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절에가다 Mar 25. 2024

산책가의 몽상

봄이 오고 있네요. 봄 기운을 따라 발걸음 가는대로 가볼까요?

나른해지는 걸 보니 봄이 성큼 다가왔나 보다. 따사로운 햇살로도 봄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계절마다 내리쬐는 햇볕이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지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럴 때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 더없이 다행스럽다. '봄 햇살' 한마디면 모두가 수긍할, 굳이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뜻을 전달할 수 있다. 땡글땡글한 가을 햇볕 말고 댕글댕글 한 봄 햇살. 쏭글쏭글한 가을 햇볕 말고 송글송글한 봄 햇살. 댕글댕글 송글송글한 봄 햇살에 여기저기서 만물이 깨어나고 있다. 그리고 나도 깨어나고 있다.


시원하게 기지개를 주욱 켜고 콩나물처럼 생긴 에어팟을 주머니에 챙긴다. 가벼운 천 가방 속에 그리 묵직하지 않은 책 한 권을 넣는다. 통풍 잘 되는 메쉬 운동화를 꺼내 신는다. 봄 햇살에 온몸이 들썩인다. 더 이상 집안에 콕 박혀 있을 수가 없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과 마음을 봄 햇살에 따스하게 녹일 때가 왔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기운에 흠뻑 스며들 시간이 왔다.


이른 봄, 아침 산책에 고맙게도 동행이 있다. 오는 봄을 혼자서 고요히 맞는 것도 좋지만, 동행이 있어도 좋다. 그 동행은 곧 나와 헤어질 것이다. 20분 후면 그는 학교로 가고, 나는 그와 짧은 헤어짐의 시간을 갖는다. 헤어짐이 있기에 함께 함이 즐겁고, 다시 만남이 있기에 헤어짐이 그리 슬프지 않다.


김광민의 '학교 가는 길'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나의 학교에 가는 길은 아니지만 내가 더 즐겁다. 봄과 김광민의 곡 '학교 가는 길'이 이렇게나 잘 어울릴 줄이야. 분명 김광민 아저씨는 지금 같은 이른 봄에, 새싹들이 고개를 조그맣게 쏘옥 내밀 때, 이 곡을 작곡했을 거야. 우리는 이 곡을 흥얼대며 걷는다. 나와 동행하는 그는 순간 지휘자가 된다. 허공에 조그만 손가락이 이리저리 떠다닌다. 취향은 유전일까 환경일까. 내 머릿속은 봄맞이 산만한 생각들이 떠다닌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둘의 적막한 공간을 클래식 라디오로 채워서 그런가, 아니면 대대로 이어져온 음악적 감각이 아이에게도 슬며시 보이는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걸 네가 좋아해서 기분이 좋다. 봄 햇살 덕분이다. 내 기분이 좋은 건 봄 햇살 덕분이다.


"잘 다녀와." "빠빠시 빠빠."


우리 둘만의 외계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가족에게 어떤 위기가 오면, 예를 들어 인공지능 로봇이 서로의 얼굴로 서로 인 척한다면, 우리만의 외계어로 서로를 알아보자는 요상한 상상을 한 적 있다. 이 외계어를 말하지 못한다면 그건 짝퉁이다. 우리 둘만의 비밀 암호. 어느덧 십대가 된 아이는 무심하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지만, 나는 기어코 이 비밀 암호를 모두가 들을 정도로 크게 외친다. 엄마는 네가 뭐라 해도 꿋꿋하게 너와 나의 비밀을 간직할 테다.


동행이 즐거운 이유는 짧은 동행이어서다. 나는 곧 챙겨온 콩나물 모양 에어팟을 귀에 장착한다. 최근에 본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ost를 검색한다. 새하얗게 눈부신 티모시 샬라메, 그의 피아노 반주 그리고 흥얼거림에 취한다. 어쩜! 이렇게 뽀얗고 어여쁜 사람이 있지. 브라운 잔 체크무늬 모직 재킷을 입고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외모가 자꾸만 노래를 방해한다. 폰을 어여 주머니에 넣고 아름다운 곡을 귀로만 들으려 한다. 여긴 봄비가 오는 어느 뉴욕 거리다. 비가 오지만 하늘은 맑고 밝다. 비를 맞아 축축 젖은 꼬불거리는 그의 머리컬이 자꾸 떠오른다. 외모는 역시나 방해꾼이다. 노래에 더 심취해 보려 멀리 날아가는 새들을 응시해 본다.


자주 이사를 다녀 덕분에 자동으로 집 정리가 되던 때가 있었다. 여기도 살아보고 저기도 살아보는 즐거움을 애써 누렸다. 아이가 다섯 살 무렵 제주도에서 잠깐 살아볼까 하는 절실하지 않았던 우리의 욕심은 남편의 직장에서도 투명하게 보였나 보다. 모두가 제주에서 한 번쯤 지내보고 싶어 하던 때였으니, 연고가 없느니 뾰족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느니 해서 남편 직장에서는 제주 지점 발령 신청을 거절했다. 간절함으로 포장하려 했으나 절실하지 못했던 뻔히 보였던 속내. 우리는 차선책으로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선택했고, 제주로 가지 못했던 실망감으로 고른 이 동네에서 7년째 살고 있다. 차선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되도록 제주에서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곳으로 골랐던 제주 다음의 차선. 나무가 많고 실개천이 있으며 키 낮은 아파트들. 근처에 한옥마을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돌로 된 산이지만 가파른 산을 탈 수도 있다. 쓰고 보니 제주와 닮은 듯 닮지 않은 곳이 우리 동네인 듯하다. 어쨌든 한 곳에 이리 오래 정착하여 사는 게 처음이니 이곳이 차선이었으나 최선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동네 모습이 이러하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이곳을 닮아있다. 이른 새벽 사위가 밝아오기 전부터 어르신들은 실개천을 따라 부지런히 산책을 즐기신다. 노부부 어르신들이 손을 잡거나 잡지 않고 총총히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겨울에는 니트 모자와 장갑을 꼭 챙겨 따스하게 산책하시고, 때론 반려견들도 옆에서 종종걸음하며 동행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더 일찍, 무더운 새벽 일찍 일어나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도 많이 보고. 우리 동네에 이사 와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강아지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강아지를 키우는 인구가 이렇게나 많은 지였다. 사람이 산책하기 좋은 곳은 단연 개들에게도 산책하기 좋은 곳이니 그럴 법도 하지만, 아이가 훨씬 어렸을 때 그러니까 작은 강아지조차 무서워할 때 산책하는 개들을 피해 다니느라 우리의 산책이 불가한 적도 많았다. 반려견들을 많이 보고 자라서 그런지 이제 아이는 '엄마, 우리도 강아지 키우자'라는 말을 하곤 한다. 뭐든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극이 무뎌지는 시간이 필요한 거다.


봄이 오고 있다는 느낌은 실개천에서 산책하는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동안 나처럼 집에서 웅크리고만 있던 사람들이 봄기운의 등쌀에 못 이겨 실개천으로 삼삼오오 모여 걷기 시작한다. 걷다 보면 더 걷고 싶고, 걷다 보면 더 행복하다. 거뭇거뭇했던 줄기 가지들이 물을 빨아들이듯 초록을 빨아들여 초록 옷을 입기 시작하고,  나뭇가지에 연둣빛깔 나뭇잎 싹들이 듬성듬성 돋아나있다. 흰 얼굴에 까만 머리색을 하고 붉은 몸에 푸른 날개를 가진 곤줄박이들도 간혹 보이고, 청둥오리 부부들은 겨우내 어디 있다 나타났는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백로나 왜가리가 개천에 떡하니 박제된 모형처럼 서 있을 때도 있고, 가끔 그것들이 먹이를 찾아 머리를 물 안으로 집어넣고 목을 두 번 구부리고 서 있을 때도 있다.


걷다 보면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봄을 닮았다. 봄 햇살이 서로의 얼굴에 비치며 어색한 짧은 눈 맞춤을 슬며시 하고 지나간다. 이 순간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언제 또 만날지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린 이 봄을 함께 누리는, 이곳을 함께 동행하는 산책자니까. 매일 아침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우리 동네 사람이니까. 혹여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또 만날 수 있는 사이니까. 우리는 실개천으로 이어진 사이니까.


요 며칠 봄 햇살을 받으며 실개천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보니 더 걷고 싶었고, 걷다 보니 더 행복해져있었다. 귀에서는 아름다운 남자의 피아노 연주에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얹어져 지금 이 순간의 행복감을 배가시키고, 봄기운에 들썩이는 만물의 생명력에 눈이 더없이 즐겁다. 발걸음은 점차 가벼워지고 발걸음이 가는 대로 나를 어디로든 데려가 본다. 그곳이 어디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나는 오늘 하루 나만의 세계에서 고요히 봄의 기운을 느끼는 산책자가 된다.

이전 18화 "아들아,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