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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Mar 19. 2022

올해의 첫농사_완두콩 심기

완두콩 씨앗 넣기 / 2022. 2.26

나는 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제일 싫어하는것은 강낭콩이었다. 길쭉하고 퉁퉁한 모양도 맘에 안들고 밥에 넣으면 밥 색깔이 변해버리는 붉고 검은 강낭콩이 싫었다. “도대체 이렇게 뻑뻑하고 뽀얀 쌀 밥의 색깔까지 어둡게 바꿔버리는 콩을 왜 좋아하는거지? 엄마는 왜 자꾸 밥에 콩을 넣으시는거지?” 이런 생각을 어릴때부터 어른이 될때까지 했었다. 콩으로 만드는 두부도 별로 안좋아했었다. 채식을 시작하면서 두부를 더 많이 먹게 되었지만, 두부를 먹으면 괜시리 느껴지는 체할것 같은 기분과 강낭콩의 이미지가 가늘게 연결되어 있었다. 판두부보다는 연두부나 순두부를 먹는다. 그래야 콩생각이 덜 났다. 

이렇게 콩을 싫어하는데도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는 콩이 있다. 그 이름도 예쁜 완두콩이다. 말랑한 깍지도 사랑스럽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초록의 동글동글 친구들이 너무나 귀엽다. 흰 쌀밥에 넣어서 밥을 하면 밥에 예쁜 그림을 그린듯한, 만화에 나오는 밥의 모습이 된다. 밥그릇에 팔다리만 그리면 귀여운 밥의 요정으로 변신한다. 안녕안녕! 너 나를 먹으러 와주었구나! 라고 인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흰 쌀밥에 초록 땡땡이 무늬의 밥이라니 얼마나 예쁜가? 초여름의 딱 그런 느낌이다. 먹었을때의 달콤 담백한 맛은 설명할 것도 없다.


이렇게 좋아하는 완두콩이지만 완두콩 농사는 제대로 지어본 적이 없다. 타이밍을 놓치거나 씨앗을 못구하거나 아예 씨앗 뿌릴 생각을 못해서 또는 제대로 키우지를 못해서 주변의 농사친구들에게 얻어먹은 경우가 더 많았는데 올해는 완두콩부터 제대로 심겠다고 결심했다. 지난해 늦가을에 파종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더 추운 지역에 살고 있으니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 친구들에게 얻어 먹고 남은 완두콩을 오늘 심기로 했다. 도토리 바구니에 잘 모아두었던 완두를 씨앗통에 담고 농사가방을 챙겨서 출발한다. 


완두가 담긴 도토리바구니


오랜만에 가본 밭은 옛날 미국서부의 총잡이가 서있어야 어울릴것 같이 황량하다. 멀리서 기러기가 삡삡삡삡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날이 춥고 바람이 부는데다 오늘은 미세먼지 최악의 날이라 아무도 밭에 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왔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흙빛의 밭이 쓸쓸하고 외로워보인다. 지난해 키우고 혹시 연작이 가능할까 싶어 그냥 둔 아욱과 파, 케일같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말라버린 줄기와 잎을 그대로 두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흙속에서는 양파와 마늘이 자라고 있다.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에서 냉이와 시금치도 자라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잠들어 있는 땅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땅속에서는 모두가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

밭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멀리서 고양이 한마리가 계속 나를 쳐다보고 살짝 숨었다가 다시 자기 얼굴을 보여준다. 아마도 우리 밭에서 사람들이 함께 돌보는 고양이같다. 쉼터에 들어가 보았더니 물은 얼어있고 밥은 없다. 얼른 물을 따라주고 캔을 하나 따주었다. 배는 고프지만 사람이 무서운 고양이는 나와 눈만 마주치면 저 멀리로 뛰어갔다가 다시 온다. 배는 고프고 잡힐까봐 두려운 마음, 너무 잘 알겠다. “그래, 절대 사람 옆에 오지말고 그대신 여기서 잘 얻어먹고 잘 자라렴.”하고 인사를 했다. 요즘 너무 무서운 동물학대 사건들이 많아서 길동물들이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것도 겁이난다. 


고양이가 밥을 편안히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고 멀리서 지켜보았다. 물과 밥을 허겁지겁 먹는 뒷모습이 짠하고 기특하다. 호미를 들고 밭을 둘러본다. 오랜만에 밭에 아무 생각없이 왔더니 뭘 어디에 심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래서 식재 지도가 필요한데, 그걸 놓고 오다니. 역시 정신없는 나답다. 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내가 어디에 뭘 심었는지 열심히 기억해본다.

양파와 마늘을 심은곳엔 역시 왕겨이불이 깔려있고, 냉이와 시금치가 자라났다가 날이 추우면 허옇게 낙엽이 되었다가 한 흔적들이 있다. 죽지 않고 잘 살아있지만 잎이 작아 수확은 어렵다. 딸기들도 아스파라거스도 말라비틀어져있지만 봄이 되면 살아날것이다. 

지난 겨울 뿌리배추를 뽑은 틀밭과 콜라비를 수확한 밭쪽에 공간이 있는걸 확인했다. 호미로 흙을 북북 긁어본다. 겉 흙은 부드럽게 녹아있지만 어느 깊이 이하부터는 아직 땅이 얼어있다. 호미가 얼어있는 부분을 파려고 하면 호미가 깡!깡! 소리를 내며 운다. 부드러운 흙 부분만 호미질을 해서 땅의 모양을 잡는다. 작은 호미 만으로는 땅이 고르게 정리되지를 않아서 레기갈퀴로 흙을 여러번 앞뒤로 정리하면서 돌을 골라냈다. 흙이 편평해지고 보들보들 해보이면 고랑을 길게 파고 서너알씩 완두콩을 넣는다. 한 알은 새에게 한 알은 땅에게 남은 한 알은 사람이 먹기위해서다. 주루룩 간격을 맞추어 씨앗을 넣고 나서 사진을 한장 찰칵 찍었다. 멀리서도 한 장 찍는다. 나중에 어디에 씨를 뿌렸는지 기억하기 위해서다. 사진을 찍고나서 흙들을 이불처럼 덮어주고, 씨앗을 심은 위치는 돌맹이로 담을 쌓아 기억해둔다. 

완두 세알씩 일렬로 쭈욱 뿌렸다


조카를 돌보느라 집에만 있었는데 간만에 밖에 나와 바람을 쐬고 보들보들해진 겉흙을 만져보니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인데도 기분이 상콤해진다. 양파와 마늘이 어떻게 자라날지, 오늘 씨넣기한 완두가 어떻게 자랄지 기대된다. 지금은 땅속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땅속의 에너지가 밖으로 뿜어져나와 줄기로, 잎사귀로, 꽃으로 그리고 열매로 완성되는 시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미세먼지 가득한 추운 날씨지만 머릿속으로 상상한 모습은 식물원의 온실처럼 따뜻하고 활기넘친다. 황량한 겉모습과 달리 땅속에서 열심히 자라고 있는 작물들에게 에너지를 이리저리 전해주는 지구의 노력에 나도 가만히 있지말고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한두달만 있으면 이 흙에서 머리꼭지가 익도록, 팔이 새까맣게 타도록 농사를 지을수있다. 바람을 느끼고 따가운 햇볕을 느낄 날이 올거다. 덜 타려고 썬크림을 발라대며 선선할때가 그립다 하겠지.


얼른 농사짓고 싶다. 새소리를 들으며, 잎사귀 아래에서 잠자던 곤충들에게 인사하고 잎에 맺힌 이슬로 장갑이 흠뻑젖을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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