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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Apr 20. 2022

슬픈 밭 #3-슬프고 화나는 밭

슬픈밭을 살려보자

슬픈밭도 기쁜밭과 똑같이 어짜피 1년 계약이고, 슬퍼하기만 하는건 안될것 같아서 가서 돌을 고르기로 했다. 뭐 또 가보니 밭 건너로 보이는 도토리 나무도 예쁘고 넓은 밭에 뭐라도 심어야 할 것 같다. 이미 흙에 섞어둔 퇴비가 너무 아깝기도 하다. 친구의 차 클러치를 태워먹으며 퇴비를 싣고 오고 뿌린 밭이니 이렇게 멈출수는 없다. 

일단 뭐라도 해보자 싶어 옆밭언니에게 문자를 해서 언니의 네기와 괭이를 빌려 돌을 골라본다. 

네기로 슥 긁으면 내 주먹만한 돌들이 네기 끝에 걸려서 묵직해진다. 이렇게 돌 많은 밭에서 어떻게 농사를 지으라는걸까? 돌을 골라내고 있으려니 헛웃음이 나온다. 

점토처럼 뭉쳐버린 흙, 그것도 돌맹이처럼 단단하게 동글동글 뭉쳐있다. 그 사이사이 조약돌 크기부터 내 주먹보다 더 큰 돌들까지.. 이 땅 주인은 이땅에서 농사를 지을수 있다 생각하고 땅을 빌려준걸까? 

돌을 고르고 있는데 옆밭언니가 밭으로 왔다. 내가 있어서 밭에 왔다며 반가워했다. 내가 깨작깨작 일하고 있는걸 보더니 “야! 그렇게 허리 숙이고 하면 다쳐! 힘 들이지말구 죽죽 긁어!”하며 이렇게 저렇게 돌 고르는 법을 알려주었다. 일단 흙을 긁어 큰 돌들을 골라낸 후 땅에 네기를 푹 박아서 안쪽의 부드러운 흙을 밖으로 뒤집어내라는건데, 나는 자꾸 허리가 숙여지고 힘이 들어간다. 

해가 중천에 떴을때부터 나무그늘이 지는 저녁즈음까지 돌을 골랐다. 저쪽 동쪽 나무숲에서 허옇고 동그란 달이 나무사이로 올라온다. 일을 하고있어서인지 추운지도 모르고 일을 했다. 언니는 한고랑을 다 해가는데 나는 한고랑은 커녕 내 키만큼도 못했다. 안에서 돌이 계속 나오는데 이걸 어쩌면 좋나 싶다. 옆밭 언니는 웃으면서 “나는 매일 와서 했으니 이만큼이지! 매일 하면 할 수 있어!”라고 말해줬다. 나도 언니를 보고 미소지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언니, 전 매일 와도 아마.. 올해 다 못할거에요”라는 생각을 했다. 


돌을 서로 고르면서도 이 밭을 오래오래 한다면 모를까, 이 밭에 이렇게 에너지를 쏟는게 맞는지 걱정을 나누었다. 그래도 둘이 깔깔 웃다가 신경질을 내다가 하며 일을 하니 힘이 나는것 같았다. 옆밭 언니 덕분에 어려운경험을 쉽게 배우고 경험해본다. 달이 나뭇가지를 헤집고 나와 하늘로 올라왔다. 이젠 공기가 차고 한기가 느껴진다. 

집에 오는데 손이 욱신거린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버렸다. 나의 기쁜 노루뫼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을 내가 왜 하고 있을까 하며 집으로 오는 길, 달만 하얗게 떠서 몸은 힘들고 달만 반갑다. 

내일도 가겠다 생각했지만 내일은 또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못할것 같으면서 해야만 하는 밭. 그냥 지금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더 용기를 내야 할까 달에게 물어도 뽀얗게 뜬 둥그런 달은 미소 지을뿐, 답이 없다. 

즐거우려고 시작했는데. 좀 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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