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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Apr 14. 2023

불안의 정도

내면의 불안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


큰 아이의 학교 상담에 다녀왔다. 수년 간 아이의 상담에 다니면서 한결같이 듣던 말을 올해 또 들었다. 너무 잘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잘할 것이니 걱정 말라고.



아이는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선생님 말씀을 칼 같이 지킨다. 규칙과 규범을 잘 지키는 편이고 그렇지 않은 또래 아이들을 같이 이끌어 가려고도 한다. 매사에 잘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앞서고 또 대체로 잘하는 편이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호감을 산다. 들어보면 완벽하다. 선생님들도 종종 그렇게 말씀하신다. 이런 애만 있으면 참 편하겠다고 어머님은 아이 키우면서 참 편하셨겠다고. 상대적으로 평범한(?)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참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둘째가 평범한 거고 첫째가 좀 특이한 거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됐다. 첫째는 뭔가 아이 같지 않은 어른스러움이 있어서 손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런 타입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아이를 키워서 편하겠다고 하는 질문에는 갸우뚱하게 된다. 어떻게 아이가 어른스러울 수 있겠는가. 자기 안에서는 치열한 갈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숙제 안 하고 싶지만 안 하면 불성실한 학생이 되니까 꼭 해야 해, 학원 안 가고 싶지만 그러면 공부를 못하게 되니까 꼭 가야 해, 맛있는 것 먼저 다 먹어치우고 싶지만 그러면 마지막에 맛없는 것만 먹기 곤욕스러우니까 아껴둘 테야, OOO 하면(안 하면) XXX 되겠지, 그럴까 봐 너무 걱정돼, 너무 두려워,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어, 그러다 보니 통제를 잘하는 어린이가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아이 내면에 갖고 있는 불안의 강도가 세다. 그래도 부모 된 입장에서 아이 키우기 편하면 된 것 아니냐 싶을 수도 있지만 아이의 그런 면은 어디서 비롯되었겠는가. 그 높은 불안이 주는 중압감을 나나 남편도 스스로 알기에 아이가 더 안쓰럽게 느껴지곤 한다.





간밤에 깊게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꿈을 꿨다. 아직 유치원생인 둘째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갔는데 갑자기 직원이 나타나서 한 놀이기구를 이렇게저렇게 변형해서 타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하더니 우리 애를 데리고 시험을 했다. 그러더니 우리 애가 엄청난 속도로 저 멀리 불을 뿜으며 날아가는 사고가 발생해서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다소 황당한 설정이었는데 그 꿈에서 완전히 깰 때까지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모른다. 왜 내 자식을 마음대로 시험대에 오르게 할 때 말리지 못했나. 내가 지켰어야 했는데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그것부터 시작해서 여태 살면서 아이가 힘들게 된 상황마다 그걸 왜 막지 못했나 후회하며 한탄했다. 아이의 짧은 인생에서 불행했을 법한 사건들만 자꾸 뇌리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좀 더 최선을 다 할 수 없었나. 그게 과연 최선이었던 걸까.



혼자 있거나 꿈을 꿀 때 끔찍한 상상을 종종 하곤 한다. 특히 운전을 할 때, 이대로 앞차를 들이받아서 식물인간이 되면 어쩌지,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렇지만 현실에 있을 법한 생각을 종종 한다.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서 폭격을 당하면 어쩌지 이런 상상도 과대망상증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가끔 우리 사는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라 더 겁이 난다.



하던 일을 관두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면서 몸과 마음이 평화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 보면 또 막상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외부에서 보기엔 잔잔하고 고요해 보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깨진 유리조각들이 곳곳에 산재한다. 한가해서 걱정이 많아졌나 생각하기엔 그리 한가하지도 않은데.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은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 안다. 내 내면에 불안 기제가 심하구나 라는 걸 깨달은 이후로 그것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잘 되진 않는다. 불안과 심리에 대한 책을 읽으면 아 맞아맞아 너무 공감돼하며 물개처럼 박수를 치긴 하지만 아직까지 속시원히 그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제공하는 책은 못 봤다. 어쩌면 내가 제대로 실천을 못해서 해결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해결책이라는 게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마음을 달리 먹는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하니 답답할 뿐이다. 그냥 무섭고 두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또는 상상할 때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 불안과 익숙해지려고 한다. 어차피 넌 나를 쉽게 떠나지 않을 테지, 있는 동안이라도 편하게 잘 지내다 가. 뭐 이런 심정이랄까.



다시 아이 이야기로 돌아와서, 첫째 아이에게는 만성 피부질환이 있다. 기본적으로 아토피 기질이 있고 스트레스가 생기면 증상이 심해지는데 지금 인생 최고점을 찍고 있다. 담임 선생님이 보시기엔 학교에서 너무 평화롭게 잘 지낸다는데, 집에서도 딱히 갈등이 있지 않은데 아이의 몸이 역대급으로 반응을 하는 걸 보면 어딘가 어루만져줘야 할 때인 것 같다. 하 근데 나도 내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는데 애 마음까지 달래야 하니 부모의 역할은 정말… 정말이지 뭐랄까 암튼 되게 버겁다. 누군가를 붙잡고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다.



마시멜로 실험에서 마지막까지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들이 사회적 성취가 높다는 결과가 있는데 나는 가끔 그 아이들이 인생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았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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