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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Apr 01. 2024

몸과 삶을 생각하다

건강을 생각할 나이인가 봅니다.

배가 부르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온다. 약봉지를 뜯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약이 한 움큼이다. 이것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다. 역류성 식도염? 올 것이 왔구나. 그동안 내 식도가 잘 버텨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 사실 굳이 명명하자면, 나는 '습관성 구토' 증상이 있다. 다행히 명백한 이유가 있어서 그리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 명백한 이유라면은 빈번한 급체. 양방 의학에서는 위염이라고도 하던데, 자주 급체를 해서 20대 때부터 내 핸드백 안에 들어 있던 필수품은 수지침이었다. 특히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면서는 급체 시 응급처치도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내 열 손가락을 그 자리에서 내가 직접 따서 피를 내야 뭔가 체기가 내려가는 듯했다. 누구는 심리적인 거라고 수지침 무용론을 주장할지 몰라도 예민한 내 몸은 급체 시 수지침 처치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체기가 심할 때는 아무리 손가락에 구멍을 내어도 피가 새어 나오지 않았고, 체기 정도에 따라 피 색깔이 달라지고, 심할 때는 피 색깔이 거무튀튀한 것을 보면 손가락에 구멍을 내는 것은 급체에 효과가 있다. 아이를 낳고는 아이가 가끔씩 수지침으로 내 손가락을 따주기도 하니, 나는 여전히 급체와 가깝게 지내고 있다.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하루는 약과 수지침으로도 체기가 해소되지 않은 날이 있었다. 여전히 머리가 핑핑 돌고 속이 메슥거리고 뭔가가 속에서 올라오는 듯, 화장실로 뛰어갔고 허리를 굽혀 변기통을 안고 그 자리에서 게워냈다. 순간 속이 편안해지면서 체기로 인한 어지러움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명백한 이유가 있는 습관성 구토 증상이 생긴 것이. 약과 수지침에서 끝나지 않고 게워내야만 하는 루틴이 생긴 것이. 체기가 있을 때마다 여러 절차 후 나는 화장실로 달려간다. 음식물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속이 편해진다. 그리곤 마음도 편해진다. 급체도 수지침도 모두 심리적인 게 아닌데, 구토 역시 그렇진 않겠지? 분명 도움이 되는 의학적 방법이겠지? 그러다 보니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은 거다. 목감기 때문에 목이 부은 게 아니라 구토로 인해 목이 부은 거였다. 정확한 진단을 내린 의사 앞에서 괜히 죄책감이 드는 건 왜일까. 나도 모르게 습관으로 굳혀진 명백한 이유가 있는 습관성 구토 때문이겠지. 가벼운 체기에도 습관적으로 화장실로 달려가는 나를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같은.


일주일을 삼시 세끼 식사 후 또 배부르게 약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으며 지냈다. 덕분에 커피도 줄였고 맥주 한 캔도 내 삶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며칠 전이었다. 새벽녘 잠자리에서 나는 훅 일어날 일이 있었다. 의식이 몽롱한 상태 그리고 잠자리에서 갑작스러운 기립. 부모가 아이를 향한 반응은 이런 것이라고 보란 듯이,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배가 아픈지 자다 일어나 화장실로 간 아이의 부름에 누구보다 빠르게 훅. 그러다 순간 핑! 천장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한쪽 방향으로 빙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지난밤 체기가 밤새 남아있었던 건가. 식탁으로 가 붉은 불빛 아래서 루틴대로 수지침으로 손가락을 끝을 따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 새빨간 피가 방울방울 맺혔다. 화장실로 가려던 찰나 휘청, 다시 온 세상이 빙그르르. 왼쪽에 있던 벽을 왼손으로 짚으며 화장실까지 걸어갔다. 내 나이 40 평생 살아도 이런 어지러움은 처음이었다. 급체에 배를 잡고 굴러도 이런 어지러움은 없었다. 천장이 쉴 새 없이 왼쪽으로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몇 년 전 남편은 이석증으로 한 달을 넘게 고생한 적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이 찾아왔고, 증상이 호전되었어도 세상이 잠시 빙글빙글 돌았던 그 고통스러운 감각 때문에 여전히 몸을 사리며 살고 있다. 그때의 고생을 옆에서 봐왔기에 나에게도 갑작스러운 이석증이 찾아왔다는 것을 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한쪽으로 웅크려 누워있으니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다시 잠을 청하고 있던 아이에게 부탁했다.


"엄마 한 번 안아줘."


귓속 눈에 보이지도 않는 돌(?) 하나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을까. 무력했고 나약했다. 벽을 잡고 걷는 내 모습에 앞으로 얼마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무서웠다. 불과 몇 분 전과 후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치료가 가능한 경미한 증상인 줄 알면서도 순간 달라져 있는 내 몸의 상태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두려움은 몸보다 정신을 더 나약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약해진 마음에 명약인 내 아이의 온기와 손길이 필요했다. 아이는 내 등 뒤에서 자신의 팔을 뻗어 나를 감쌌다. 내일 아침은 이 모든 게 한낱 꿈이길 바라며 명약을 두른 채 편안히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한쪽으로 웅크려 잠이 든 어젯밤 자세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세상이 돌고 있지 않았다. 분명 어젯밤 내 세상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맞았고 그렇기에 나는 내 앞에 펼쳐질 낯선 삶에 두려움을 느끼고 겨우 잠에 들었던 것 같은데…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의 발과 다리를 조물조물하면서 아이를 깨웠고, 평소처럼 부엌으로 가서 아이의 아침밥을 준비했다. 어? 평소와 같은 삶이 되려 의아해지며 어젯밤에 나에게 찾아온 변화를 찾고 있는 나. 분명 급체 시 어지러움과 차원이 다른 어지러움이었는데, 반대쪽으로 가만히 누울 수 없을 만큼 누워서도 세상이 돌고 있었는데, 벽을 짚고 걸어 다닐 만큼 나약하게 휘청거렸는데, 갑자기 가족이 소중해지고 별 탈 없는 내 평범한 삶에 평소 느끼지 못했던 감사함을 마구 느끼게 되었는데. 어? 어? 어?


평소처럼 아이는 혼자 학교에 등교했고, 나는 곧장 병원으로 갔다. 역시나 어젯밤이 한낱 꿈은 아니었었다. 이석증 진단을 받았으나 귓속에 돌이 자동으로 빠져나갔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즉 증상이 호전된 거다.


내 삶은 변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여전히 그대로다. 매일 아침 아이의 볼에 내 볼을 부비며 우리의 아침을 시작하고, 아이의 다리를 조물조물 주무르며 아이의 의식을 깨운다. 아이가 학교 가기 전까지 각자의 아침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서 식탁에 앉아 서로 마주 보며 아침 식사를 한다. 바쁜 아침이지만 밥 먹는 시간만큼은 바쁘지 않았으면 좋겠다. 준비물이 없는지 넌지시 물어보고 학교 갈 준비를 아이 스스로 하게 한다. 등교 전 가장 중요한 업무, 아이가 나서기 전 현관에 서서 아이를 힘껏 끌어안는다. 아이의 탱글 한 양볼에 내 입술을 얹어 쪽쪽. 눈을 슬며시 감아 엄마의 사랑을 한껏 충전하고서 씩씩하게 집을 나서는 아이. 이 정도 충전이면 오늘 학교에서도 무탈하게 잘 보낼 수 있겠지. 거실 창문을 열어 한 번 더 내 사랑을 쏘아 보낸다. "빠빠시 빠빠" 그러고는 뛰어가는 아이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이 모든 것이 지난 한 주 일어난 일이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해 배가 부르게 약을 먹었고, 급작스러운 이석증으로 밤새 한쪽으로 웅크려 자며 달라질 내 삶에 대한 두려움을 배불리 먹었다. 배불리 먹은 만큼 내 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회복된 만큼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의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그동안 내 옆의 소중한 사람의 눈을 가슴으로 보지 못했다.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만 같기에, 영원히 내 곁에 지금과 다름없이 존재할 것만 같기에 제대로 돌보지 않고 가슴으로 대하지 않았다. 나 또한 항상 이 자리 이대로, 영원히 지금 이대로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오늘이 아닌 내일, 지금이 아닌 다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내일이나 다음이 영원할 것만 같은 생각으로.


몸이 아프니 몸을 생각하게 되고, 몸을 생각하니 삶을 생각하게 된다. 내 몸이 아프니 내 옆의 사람들이 내 시선에 머물고 내 삶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아프고 나면 큰다고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나는 여전히 자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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