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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Feb 19. 2024

읽고 쓰는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

생각이 글을 쓰게 하고, 글이 사람들과 소통하게 한다

기록은 남기는 것이다.

나의 오늘을 남기는 것이다.

미래의 내가 과거가 된 나의 오늘을 추억할 수 있도록 오늘의 내가 나의 오늘을 남기는 것이 기록이다.


내 기록의 시작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서다.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 코로나가 한창일 즈음이니, 내 기록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 그동안 나는 미래의 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보여주고 들려주고 놀아주어야 하는 시절,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느라 나의 오늘을, 오늘의 나를 돌볼 틈이 없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들이 아이의 마음속에, 나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라 믿었다. 굳이 애써 우리들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더라도, 너라면 나라면 이 순간들을 떠올리고 추억할 수 있겠지라는 게으른 오만함이 있었다.     


어떤 일을 10년 동안 했다면, 그 분야에 얼추 전문가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살림도 육아도 여전히 초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요리를 친절하게 거부하는 남편, 집에서만 입이 짧은 아이. 나에게 정리는 눈에 보이지 않게 물건들을 어딘가 쑤셔 넣는 것과 같고, 겉보기에 깨끗하면 만사 오케이인 내 타고난 게으른 마음 좋음이 살림 초보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공허와 허무가 밀려왔다. 그동안 나는 뭘 한 거지? 손가락 사이로 흘러버린 시간들. 움켜쥘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시간들 앞에서 나는 텅 비어버렸다. 나에게 남은 건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내 아이.


그제야 여유가 생긴 걸까. 아쉬움이 남는 걸 보니.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아이의 하루들을 기록으로 남겼다면, 어제보다 조금 더 깊어진 나의 하루들을 기록으로 남겼다면...


공허와 허무의 늪에서 어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 당장 그 무엇을 시작하는 것. 그래서 오늘부터 오늘을 남기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하루를, 미래의 너와 내가 추억할 오늘의 너와 나를.   

   

블로그는 일상을 남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블로그는 나에게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었다. 현실에서는 부재한 나의 방이 블로그의 세계에서는 가능했다. 블로그에 접속하는 순간 나는 나만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현실에서 확장되어 펼쳐지는 나만의 세계가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자유로웠다.      


나의 일상을 소소히 남기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한 순간에 대한 내 생각을 짧게 남겼다. 사진을 요리조리 붙여가며 미래의 너와 나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흩어지지 않을 우리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장이라고 해도 좋은 글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내 일기장에는 나의 하루에 대한 반성과 뉘우침이 쓰이기도 했지만, 성찰하며 깊어지고 있는 나를 내가 응시할 수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지 않을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나만의 방에 누구를 초대할 생각은 없었다. 경계심이 가득한 나는 타인을 내 안에 자리하게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군다나 내 블로그의 시작이 일상 기록을 위함이었기 때문에, 내 일기장을 누군가 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들의 일상이 궁금한 나의 가족을 제외하고서는 누구도 내 일기장을 펼쳐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일기를 읽어 줄 현재와 미래의 독자는 일기에 등장하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일상 기록을 이어갔다.      


그러다 친구를 만났다. 현실과 블로그 세계를 함께 오갈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 현실에서 만난 친구는 자신의 블로그 글 하나를 나에게 공유했다. 이미 오랜 시간 블로그 세계에서 자신만의 방을 만들어 지내고 있었던 친구. 나만의 방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이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타인을 내 세계 안에 자리하게 했다. 처음이었다. 타인에게 나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타인의 삶에도 나를 자리하게 한 것이. 또한 그것이 내 기록의 또 다른 확장을 가져왔다는 것도. 더 이상 나만의 일기장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쓰는 공유하는 일기장으로 말이다.      


나의 일상을 소재로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타인에게 소소한 위안과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내 사소한 경험에 대한 생각, 아이와 나의 좌충우돌 일상에 대한 성찰, 읽었던 책에 대한 내 작은 소회, 내가 했던 여행에 대한 정보 등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으로 가득한 나만의 방에 하나 둘 이웃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방을 멀리서 힐끗 보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우연히 내 방에 전시된 글을 읽고 공감하나 꾹 눌러주고 가는 따뜻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러다 소중한 댓글 하나 남기며 소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쓴 일기에 한 줄 느낌을 써주셨던 어린 시절 담임 선생님이 떠오르기도 했고, 아이가 쓴 일기에 한 줄 메시지를 썼던 과거의 내가 떠오르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당시 담임 선생님도 나도 모두 일기라는 기록으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소통을 위한 하나의 창구, 일기라는 기록으로 말이다.      


블로그에 내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 타인과 소통을 위한 하나의 창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최근 부쩍 느끼고 있다. 내 일기장을 어린 시절 담임선생님과 공유했던 것처럼, 블로그에 기록하는 내 일상이 마치 타인과 공유하는 일기장처럼 말이다. 타인의 삶이 담긴 그들의 일기에도 나의 관심과 공감을 표현하면서, 나는 타인과 기록된 글로 소통을 하고 있다.


당시 담임선생님과 공유해야만 했던 일기 숙제에 불만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숙제는 숙제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 착실한 나는 열심히 글쓰기 숙제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과 공유하는 일기에 잠시 멈칫하는 순간이 문제라면 문제. 타인을 의식하는 글쓰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 일기를 볼 선생님의 존재는 내 글을 내가 검열하는 태도를 기르게 했다. 내 일기 안에는 예쁘게 포장된 낯선 내가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내 글은 곧 나를 의미하기도 하니, 쓰고 있는 나와 쓰인 나는 서로 만나지 못한 채로 존재하지 않았을까. 속시원히 험담을 늘어놓지도, 속앓이를 고스란히 풀어놓지도 못하고. 누구에게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비밀은 마음 저 깊숙이 꾹꾹 쑤셔 넣고서. 쓰여진 나를, 그 안에서 밝기만 한 나를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는 흐뭇했을 것이다.      


블로그에 내 일상을 남기고 타인과 소소한 소통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글을 써야 하나, 어디까지 써야 하나. 무엇을 남겨야 하고 또 누구를 위한 기록 이어야 하나. 나만의 방이지만 이곳은 누구나 초대될 수 있는 방이다. 내 일상 기록이지만 내가 쓰는 글은 누구나 공감하거나 공감하지 않을 수 있다. 나와 소통하는 타인은 내 글을 읽는 독자이기도 하고, 또 나는 타인의 글을 읽는 독자이기도 하다. 글에 쓰여 있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생각이 글을 쓰게 하고, 쓴 글이 사람들과 소통하게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만의 방에 어떤 글을 남겨야 할 것인가. 내 방에 방문한 사람들과 어떤 글로 소통을 이어갈 것인가. 어린 시절 내 일기처럼 나를 예쁘게 포장하고 나 스스로 검열한 글을 무한 생산할 것인가. 자신의 글이 자신의 브랜딩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에 나는 내 방에 어떤 글을 전시할 것인가. 타인의 존재는 나를 포장하게 하고 검열하게 하지만, 그만큼 나를 성장하게 하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내 글이 나만의 일기장이었을 때는 그야말로 마음이 동할 때만 일기장을 펼쳤다면, 타인과 공유하는 소통을 위한 글쓰기는 나를 매일 쓰게 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미래의 내가 오늘을 추억할 수 있게 오늘을 기록하고자 했던 내 다짐이 내 방을 방문하는 타인의 존재로 인해 이제는 소통을 위한 글쓰기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성장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담임 선생님의 한 줄 피드백으로 나는 매일 쓸 수 있었을 것이고, 더 잘 쓰고 싶었을 것이다. 친구에게 내 방 문을 열어 보였던 그 시작이 나를 지속적으로 쓰게 했을 것이다. 내 글을 읽어주는 타인의 존재는 나를 쓰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고, 나 또한 타인의 글을 읽으며 그들을 쓰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더더욱 자기만의 방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자신의 방에 초대하고 그들의 방에 초대받아 글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읽고 쓰는 삶으로 마음의 치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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