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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Feb 26. 2024

절망 속에 뽀얀 희망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다

희망과 절망, 절망과 희망의 반복. 삶이란...

고교 시절 어느 따스한 봄날, 음악 시간. 친한 친구 한 명이 피아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선생님의 눈짓에 응답하며 두 손을 건반 위에 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순간 음악실은 선율로 가득 차 건반 소리들의 향연을 이루었고, 우리는 그 향연에 초대되어 그 시절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을 잠시 잊었다. 평소 고요히 수다스러웠던 그 친구의 열정적인 피아노 연주에 나는 잠시 넋을 잃었다. 아니 오랫동안 넋을 잃고 친구를 바라봤던 것 같다. 피아노 건반으로 큰 물결을 일으키는 거대한 바다의 신처럼 느껴졌으니. 신비롭고 신기한 장관은 보는 이의 침묵을 이끌어낸다. 경외감에 말문이 막히는 그런 침묵 같은.


중학교에 가면서 피아노를 더 이상 배우지 않았다. 가끔 마음이 어지러울 때 내 방 한편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반짝이는 까만색 영창 피아노와 만났다. 그 시절 피아노 의자 뚜껑을 열면, 좋아하는 곡들의 악보 피스들이 수십 장 쌓여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꺼내 한 곡씩 쳐내려 가며 마음을 달랬다. 건반으로 만들어내는 소리가 좋았고, 그 소리를 만드는 내가 좋았고, 그 소리에 시간을 잊을 수 있는 순간이 좋았다. 내 희미한 그러나 나름 위태로웠던 사춘기는 그렇게 피아노와 함께 침묵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된 나는 엄마가 자주 보고 싶었다. 기차를 타면 2시간 거리에 엄마가 있는데도 자주 갈 수 없었다. 30대 부단히 직장 생활에 애쓰고 있는 남편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피폐해져 가고 내 마음은 어지러워져 갔다. 집안에 가득한 공허하고 냉랭한 공기를 아이가 마시게 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다. 집안 가득 아름다운 음악 소리로 채워진 것이. 친정집에 있던 내 오래된 친구인 인켈 소형 전축을 가져왔고, 나는 아니 우리는 함께 아름다운 선율에 고요해질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곧장 전축으로 가서 라디오를 켰다. 93.1 MHz 항시 맞춰져 있던 라디오 주파수. 지금까지도 우리 집 소형 전축은 그 주파수에만 맞춰져 있다. 아름다운 소리는 내 귀를, 내 마음을, 나를 아름답게 한다. 아름다운 소리는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아름답게 한다. 아이를 바라보는 내 눈빛이 아름다워지고, 그 눈빛을 받는 아이 또한 아름다워진다. 공허하고 냉랭했던 공기는 사라지고 따스하고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그 공간을 채운다.


내가 소리에 민감하고(여전히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아름다운 소리를 갈구하듯, 아이 또한 그러했다. 밥솥에서 공기가 빠지는 소리에 화들짝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위 사운드북이라고 하는 책들은 쓰레기통으로 가기 일쑤였다. 아들을 재미있게 해주려고 한 아빠의 까꿍 같은 장난에 아이는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었다. 아주 가끔 점검차 집안에 사이렌이 울리면 우리는 집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여전히 사이렌 소리는 아이를 불안하게 하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 못하는 이유도 큰 소리 때문이다.


그런 아이에게 아이가 6살 때 즈음, 내가 좋아했던 피아노를 권했다. 다행히 내 예상은 적중했다. 피는 못 속이고, 공유된 유전자는 강력하다. 아이는 이내 피아노에 빠져들었다. 눈만 뜨면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렸다. 피아노를 더 치려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그렇게 6살 중반에 시작한 피아노가 아이의 열정과 더불어 3년이 지나고 있었던 그 어느 날이었다.


"엄마, 나 이제 피아노 안 칠래."


아이의 열정에 부응한 건 유전자를 공유한 엄마뿐 아니라 피아노 선생님 또한 그러했었다. 아이의 열정만큼 피아노 선생님의 열정도 대단했었던 거로 기억한다. 일주일에 두 번 오셨던 선생님이 세 번 오실 때도 있었고, 아이가 곧잘 하니 마지막에는 피아노 악보 책이 5~6권이 되어 있었다. 그 당시 아이의 음악 교육에만 내 열정을 쏟아 넣고 있었고, 나는 마치 내가 연주를 하는 것마냥 행복해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처럼 행복해했다. 시들어가고 있는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서 귀만 열어둔 채. 눈을 질끈 감고 귀만 호강하면서.


그때는 그랬던 것 같다. 아이가 정말 피아니스트가 될 것만 같았다. 음악 교육이 아이의 정서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내심 아이가 음악 전공을 한다면, 이라는 상상의 나래를 폈던 것 같다. 고교 시절 어느 한 음악 시간에 시간을 잊게 했던, 넋을 나가게 했던 친구의 피아노 연주를 보고 있었던 내 모습으로 말이다. 학창 시절 호르몬의 역습으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나를 편안히 가라앉혔던 건반 소리들을 만지작거렸을 때처럼 말이다. 내가 좋은 것은 내 아이도 좋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나를 닮은 내 아이에 대한 부모의 욕심이 아이를 결국 그것에서 멀어지게 했다.


아이가 피아노를 더 이상 치지 않겠다고 선포한 후, 우리 집 두 대의 피아노 뚜껑은 오랫동안 닫혀 있었다. 1년이 흐르고 또 1년이 흘렀다. 아이가 피아노 뚜껑을 직접 열어보기 전까지 절대 먼저 열지 않을 작정으로 피아노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거실 한 벽면에 나란히 놓여 있는 두 대의 피아노에, 항시 우리들의 시선 안에 있던 그것들에. 아픈 손가락. 피아노는 우리들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시선 안에 있던 그것들을 볼 때마다 나도 아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어 놓을까도 생각했었다. 아이의 손 때 묻은 장난감을 버리듯 그렇게 이것들을 버리기는 또 마음이 불편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아이가 학교 음악 시간에 리코더를 배웠다고 한다. 집에서 몇 번 연습을 하더니 반 친구들 앞에 나서서 리코더 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집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며 주구장창 리코더를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 '캐리비안 해적 ost'를 시작으로 꽤 빠른 곡들을 연습했다. 집에서 연습한 곡을 음악 시간마다 반 친구들 앞에서 들려주고, 아이의 열정적인 리코더 연주에 또 다른 열정적인 리코더 연주자가 나타나고. 아이는 어느덧 리코더 장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음악 세포가 다시 깨어나는가 하며 내 마음에 잔물결이 일었다. 하지만 절대 마음 쓰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아픈 손가락이 된 피아노가 거실 한편에 버젓이 나를 보고 있었다. 혹여나 내 마음에 일렁이는 잔물결이 순식간에 거대한 파도를 이뤄 아이를 잠식시키지 말라 이르고 있었다. 아이의 순간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몰래 남기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면 할 일. 만족스럽지 못한 연주를 화면에 담았다면서 나를 책망하기도 했다.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너의 지금을 엄마는 꼭 기록하고 싶어. 그때 많이 남기지 못한 게 참 후회되기도 하거든. 그때는 그게 영원할 줄만 알았었기에...'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숨어서 아이의 순간을 찍을 뿐.


그러다 아이 학교에서 '교내 오케스트라'를 처음으로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악기가 있는 아이들은 모두가 단원이 될 수 있었고, 내 아이가 단원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타악기' 오디션을 보는 것이었다. 쟁쟁한 후보들 중에 다행히 뽑혀 당당히 타악기 단원 중 한 명이 되었다. 큰 북, 작은북, 심벌즈, 트라이앵글, 캐스터네츠 등을 두드리며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등굣길 음악회를 열기도 하고, 가족과 지인을 초대해 송년 음악회도 열었다. 얼마 전에는 6학년 졸업식에서 졸업 축하 연주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후로 우리 가족은 시중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한 달에 한 번꼴로 보러 가고 있다. 아이는 전문 오케스트라 음악가들의 공연에 매번 감탄하고 감동했다. 선호하는 지휘자가 생겼고, 즐겨 듣는 곡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 뜨면 아침마다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눌렀던 그때처럼, 놀다 문득 리코더를 잡아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던 그때처럼, 아이는 자주 오케스트라 공연 영상을 찾아서 듣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피아노 곁을 서성이다 뚜껑을 열었다!


5년이 흘렀다. 아이가 피아노와 첫 만남을 한 지. 찰나와 같은 시간이란 표현을 나는 실감하고 체감한다. 나에게 지난 5년은 찰나와 같은 시간이라 여겨진다. 그 시간이 찰나와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내 마음이 이제 편안해졌기 때문인지도. 아픈 손가락이 더 이상 아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픈 손가락이 버젓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매 순간 나를, 그때를 반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내려놓음'과 '기다림'을 가르쳐 주었다. 내 시선과 내 생각 그리고 나의 취향과 선호로 아이를 자라게 할 수 없다는 그 지극한 진리도.


피아노 뚜껑을 다시 열게 한 것도 기다림으로 포장된 내 취향과 선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아이를 그 앞에 앉힌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음악을 다시 만났다는 것에 내 할 일은 여기서 끝난 듯하다.


아이의 음악 세포가 어디까지 뻗어갈지는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잔잔한 아름다운 이 음악의 물결을 즐기고 싶다.

음악을 닮아가는 아이의 지금을 내 눈에 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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