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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Mar 18. 2024

"아들아,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한다"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나를 아끼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내 아이와 분리 수면 시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시도라고 썼지만 사실 그 어떤 시도도 하고 있지 않다. 더 어릴 때야 드문드문 아이에게 "언제 혼자 잘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 질문의 의도나 내막을 잘 아는 나이이기에 그 어떤 것도 아이에게 무색한 시도일 뿐이다. 그럼에도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자연스레 아이 스스로 분리 수면을 원할 때가 오니 그때까지 내 마음은 진행 중이라고 여기고 싶어서다.      


아이가 하나라 사실 '비분리 수면'의 기간이 훨씬 길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언제나 항상 바쁜 아빠의 자리는 크게 느껴지고, 둘만 있는 집은 점점 적막해지고 있으니, 아이와 내가 합심해서 적막을 채우지 않으면 집은 그야말로 고요한 절간과 다름없다. 그 합심이 어쩌면 아이가 아닌 부모인 내가 아이와의 분리 수면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가고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은 '내 아이가 아직 원하지 않아서요'라고 푸념하지만, 속내는 '내가 아직 원하지 않아요' 일지도 모르는 겉과 속이 다른 나. 불현듯 내가 무서워진다.     


언제 아이가 스스로 분리 수면을 원하게 될지 참 궁금하지만, 이 무색한 궁금증을 묵혀 두려 한다. 언젠가는 자립해서 내 품을 떠나게 될 아이를 두고 미리부터 '언제 언제 언제'라는 질문은 무색하다 못해 향후 나 스스로 후회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니. 잠자리가 불편해서 낑낑거리지만, 그 언제가 오게 되면 허전함에 잠 못 이룰 거면서. 인간의 마음이란, 내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 것인가. 지금은 돌아가셔 안 계신 내 할머니가 자주 하신 말씀인 '변덕이 죽을 끓듯 한다'가 엄마가 되니 자주 생각이 난다.      


어젯밤도 불을 끄고 아이와 한 침대에 누워 평소와 다름없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와의 분리 수면 시도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 좋은 점 하나는 잠자기 직전 아이의 진짜 마음을 꺼내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가 스스로 꺼내보이기도 하고. "엄마, 우리 이야기하다 잘까?" "오늘 하루는 어땠어?"라는 질문을 아이가 먼저 훨씬 오래전부터 나에게 건넸다. 한때 잠자리 독서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 열혈 엄마에게 아이가 먼저 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으니. '엄마, 책이 아니라 나를 봐주세요.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그렇게 에둘러 엄마에게 건넸던 무심해 보이지만 섬세한 아이.


어제도 여느 때처럼 깜깜한 어둠 속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서로의 귓가에서 소곤댔다. 이야기의 시작이 뭐였는지는 흐릿흐릿.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아빠'에 대한 것으로 흘러갔다. 아이는 슬쩍 아빠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내가 여전히 어린 줄 아나 봐. 초등학교 1~2학년 때 하던 얘기를 아직도 하고 있어. 안전 안전 휴..."      


잠을 달아나게 하는 아이의 속내. 흐릿했던 내 의식이 뭐에 한 대 맞은 것처럼 번쩍! 나의 예민한 촉 레이더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무조건 경청의 마음으로 반응해야 할 때다. 반문을 하거나 잔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무조건 "정말? 진짜? 그랬어?"의 반응만을 장착하고 있어야 하는 순간이다! 아이는 내 반응에 주저리주저리 아빠에 대한 불만 그리고 엄마인 나에 대한 솔직한 심정까지 줄줄 읊어대기 시작했다. "아빠는 욕조 안에 커튼을 자꾸 치라고.. 반만 치라고 하더니 점점 75프로 쳐버리고..." "어떨 때는 팬티까지 입혀주려고 하고..." "가끔 날 귀찮아하는 것 같고..." 맥락이 전혀 없는 조각 문장들이 아이 입에서 툭툭 뱉어 나왔다. 그것들을 조합하려 머리를 굴리는 사이, "나는 엄마가 더 좋아!"라는 말로 아이는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었다.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니면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어두운 정적 속에서 유일하게 요란한 내 마음. 아이의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주기만 하면 내 평생 반려자가 너무 불쌍해 보였고, 아빠와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아이에게 아빠를 불만 가득 생각하게 둘 수는 없었다. ‘이녀석, 어릴 때는 아빠와 주말마다 공차기를 하면서 아빠가 더 좋다고 하더니...’ 두 남자 사이에서 사랑인지 의리인지 모를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나의 남편을 두둔했다. 아빠가 자상해서 그렇다, 아빠 같은 사람 잘 없다, 아빠 어릴 때 친구 중에 누가 침대에서 떨어져서... 이러쿵저러쿵 내 특유의 말꼬리가 길어지는 것을 가까스로 제어하면서 차근차근 최대한 담백하게 말을 건넸다. 아이는 이건 납득이 됐다, 이건 아직 잘 모르겠다, 이건 수긍할게 등등의 말로 응수했다. (내 인생 두 남자, 참 어렵다..)     


그러다 나는 오늘 밤을 하나의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아들아,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해."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동그랗게 뜬 아이의 두 눈이 보이는 듯했다. 자신은 아빠보다 엄마를 더 사랑한다고 했는데 엄마는 아들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게 말이 되냐며, 놀람과 울분이 뒤섞인 채 물었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나는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그다음이 가족이라고... 그럼 가족인 아빠와 자기 중에 누구를 더 사랑하냐는 아이의 집요한 질문이 이어지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하고, 사랑하는 아빠와 함께 낳은 너를 사랑해.”      


결국 아이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엄마에게 가장 첫 번째로 사랑하는 사람이 본인임을 확인을 하고 잠에 들었다. 남편보다 아들을 더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편안하게. 그럼에도 스스로를 가장 사랑한다는 엄마의 말이 믿기지 않은 채로 잠에 빠졌다. '아빠보다 엄마를 더 사랑한다'라는 말을 따뜻하게 건넨 아이는 졸지에 '엄마는 엄마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고 만 것이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씨익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엄마, 진짜 나보다 엄마 자신을 더 사랑해?" 아이의 집요함은 남편을 똑 닮았다. 사랑의 집요한 확인은 내 인생 두 남자가 아주 똑 닮았다. 엄마 말의 함의를 분명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는 엄마 입으로 직접 내뱉는 아들인 자신에 대한 사랑을 확인해야했을 것이다.      

"아들아, 엄마가 엄마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한 이유는 우리 아들도 너 자신을 가장 사랑했으면 해서야.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할 수 있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소중하게 사랑할 수 있어. 그래서 그렇게 말한 거야. 당연히 우리 아들을 엄마 자신보다 사랑하지."    

 

쓰고 보니 참 희한하게 전개된 어젯밤 이야기에 괜스레 뭉클해진다. 아빠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다 어쩌다 엄마에게 사랑을 갈구하게 된 아이도 그렇고, 자상함이 지나쳐 아이에게 아빠보다 엄마를 더 사랑한다는 말을 듣게 된 남편도 그렇고. 어쩌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 아이는 훌쩍 자라있고, 남편의 새치는 무성해지고 있으며 내 눈가는 자주 촉촉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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