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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나 May 13. 2023

우당탕탕 미술 연구회의 시작

회원 1명: 이예나 선생님

  26살,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여행으로도 가본 적 없던 도시였다. 부랴부랴 자취방을 구해야 했다. 오래된 복층 오피스텔이었는데, 벽지를 흰색 페인트로 열심히 바르고 감성 인테리어 래퍼런스를 찾으면서 열심히 꾸몄다. 최소 2년간은 살 집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초등학생들과 함께한 첫 한 달은 처참했다. 매일매일 의원면직을 꿈꾸었다. 예상한 것보다 아이들이 빼앗아가는 에너지의 양은 컸다. 집으로 퇴근할 때마다 생각했다. '페인트칠 괜히 했네. 곧 그만둘 듯.'


 27살, 2년 차가 되니 그나마 여유가 생겼다. 혼자서 야금야금 수업연구를 해보고 나름의 프로젝트를 꾸리기도 했다. 아이들과 즐겁게 배우고 추억도 정말 많이 쌓았다. 교실에서 1박 2일 캠프를 진행했을 때, 한숨도 자지 않는 아이들을 감시하느라 핏대 선 눈알을 굴리며 초주검이 된 나를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지? 했는데. 그때 맡았던 아이들이 언젠가 훌쩍 커서 '선생님과 함께한 6학년이 제일 좋았다.'라고 말해주었다. 교사는 학생의 말을 먹고 산다. 아이들의 따뜻한 말들이 쌓여 어느덧 도망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28살,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학교는 텅 비어있고, 나는 행동해야만 했다. 원격수업을 위한 수많은 연수를 듣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의 수업을 구상해야 했다. 수업을 기획하고, 게임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동영상을 편집하는 삶. 모두 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이었다. 난생처음 유튜브채널을 만들었다. 채널이름이 꽤 웃긴데, 나의 아이덴티티를 담아 '예술가예선생'이라 지었다. 많은 선생님들이 나의 영상을 수업에 사용한 덕분인지 조회수가 한 영상 당 10,000회가 넘어가고 구독자도 많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나를 끝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인용하자면 29살 그 언저리는 ‘노잼의 시기’ 거나 ‘이직의 시기’라고 한다. 조금씩 사회경험이 쌓이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새로운 회사로 이동하는 시기라고. 물론 사람마다 이 시기가 일찍 오기도 하고 늦게 오기도 하겠지만, 나 역시 이 즈음 노잼의 시기가 찾아왔다. '늦기 전에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것을 해야겠다.' 나는야 예술가예선생이란 말이다. 예술가로서의 나의 전문성을 취득해야만 한다는 판단이었다.


 2021년 8월, 나는 유학휴직 절차를 밟았고,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 이제는 선생이 아니라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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