 그것도 안 되네. 죽을라나 봐. 근데 저번에~ 당신이 나한테 다 나으면 뭐 하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내가 대답을 못 했어. 삼겹살 수육하고 비빔국수를 아주 맛있게 해서 당신하고 점심을 한 끼 먹고 싶어. 항상 고마워."
- ..........
언니 몸보신 시키겠다고 소고기를 잔뜩 구워놨는데, 괜히 내가 이 얘기를 전해서는 둘 다 눈물이 터져버렸다. 진정을 하는데까지 아주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아빠는 아직까지 한번도 우리에게 나으면 우리와 무엇을 하고 싶다던가하는 바람을 말한 적이 없으며, 또한 자신의 죽음을 현재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한 적이 없다. 언제든 나으면 얼른 집에 가서 이런이런 일들을 처리해야 하겠다고 현실적인 말씀만 하셨을 뿐이다. 본인은 어떻게든 나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은연 중에 생각했다.
친구분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걸 들으니, 아빠도 결국 알고 계시는구나~ 그간 모른 척 하셨던거구나~ 싶었다. 그래 모를 리가 없지.
다음 주 호스피스 병원에 대리진료를 간다. 가서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고 또 현재까지 우리가 보고 있는 아빠의 상태를 설명하며 실질적으로 완화의료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들이 봤을 때 아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런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온 몸으로 퍼지고 있는 통증을 잡으면서 그래도 조금은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나 시스템이 있을지, 언제부터 가능할지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려고 한다.
그 다음엔, 아빠에게 설명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