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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Mar 11. 2024

인생 소울 푸드, 엄마가 되어 맛본 미역국

소울 푸드가 있으신가요?

신혼 초 남편에게 만둣국을 끓여줬다. 멸치로 육수를 빼서 나름 공을 들여 만든 내 첫 만둣국을 그 앞에 대령했다. 10점 만점에 7점 이상은 되겠지라며 나름 기대에 차 그의 반응을 살폈다. 한 숟가락 떠먹더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리더니 이내 하는 말.      


"맛대가리 없어 못 먹겠다."     


그의 경상도 사투리가 식탁 위에 툭 뱉어졌다. 나는 남편이 한 숟갈 맛본 국대접을 낚아채 똑같은 사투리로 응수했다. "묵지 마라! 다신 안 해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혼집 둘만 있던 그 좁은 공간에서 비린 만둣국 한 그릇으로 아웅다웅했던 그 추억은 그야말로 소꿉놀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때는 얼마나 속상했던지. 설거지도 안 해본 내가 하루아침에 부엌을 내 공간처럼 여겨야 하는 것도 낯선데 요리는 오죽했으랴. 세월이 지나 이제는 아들에게 신혼 초 그 만둣국 일화를 들려주며 즐거운 복수를 하고 있다. 아이는 내가 해주는 만둣국을 아주 맛있게 잘 먹는다. 세월과 함께 내 요리 실력이 좋아진 것은 아니고, 실은 그때 이후로 우리 집 만둣국은 항상 시판 사골국물을 넣어서 만든다. 국물 육수용 멸치는 우리 집 냉동실에서 사라진 지 오래.


그동안 내가 살림하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먹는 걸 좋아하는 미식가나 혹은 대식가들은 먹는 행위를 즐겨하니 맛있는 음식을 잘 구별할 것 같다는 것과 스스로도 맛있는 요리를 잘해 먹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나는 미식가도 아니고 대식가는 더더욱 아니니, 먹는 것에 즐거움을 그리 느끼는 부류가 아니니, 내가 한 음식은 맛이 없는 게 당연하다는 자기 합리화를 지금 하고 싶은 거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소식이 맞는, 먹는 것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 생존형 인간이기에 내가 태어나 처음 요리한 만둣국은 비린내가 가득한 게 당연한 것.


그동안 인생 음식 같은 건 없었다. 가리는 음식도 없었지만 좋아하는 음식도 없었다. 음식보다는 그 음식이 차려진 분위기가 좋으면 좋았지, 음식 자체가 좋아서 좋은 적은 없었다. 음식은 분위기를 먹기 위한 수단일 뿐,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한 수단일 뿐. 개인적으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좋은 이유는 내 앞에 놓인 새하얀 식탁보에 뽀얀 식기, 얼룩 하나 없는 영롱한 투명 물 유리잔과 정갈하게 놓여 있는 수저가 내 눈을 즐겁게 하지, 차려진 음식은 사실 뒷전이다. 물론 음식의 맛은 기본 중에 기본이어야 하지만 나에게 음식의 맛은 덤일 뿐, 음식의 멋을 선호한다. 낮의 분주한 기운이 착 내려앉은 어느 어스름한 저녁, 하얀 식탁보 위 작은 캔들의 불길이 바람을 따라 춤을 추고 있고, 마주 앉은 상대와 나누는 담소도 춤이 되어 음식의 맛을 돋우는.


이제 살림한 지 10년이 넘어가니 사실 음식 먹는데 분위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네 엄마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남이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음식이 아닌 분위기를 먹었던 내가, 이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분위기 무상관 그냥 '남이 해주는 음식'이다. 살림을 10년 넘게 했다면 그만큼 요리 내공이 쌓여야 할 텐데, 여전히 내 요리 실력은 초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엄마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냐?’라는 시어머님 질문에 아이가 ‘부대찌개요!’라고 곧장 대답하는 바람에 얼굴을 들 수가 없던 적이 있다. 시어머니가 해준 김치에 떡, 소시지와 라면을 넣어서 대충 끓여 낸 부대찌개가 아이의 원픽이라니. 시부모님도 내 요리 수준이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임을 직감하셨겠지. 다행히 아이는 두 번째로 맛있는 음식이 엄마의 '미역국'이라고 해서 내 체면을 조금 살려주기도 했다.


남이 해주는 음식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미역국'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니 아이에게 자주 해줬고, 큰 솥을 꺼내 한 달에 5~6번은 미역국을 끓여 먹는 것 같다. 소분해한 자른 미역을 물에 몇 시간 불려 놓고, 소고기 국거리를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불린 미역을 넣어서 같이 볶은 다음, 물을 부어서 푹 끓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내 비밀 병기, 참치액으로 간을 하면 깊은 손맛을 내는 미역국이 탄생한다. 비염 알레르기가 심한 아이에게 좋은 인동 줄기를 끓인 물을 밥을 지을 때도 넣지만 국을 끓일 때도 넣어 건강까지 생각한 우리 집 미역국.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미역국은 우리 집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중 하나다.      


미역국을 좋아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남이 해주는 음식을 좋아하게 되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남이 해주는 미역국’이 된 것은 내가 엄마가 되어서부터다. ‘남이 해주는 미역국’에서 ‘남'에 해당하는 사람은 유일무이 대체 불가한 한 사람, 엄마. 엄마가 해줬던 산후조리 미역국은 그 이후로 주욱 내 소울 푸드가 되었다.


산후조리원에서도 빠지지 않고 자주 등장하는 국이 미역국이다. 산후조리에 좋다고 알려진 미역국은 조리원 식탁에서 필수 음식. 하지만 산모들이 미역국을 지겨워한다고 해서 다른 국들을 주기도 했지만, 나는 미역국이 지겹지 않았다. 맛있다기보다 산후조리에 도움이 되니 먹어야 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맛보다 의무감에 먹었던 음식 미역국. 모성애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만 같은 음식. 엄마가 된 내가 아기를 위해 먹지 않아야 하는 음식처럼 미역국은 내가 엄마로서 먹어야만 하는 음식. 산후조리원의 미역국이 소위 '산모 미역'을 쓰지 않고 맹숭맹숭한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는 것을 퇴소 후 집에 와서 나의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고서야 알았다. 산모 미역으로 끓인 제대로 된 미역국이었다면 의무감이 아닌 맛으로 먹었을 텐데.      


출산 후 집에 와서도 매일 미역국만 먹었었다. 친정엄마는 지겹지도 않냐고 하셨지만,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미역국에 비밀 병기, 참지액을 넣어서 그 맛을 내려해도 그때 엄마가 해준 산후 미역국의 맛은 낼 수도, 잊을 수도 없다. 미역국이 내 소울 푸드가 된 건 그때부터. 소고기를 듬뿍 넣고 산모용 질겅질겅 한 미역으로 푹 고아 끓여 낸 엄마표 미역국이 내 소울 푸드가 된 것이. 엄마가 되어 아기를 내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나의 엄마는 엄마가 된 나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매 끼니마다 미역국을 먹어서 질릴 법도 한데, 너무 잘 먹는 딸의 모습을 보고 엄마는 놀라하며 매일 커다란 솥 앞에 서 계셨다. 초여름의 더위에도 집은 산모와 갓 태어난 아가를 위해 후끈했고, 엄마는 매일 불 앞에서 땀을 흘렸다. 나는 사골 국물처럼 뽀얗고 걸쭉한 미역 국물을 마시고 또 마셨다. 엄마의 사랑을 마시고 또 마셨다.

     

아이의 생일마다 미역국을 내 손으로 정성 들여 끓여보지만, 음식은 손맛이고 내공이며 축적된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 나이만큼 자라 있는 엄마의 사랑이 만들어내는 손맛은 내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다. 내 나이만큼 성숙한 엄마의 내공은 내가 내 아이의 나이만큼 성장해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 있는 만큼 그 세월만큼 나도 성장하고 성숙하게 된다. 이제 엄마가 된 지 10년, 엄마가 갓 되어 맛본 내 엄마의 그 미역국 맛을 어찌 감히 따라 낼 수 있을까. 엄마 나이만큼 세월이 흐르면, 나도 자연스레 깊고 그윽한 미역국의 맛을 낼 수 있을까. 내 인생 소울 푸드가 된 그때 그 사랑의 맛을 낼 수 있을까. 손맛은 사랑을 주고받는 세월과 그 세월의 축적으로 완성된다. 내 아이의 소울 푸드는 앞으로 더 많은 세월과 사랑의 축적으로 만들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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