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2-1일 차
오전은 베르사유 궁전, 오후는 지베르니 마을 방문이 예정되어 있는 프랑스 여행 2일 차 아침이 밝았다. 어제는 하루종일 파리 시내를 돌아다녔다면, 오늘은 파리 외곽으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당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줄 베르사유 궁전과 모네의 집이 있는, 고즈넉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지베르니 마을의 대비가 오늘 하루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감으로 부풀어 이른 아침 버스에 올랐다.
숙소에서 차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도착한 베르사유 궁전. 금장식으로 두른 곳곳을 보니 절로 탄성이 나온다. 런던에서의 첫날, 아이가 버킹엄 궁전 앞 황금천사 브리타니아 여신의 동상을 보고 하던 말을 이곳에서도 되풀이한다.
"엄마, 이거 다 금이야?"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베르사유 중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흐린 날씨가 이곳의 화려함을 잠식시키지 못할 정도로 건물 곳곳이 빛났다. 2시간 정도 궁전 안을 구경하고 나왔더니, 베르사유의 화려함은 얼굴을 잠시 드러낸 해 덕분에 훨씬 빛이 났다. 태양왕이라 자처한 루이 14세가 궁전의 외관보다 더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하고서 이곳 어딘가를 배회한다고 상상해 보니, 잠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전쟁광이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여러 나라와 전쟁을 일삼았던 루이 14세. 아버지였던 루이 13세가 사망하면서 그는 5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고, 귀족들의 권력 다툼에 희생양이 되기도 하며 시련과 고난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더 자신은 태양왕이라 부르며 왕권 강화를 위해 치열했던 게 아닌가 싶다. 루브르궁에서 베르사유로 거처를 옮긴 것도 귀족들을 향락에 빠지도록 해서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자 했다고 들었다.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각각의 방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이곳 모든 방이 화려함의 극치로 도배가 되어 있어 둘러보는 내내 정신이 혼미했다고, 그래서 오디오 설명에 귀를 기울이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루이 14세가 만든 그 자체가 걸작인 궁전을 보러 세계 각지에서 온 인파들 틈새를 뚫고 다니기가 여간 쉽지 않았고.
궁전 안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왕실 예배당의 모습이었다. 그리스 아테네 신전 기둥 같이 생긴 기둥이 줄지어 있었고, 1층에서 2층까지 뚫려있는 천장의 모습도 웅장했다. '예수의 부활'이라는 제목의 천장화도 보인다. 루브르 박물관내 살롱이란 장소에서도 시선을 압도하는 천장화들이 많았는데, 여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때 당시 유럽인들은 벽이란 벽에 거대한 그림들을 전시하고 천장에는 화려한 그림을 그려 넣는 게 당연한 문화였나 싶다. 하지만 빈 여백의 공간을 가만히 두지 않는 걸 보면 뭔가 마음에 결핍이 상당한 듯 보이기도 했다. 허한 마음을 화려한 그림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할까. 욕심 가득한 과시용 장식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 내면 깊은 곳에서는 채워질 수 없는 공허함이 존재했던 건 아닐까.
비너스의 방이라고 기억하는데, 그곳에서 루이 14세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키가 작아 하이힐을 처음 신었던 왕이라고 하더니, 실제를 닮은 동상처럼 보이지만, 아래에 받침대가 있어 키가 높게 보이는 효과를 주고 있다. 뒤쪽으로는 황동 재료를 써서 태양이 루이 14세 뒤에서 비추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오른쪽 손에는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로 패배한 적국의 군사의 등을 누르고 있는 듯하고, 왼손은 투구를 누르고 서 있다. 전쟁에서 막 승리를 거두고서 내가 바로 태양왕이다! 라며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 같다.
천장에는 이곳이 비너스의 방이라고 알려주는 비너스에 대한 천장화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중앙에 가장 큰 그림이 비너스가 우미 세 여신에게 축복받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의 세 여신은 빛, 기쁨, 풍요를 뜻하고, 종종 비너스 곁에서 그녀를 돋보이는 역할을 한다고. 비너스가 입은 파란색 옷감의 색이 가장 눈에 잘 띄었던 것 같다.
머큐리의 방이라고 하는 곳에서 로마 신화에서는 머큐리라고 불리지만 그리스 신화에는 헤르메스로 불리는 전령의 신을 그린 그림들을 보았다. 보통 헤르메스는 날개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고, 샌들을 착용하고 있으며 지팡이를 들고 있다며, 만화책으로 그리스로마 신화를 빠삭하게 알게 된 아이는 이곳 천장화들을 보자마자 신의 이름들을 읊기도 했다.
루이 14세의 통치가 마치 머큐리(헤르메스)의 속성과 비슷하다는 의미로 이 방을 만들었다고 한다. 헤르메스의 특징은 민첩하고 지혜롭기도 하며 사람들을 소통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아이는 말한다. 천장에는 '새벽달과 함께 수레에 오르는 머큐리'라는 제목의 천장화가 그려져 있다.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으나 이곳에서 붉은 천으로 둘러싸여 있는 왕의 침대가 압권인데, 그 또한 화려함의 극치였다.
가장 화려한 방 중 하나로 알려진 아폴론의 방. 자신이 태양왕이라 불리길 원했던 루이 14에게 그리스의 태양과 예술의 신인 아폴론의 상징성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을 것 같다. 이 방은 왕의 공식 왕좌실로 쓰였을 만큼 왕권과 위엄이 잘 드러날 수 있게 가장 화려하고 장엄하게 곳곳을 장식했다.
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압도하는 초상화 하나가 있다. 바로 루이 14세의 초상화.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이 초상화가 걸려 있다. 비너스의 방 루이 14세의 동상에서도 보였듯 그림에서도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들고 있다. 이것 또한 권위를 상징하는 것인지, 풍부한 숱 때문에 무거워 보이는 가발을 쓰고 있고 더 무거워 보이는 이불 같은 망토를 두르고 있다. 그것보다 사실 시선을 끄는 것은 루이 14세의 다리 각선미. 하이힐을 신고 있어서 종아리 근육이 도드라져 보인다. 다리를 드러낸 이유가 뭘까. 마치 토슈즈를 신은 발레 하는 무용수 같아 보이기도 한다. 루이 14세가 어린 시절부터 춤을 잘 췄던 것으로 아는데 아무래도 'Shall we dance?' 라며 춤을 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나의 과대망상일까. (죄송합니다..)
천장화로 역시 아폴론을 그려 넣었다. '4계절의 신과 4마리 말을 끄는 전차를 타고 있는 아폴론'이라는 천장화는 전차를 타고 있는 아폴론 주위에 4명의 신을 그려 넣어 시간의 흐름 또는 계절의 순환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전차를 탄 아폴론이 4계절을 통과하며 끊임없는 시간을 영위하는 것처럼, 루이 14세 또한 자신의 영원한 통치를 이어가고자 하는 바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한다.
드디어 도착했다. 베르사유의 궁전에서 가장 독특하고 가장 화려한 곳, 거울의 방. 화려한 천장화를 압도할 정도로 수많은 거울과 샹들리에에 시선이 간다. 총 17개의 창문과 그 맞은편으로 17개의 거울이 배치되어 있고, 창 밖으로는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져 있다.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거울에 반사되어 이 공간이 훨씬 빛으로 반짝였다. 천장에 거대하게 걸려있는 샹들리에의 많은 양초에도 불이 밝혀져 있어, 마치 이곳 연회장에 우리 모두가 초대된 느낌을 자아내기도 했다.
우리 셋은 거울 앞에 서서 그 안에 비친 우리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너무나 화려한 배경 때문인지 사진 속 우리는 불협화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17세기 프랑스 귀족들의 연회장에 불시착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거울의 방을 지나 여왕의 아파르트망이란 공간에 들어서니 내 마음에 쏙 든 방을 발견했다. 벽지와 침대, 의자까지 하나의 동일한 꽃 패턴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흰 바탕에 금색 테투리 그리고 핑크빛 잔잔한 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아기자기하면서 화려한 이곳이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침실이었다. 한쪽 벽에는 역시나 그녀의 아름다운 초상화가 있었고, 3명의 아이들과 함께 그려져 있어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현지 가이드가 설명하길,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스럽다는 건 거짓 소문일 수도 있다고 했다. 루이 15세가 자신의 애인을 위해 주문했던 목걸이가 완성되기 전에 사망하는 바람에, 결국 사기꾼들에 의해 목걸이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잘못 알려져 그녀는 지금의 사치스러운 이미지로 남은 것이라 한다. 천상계 아름다움과 사치스러운 성향은 그렇게나 잘 어울려 보였던 것일까. 내 눈에는 너무나 아름답기만 한데. 성향 따윈 중요치 않을 정도로.
마지막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자크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 그림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베르사유 궁에서도 나폴레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비드는 또 한 번 똑같은 그림을 요청받았다고. 베르사유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가이드는 우리에게 퀴즈 하나를 냈었다.
“루브르에서 보셨던 ‘나폴레옹 대관식’ 그림과 여기 대관식 그림이 딱 하나 다른 점이 있어요. 한 번 찾아보세요. 정답은 보시고 난 후에 말씀드릴게요, 호호”
틀린 그림 찾기 문제를 푸는 것처럼, 아이와 나는 10분 가까이 이 그림 앞에 서서, 앞서 봤던 루브르의 대관식 그림과 다른 점을 발견하려 애썼다. 눈동자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봐도 난이도 최상의 문제 앞에서 결국 둘 다 포기를 선언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이와 나는 가이드에게 틀린 그림을 찾기 어려웠다고 토로를 했다. 정답을 듣고 아이는 이건 최상 중에 최상 난이도라며 혀를 끌끌 찼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다비드가 짝사랑했던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의 치마 색깔이 다르다는 것이 정답.
여행 Tip
- 아무래도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가는 게 좋겠죠? 베르사유 궁전 9시 오픈
-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요. 베르사유 안내소에서 빌려서 쓰시면 돼요.
- 프랑스식 정원까지 둘러보려면 최소 4~5시간은 걸릴 것 같네요. 하루 일정으로 오셔도 좋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