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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Mar 04. 2024

꿈속 세상, 결국은 현실

가족과 함께 영화 자주 보시나요? 2시간의 인생을 즐겨보아요

한 달 전에 집에서 아이와 '아바타 1편'을 함께 봤었다. 10년 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니 그때와 달리 더 많은 게 눈에 들어왔다. 작년에 개봉한 2편을 어서 보고 싶었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이유는 단연 아이의 거부. 하나에 노출이 되었다면 그것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다른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시간도 필요한 아이.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순 있어도 마시게 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절감한다. 아이가 2편을 원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것도. 가끔 '2편 언제 볼까?' 정도의 질문을 반복하는 것만이 내 역할이라는 것도.

드디어 얼마 전 장장 3시간 동안 아바타 2를 보게 되었다. 사실 그전에 아이는 유튜브 채널의 아바타 2 요약본을 자주 보았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함을 잠식시키기 위해 아이는 스스로 대비를 한 것이다. 대충의 줄거리를 아는 아이는 다행히 편안히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1편보다 2편이 좋았다. 이유는 가족애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인간이든 외계 나비족이든 가족은 공동체의 핵심이자 중심이고, 가족 간의 사랑은 삶의 의미이자 본질임을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인간적인 드라마 요소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와닿았다.       

1편에 비해 2편이 실망스러웠다는 평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든 흥행작의 후속편은 1편에 비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을 듯하다. 보통은 관객들의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 상태로 2편을 보게 되고, 더군다나 10년을 기다린 아바타의 관객들은 뭔가 더 대단함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1편에 등장했던 '판도라' 행성의 존재 자체가 시각적으로 신비롭고 경이로움을 자아내 당시 관객들의 이목을 충분히 집중시켰고, 또 '아바타'라는 수단으로 의식을 전이시켜 다른 생명체가 된다는 이야기가 만화 같은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영화 속 그 모든 요소들이 가히 충격적이고 신선했으나, 아무래도 2탄은 이미 그것을 맛본 관객들의 세포를 훨씬 요동치게 하려면 더한 충격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관객은 '판도라' 행성과 그곳에 사는 '나비족'의 존재가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한 번쯤 실제 그런 행성이 우주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캐머런 감독의 남다른 독창성은 1편이든 2편이든 놀라웠다.          


1편이 나온 후 10년 동안 인간의 과학문명은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곧 도래할지도 모른다.(이미 왔는데 나만 모르나) 10년 전에 아바타 1탄에서 등장한 과학 기술이 사뭇 대단해 보이기도 하다. 인간의 의식을 아바타에 전이시켜 다른 생명체로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 자체가 그때는 만화 같은 이야기였지만, 지금 와서 보니 앞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뇌에 칩을 심었다고 하는 걸 보니 아바타에 나온 기술이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기술이 영화에서 더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하반신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였다. 현실에서는 뛸 수 없지만, 아바타로는 뛸 수 있었다. 뛰는 걸 넘어서 이크란을 타고 하늘을 날기도 했다.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바타로는 가능했다. 아바타의 세계 즉 나비족이 되는 삶은 꿈과 같은 삶이었을 것이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과 꿈이 자주 혼동되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실제 영화에서도 점차 현실과 그곳 삶의 경계에서 자주 혼란스러워했다. 결국은 꿈을 선택한 설리.      

누구나 꿈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한다. 꿈을 꾸듯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게 아바타의 삶일지라도. 나에게 꿈은 무엇일까. 내가 꿈꾸고 있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용기 있게 그 꿈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식상할지도 모르는 가족애가 2편에 등장한다. 1편에서 제이크는 나비족으로 살아가는 것을 택했다. 네이티리를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총 5명(3명은 친자식, 2명 중 하나는 입양, 하나는 적의 인간 아들)의 자식을 거느린 가장이 되었다. 모두가 나비족처럼 보이나 실상은 혼혈의 아바타와 같은 모습이다. 네이티리를  제외하면 모두 인간과 나비족의 혼혈이라 칭할 수 있다. 나비족은 손가락이 4개인데 혼혈종은 손가락이 5개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 이후 물의 부족에 결탁해 지내게 될 때는 나비족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그들의 정체성이 배척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1편에서는 인간과 나비족의 대결 구도라면, 2편에서는 아바타가 된 인간과 나비족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2편에서는 대부분 나비족의 모습을 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1편에서의 적이 2편에서는 아바타가 되어 등장해 되려 나비족처럼 행동하려 노력한다. 여기서 유일하게 인간 아이가 등장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편의 적의 아들이다. 인간이자 적의 아들과 함께 지내는 이질적인 가족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인간 아이는 늑대 소년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 인물 또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이후 아바타의 모습이지만, 친부의 의식을 가진 그를 구해주는 장면은 참으로 '인간적'이었다. 인간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 인지상정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피는 강하다고 해야 하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는 장면에서 사실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태생부터 나비족과 함께 지내도 결국 인간의 본성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싶기도 하고.      

2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름 아닌 '가족애'였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제이크 설리는 가족을 데리고 터전을 떠난다. 부족을 지켜야 했던 네이테리는 저항하지만, 그녀 또한 자신의 가정을 지킬 수밖에 없는 '엄마'인 것이다. 후반부에 그녀의 진한 '모성애'가 표출되는 장면에서는 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마지막 포효는 처절하고 참혹했다. 어떤 잔인함도 불사할 것 같은 모습에 상대 적도 두 손 두 발 들었으니. 전사 네이티리의 모습에서 암사자의 본능이 보였고, 모성이라는 동질감이 네이티르에게 유독 나의 시선이 가게 했다.      


반면 한 가정의 아버지라면, 제이크 설리에게 시선이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The Sullys stick together.(설리 가족은 하나다)"이라는 말을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세뇌시키듯 반복한다. 그의 삶의 중심은 가족이고 그래서 함께 행복하게 지내자는 말이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군인 출신인 제이크는 아이들에게 엄격하고 규칙 규율을 중시하며, 아들들에게 아버지를 'sir'이라고 부르게 한다. 엄한 아버지의 모습에 눈을 흘기는 네이티리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제이크의 내레이션 중에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Father protects. That's what gives him meaning.' 즉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스스로 각인시키는 장면인데, 아버지는 가족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그것만이 존재 이유라는 것. 엄격함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와 같기도 했다. 가족은 그의 삶의 본질이자 의미인 것이었다.      


가족은 그런 게 아닐까. 제이크와 네이티리야 말로,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에서 강조하는 '과제 분리'가 철저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의 과제, 어머니의 과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부단히 애쓰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한 가족애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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