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편집하고 동네의 세계관을 그리는 로컬 독립서점의 역할을 생각하다
"커피, 빵집, 독립서점." 경제학의 관점으로 골목상권과 로컬크리에이터 생태계를 연구하는 모종린 교수가 콘텐츠가 있는 동네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삼는 대표 '독립가게' 업종이다. 독립가게란 자신만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개인이 소규모로 운영하는 상업 공간으로, 프랜차이즈로 대표되는 기업형 점포와 대비된다.
세 가지 독립가게 중에서도 '독립서점'은 독특한 위치를 갖는다. 가게에서 만들어 파는 커피, 빵과 달리 책은 대부분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을 가져다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책을 가져다 둘 수는 없고, 나름의 기준으로 고르는 과정을 거쳐야만하기에 독립서점은 필연적으로 '편집자'로서의 관점을 갖게 된다.
그래서일까. 찾아가고 싶은 매력이 있는 동네의 독립서점들은 단순히 책이나 관련 상품을 파는 상점에 그치지 않고, 자기가 속한 거리와 지역에서 '동네 편집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 가게들을 소개하는 동네 지도를 만들거나 동네의 문화 행사를 소개하는 포스터를 게시하는 등 형식과 방법도 다양하다.
호리베 아쓰시의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는 교토 사쿄구 이치조지를 배경으로 한다. 1장에서는 거리를 편집하는 독립서점으로서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2장은 이치조지 거리의 캐릭터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독립가게들을 소개하며 "작은 가게가 서로 연결되어 거리의 세계관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 나의 거리 풍경을 바꾸고 싶은 '창의적 소상공인'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골목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동료들과 함께 읽고, 책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나아가 "우리 동네의 세계관을 어떻게 함께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창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더 좋겠다.
'게이분샤 이치조지점'과 이 거리의 지난 날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은 교토 사쿄구 이치조지 거리에 위치한 서점이다. 일반적인 서적 외에도 독립출판물, 헌책, 해외서적 등 다양한 도서를 취급하고 있다. 책 뿐 아니라 생활 서적과 관련 잡화를 판매하는 '생활관', 그리고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는 대관 갤러리 '앙페르'를 포함하고 있어 '편집 서점'으로 불리운다.
주변 가게와 공동으로 이벤트를 열며 거리와의 관계를 밀접하게 유지하고 있다. 온라인 숍이자 자체 미디어(https://www.keibunsha-books.com/)을 운영하고 있으며, '가게 탐방'이라는 연재물을 통해 인근 가게를 소개한다. 편집 서점을 운영하는 '편집자'로서의 시선을 서점 밖 '지역'으로 확장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거리도 가게를 만든다—돈후, 가케보쇼
대학교가 많은 사쿄구는 교토의 문화 지구로 여겨진다. 학생, 교수는 물론 뮤지션, 작가, 편집자 등 창작자의 비중이 높고 진보적 성향의 주민이 많다. 선술집이나 살롱 형태의 가게가 많고, 합리적 소비보다는 개성과 미의식을 지향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곳에서는 손님이 가게를 변화시키고, 때로는 가게를 지키기도 한다.
미래는 과거 속에 있다—마이고, 데마치 후타바
오사카 만국 박람회가 열린 1970년 무렵부터 일본에서는 유행에서 벗어나 전통으로 회귀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향토요리가 재발견되고 국내여행이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향하던 시대였다. 이후 수 많은 유행이 찾아오고 사라졌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것들, '오래 변치 않는 편안함'을 주는 것들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서점은 동네의 선생님이었다—산가쓰쇼보, 헌책 젠코도, 워크숍 레코드
편집 서점의 책들은 옆에 꽂힌 책들과 연관성을 이어가며 하나의 세계관을 이룬다.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펼쳐보고 그를 통해 인식과 시야가 확장되는 체험은 책을 배송해주는 온라인 서점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책의 내용을 토론하거나, 레코드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 등은 동네 점포만이 줄 수 있는 가치이다.
'골목'이라는 이름의 샛길에서—나미이타 앨리, 데마치야나기 문화센터
골목은 차가 다니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이 걷고 모이는 장소가 된다. 지대가 저렴해 작은 규모의 1인 가게나 창작자들의 아지트가 생겨나기도 쉽다. 이러한 이유로 도시의 골목은 정해진 계획에서 벗어난,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샛길'이 된다. 도시에는 이렇듯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무목적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찻집—로쿠요샤 지하 지점
찻집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장소이다. 즉 일상의 배경이 되는 '제3의 공간'인 것이다. 무목적 공간인 찻집과 술집은 일상 속 휴식을 제공하며 없어서는 안 될 장소가 된다. 최근 들어 찻집이나 술집이 목적지가 되어가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 사이의 연결, 편안한 일상의 맥락이 조금씩 잊혀지고 있다.
대담 | 개인 점포가 살아남으려면
- 주변과의 관계나 접점 없이 자기 사업만 영위해서는 개인 점포로서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
- 하나의 가게가 아무것도 없던 골목에 분위기를 만들어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 점과 점을 이어 선으로 만듦으로써 거리의 스토리, 세계를 의식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부록 | 교토의 작은 가게 지도
• 게이분샤 이치조지점 - 1982년 개점한 교토의 편집서점
• 헌책방 젠코도 - 기타시라카와의 헌책방
• 로쿠요샤 - 교토를 대표하는 찻집
• 야스다 가쓰미 건축 연구소 - 이치조지 거리 다수의 점포 설계를 담당한 건축사무소
• 유게 - 시모가모의 선술집
• 하기쇼보 - 교토의 고서점
• 마이고 - 커피와 골동품이 있는 찻집
• 렌터 사이클 에무지카 - 공유 자전거 렌탈숍
• 산가쓰쇼보 - 비주류 작품을 구비한 작은 서점
• 돈후 - 교토 대학교 부근의 선술집
• 나미이타 앨리 - 찻집이자 공방, 자전거 수리점인 복합문화공간
• 가케쇼보 - 지역색을 띠고 있는 동네 서점
• 워크숍 레코드 - 오프라인 판매를 고집하는 레코드 가게
• 세이코샤 - 게이분샤 이치조지점의 전 점장이자 이 책의 저자인 호리베 아쓰시가 오픈한 서점
• 데마치 후타바 - 1899년 창업 이래 3대째 운영 중인 떡집
호리베 아쓰시 | 민음사 | 2018. 2. 2.
"이 책은 오늘날의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을 만들어 낸 전 점장이자 현재 교토의 새로운 명소로 급부상한 서점 세이코샤의 점주 호리베 아쓰시가 대형 서점, 온라인 서점의 거센 공세 속에서 작은 동네 서점을 보존하고, 더 나아가서는 크게 키워 낸 치열한 이력과 노하우, 그 의의와 가치를 한데 생생하게 엮어 낸 르포르타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