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절에가다 Apr 08. 2024

맨발로 봄의 왈츠를

맨발 걷기로 건강을 유지해볼까요?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중 하나인 ‘인생의 회전목마‘가 문득 떠오르는 하루. 3박자 왈츠곡인 이 곡과 올해 봄이 특별히 더 어울리는 것은 단지 내 머릿속 심리적인 각인 때문만은 아니겠지. 반복 듣기에 의한 심리적 각인. 아이는 요즘 이 곡을 즐겨 듣고 있고 때론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으니 나는 덕분에 간적접으로 이 아름다운 왈츠곡을 반복 듣기 중이다. 쿵짝짝 쿵짝짝. 쿵짝짝 쿵짝짝.      


봄이 되었으니 맨발 걷기 모임도 재개다. 작년 한 해 격주에 하루, 동네 낮은 산을 맨발로 걸었었다. 둘이 하던 맨발 걷기가 셋이 되고 넷이 되어서 둘둘 짝을 이뤘고, 넷이 아니어도 둘이나 셋만 되어도 우리는 맨발 걷기를 이어갔다. 올해는 엄마들 나이도 하나 더 먹었고, 아이들의 하교도 작년보다 더 늦어졌으니 올해는 격주가 아닌 매주 우리들의 건강을 좀 더 챙겨보기로 했다. 40대 중반 혹은 후반을 향해가는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챙겨야 할 때라는 사실을 몸소 절감했다. 영양제 몇 알을 근근이 먹으며 건강을 챙겼던 과거에서 벗어나 올해는 땅의 기운을 자주 느껴보자며 약속했었다. ‘엄마가 건강해야 한다’라는 진부한 문장을 올해는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자며.     


황사로 인해 누런 하늘 그 아래 모래 섞인 대기 속에 내 목숨을 맡길 수 없어 며칠 집 밖을 나서지 않았었다. 원인을 알 길 없는 아이의 비염 알레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눈과 목구멍이 함께 따끔거리는 내 몸뚱이를 보고 있자니 선뜻 밖을 나설 수가 없었다. 면역력 좋은, 튼튼한 유전자의 힘도 나이 앞에서는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을 이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류성 식도염에, 이석증에 지난 몇 주 약을 밥보다 배불리 먹었으니 황사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과신하지 말자. 내 몸을.      


다행히 이번 주는 지난주 하늘을 누렇게 덮었던 황사가 얼추 바람에 실려 갔는지 하늘이 뽀얀 하늘색이었고, 우리는 지난주 못했던 맨발 걷기를 재개했다. 며칠 사이 개나리꽃들이 서로의 손가락을 얼개 얼개 잡고 피어나고 있었고, 산에는 내가 이뻐하는 이파리 없는 진달래가 곳곳을 수놓았다. 내가 나의 동행이었다면 카메라를 들어 사진으로 남겼을 풍경들이 타인과 동행했기에 이파리 아직인 산진달래는 내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있다. 내가 나의 동행이라면 봄을 즐기는 고독한 소로우가 되었겠지만, 타인과 함께 봄을 느끼는 순간은 고독할 겨를도, 외로울 겨를도 없이 흘러가버린다. 함께이기에 누리는 시간의 채워짐 덕분에 나는 내 머릿속에 고이 간직할 진달래를 마음에 담아왔다.      


맨발 걷기 열풍이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동네 곳곳에 맨발 걷기 장소가 만들어지고 있다. 황토를 부어 놓았기도 하고, 땅만 흙으로 편편히 다져놓기도 했다. 그동안 산을 오르내리느라 꽤 많은 걸음을 맨발로 걷는 우리에게 인위적으로 조성해 놓은 맨발 걷기를 위한 길은 너무 좁고 짤막해 보인다.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보이기도 하고 형식적인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여기저기 조성된 맨발 걷기 공간을 보니 건강을 돌보는 인구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그 안에 속해 있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동네에 산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멧돼지 출몰 위험 지역이라는 현수막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 문구를 마주칠 때마다 산속 어딘가에 살고 있는 멧돼지를 상상하게 되지만, 풀숲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에 움찔하기도 하지만, 동행이 있기에 두려움은 희석된다. 누구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하는데, 나는 눈앞에 보이는 사람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멧돼지가 더 무섭다. 몇 년 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아이와 둘이서 자주 이 산을 오르내리곤 했었는데, 그때도 마스크를 한 사람보다는 상상 속의 멧돼지가 더 두렵고 무서웠다. 경계심 가득 경직된 나를 보고 아이는 되려 엄마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엄마. 멧돼지 나타나면 우선 눈을 마주치지 말고 움직이지 말아야 해. 커다란 나무둥치 뒤에 숨으면 더 좋고. 우리 우선 가지고 다니자.”


갑갑한 집을 벗어나 산속에서 힐링하고자 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으로 만들어내며 스스로를 옥죄었다. 우리와 같이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을 만나면 되려 반가워 그들 뒤에 바짝 붙어다니기도 하면서...      


산을 오르내리며 걷는 맨발 걷기 운동은 다행히 동행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 산속 어딘가에 사는 멧돼지를 상상할 겨를 없이 우리의 수다는 이어지니 말이다. <월든>을 쓴 소로우는 호숫가에서 홀로 지내며 무섭지 않았을까. 호숫가의 한적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그곳에 어둠이 찾아올 때면 어서 내일의 해가 뜨길 바라진 않았을까. 깜깜한 밤하늘 수놓은 별과 달이 아름답게만 보였을까. 어둠 속에 보이지 않게 살고 있는 그 어떤 것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떠는 소로우. 호숫가나 산이나 자연에서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은 용기를 넘어서는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동물적 감각을 끄집어내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연처럼 살아가는 것이거나. 순간 나와 함께 맨발 걷기를 하는 동네 친구들이 고마워진다. 자연 속에 사는 것은 고사하고 혼자서 산을 오르내리지도 못하겠으니. 내가 맨발로 산을 탈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나무 사이사이로 비쳐오는 봄햇살은 우리의 등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맨발에도 따스한 땅의 기운이 스며 온몸을 나른하게 만든다. 자잘한 자갈들이 발바닥을 꾹꾹 눌러주고, 축축 젖어 있는 낙엽들이 포슬포슬 발바닥을 간질인다. 부드러운 흙길을 걸을 때는 반복 듣기로 각인된 ‘인생의 회전목마’의 왈츠 박자가 생각난다. 쿵짝짝 쿵짝짝. 흙길 위에 왈츠 스텝을 그려본다. 맨발의 댄서가 된 듯, 흙의 부드러움이 발을 더 가볍게 만든다. 쿵짝짝 쿵짝짝.      


멀리 또 다른 맨발 걷기 그룹이 보인다. 동질감이랄까 뭐라고 할까, 괜히 눈인사라도 건네고 싶다. 산에서 만나면 모두가 산친구가 된다고 하던데, 우리는 산에서 만난 맨발 걷기 친구들. 서로 머쓱해하며 지나간다. 모두 같은 마음이겠지. 마음으로 서로의 건강을 기원해 본다. 아침시간 분주하게 아이를 등교시키고 삼삼오오 모여 산을 오른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산을 오르지만 머릿속에는 아이에 대한 생각뿐이다. 아이에 대한,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풀어놓으며. 엄마가 된 이상 엄마로 존재하는 순간은 매 순간 이어지는 걸까. 그러다 정신을 차려 다시 우리 자신의 건강 그리고 우리의 행복에 대한 생각들을 펼쳐 보인다. ‘엄마가 건강해야 한다’라는 진부한 표현은 역시나 또 등장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건강해야 한다’는 말로 살짝 변형된다. 내가 건강해야 너를 건강하게 자라게 할 수 있고, 내가 행복해야 네가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도 덧붙여보면서. 올 한 해 맨발 걷기로 나의 건강과 행복 모두를 차지하는 기쁨을 누려보리라 마음먹으면서.


이전 20화 몸과 삶을 생각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