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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Nov 04. 2024

지베르니, 모네를 생각하다

파리 2-2일 차


지베르니, 모네 생가 입구

오전 일정이었던 베르사유 궁전을 돌아보고 점심 식사 후 우리는 지베르니로 출발했다. 약 1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한 지베르니 마을. 이곳은 파리에서는 차로 1시간 반, 북서쪽으로 74km 떨어진 곳이다.

도심에서 꽤 멀리 벗어난 것 같다는 생각은 런던을 벗어나 '코츠월드' 버포드 마을로 가는 길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건 현대식 건물이건, 도심을 채우고 있는 건물들과 너르고 푸른 들판 그리고 고즈넉이 흘러가는 하얀 구름의 모습은 둘의 차이를 확연하게 했다.


온갖 인공적인 화려함이란 화려함은 베르사유에서 맛봤던 터라 어서 빨리 대자연의 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모네의 연작, <수련>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지베르니 마을의 모네 집이라는 것을 듣고 오랫동안 설레기도 했었다.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라 생각하는 그림들을 그린 모네를 만나고 싶었다.



핑크빛 모네의 집

현재 모네의 생가는 관광객을 위한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4월부터 10월까지만 방문객에게 문이 열려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10월 중순이었고, 정원 주변에는 가을에 피는 꽃들이 한창이었다. 국화를 닮은 다알리아라는 꽃들이 많았고, 수술 부분이 진한 검은색이라 독특했던 아네모네 꽃들도 많았다. 코스모스, 국화, 해바라기 등도 여기저기에서 가을을 알리고 있었다.


정원 사이로 멀리서 모네의 핑크빛 생가가 보였다. 생각보다 집이 꽤 커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방이 많아 대가족을 거느릴 법한 집처럼 보였으니. 역시나 독특한 것은 외벽의 색감과 창문틀의 색이었다. 핑크빛 외벽에 초록색으로 칠해진 창문틀이라니. 집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꽃처럼 느껴졌다. 풀과 나무, 꽃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네의 집이 전혀 이질감이 없이, 정원과 한 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핑크색 외벽을 타고 무성하게 자라있는 붉은 담쟁이 풀도 서로 색감이 조화로워 보였다.



모네 집 실내

실내로 들어서니 곳곳에 모네가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실제 수련 연작인 경우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고, '양산을 쓴 여인'과 '수련 연못'이라는 작품의 경우에는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파리 자유 일정이 있던 날에 우리는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모네 작품들을 보고 왔다. 3일 차 여행 기록에 남길 예정)


하얀 벽 위에 걸어 놓은 모네의 많은 그림들에 시선이 가기도 했지만, 아기자기한 엔틱 가구들에 더 시선이 갔다. 의자와 테이블, 책장과 거울 등 모네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바닥에는 화려한 무늬의 커다란 양탄자가 방마다 깔려 있었고, 꽃무늬 벽지와 꽃무늬 커튼 그리고 침대보까지 깔맞춤 되어 있는 아기자기함은 아늑한 분위기를 더했다.


다이닝룸으로 보이는 곳에는 노란 벽지에 노란색 찬장 그리고 노란색 의자 프레임이 시선을 끌었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사선으로 된 격자무늬가 바닥을 채우고 있었고. 어떻게 보면 유치할 수도 있는 채도가 높은 선명한 색감들이 다이닝룸을 장식하고 있어 의아하기도 했지만, 빛과 색을 중시했던 인상파 화가 모네라면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으로 담지 못했지만 주방의 색감 또한 독특했다. 포르투갈 스타일의 파란색 타일이 주방벽을 이루고 있었고, 푸른색 타일에 대비되어 구리색 청동 냄비들이 타일 위에 일렬로 나열되어 있었다. 노란 다이닝룸은 떠오르는 해를, 푸른 주방은 고요한 바다 혹은 푸른 하늘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모네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곳을 색으로 섬세하게 나누어 놓았던 것 같다. 얼마나 빛과 색을 사랑했으면 주변을 빛과 색으로 살아 숨 쉬게 만들었는지. 그림을 그릴 때만이 아니라 그리지 않을 때도 빛과 색만을 생각했던 것 아닐까.


클로드 모네

가이드는 지베르니에 도착하기 전 모네를 고집불통이라 소개했었다. 그의 사진을 보면 더 동의할 것이라 말하면서. 당시 인상파 화가들의 화풍은 고전적 사실주의와 크게 달랐다고 한다. 자연의 빛과 색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인상주의 스타일을 고집한 모네는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고. 지베르니에 정원을 꾸미고 자신이 고수한 화풍을 실험하면서 지낸 그를 떠올려 보니, 예술가의 고집스러움이 사진에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수련 연작만 250점 가까이 그렸다는 걸 보면 보통 고집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고집불통 모네의 옆을 지킨 그의 뮤즈, 카미유. 그의 그림 모델이기도 했던 카미유를 사랑한 클로드 모네. 모네에게 카미유는 그림의 모델 이상으로 깊은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카미유의 모습을 그린 그림들이 다수가 있는데,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그림들, '양산을 쓴 여인' 그리고 '개양귀비들판'의 여인이 모두 그녀를 그린 것이라 한다. 그림들을 자세히 보면 아들 장의 모습도 그녀와 함께 보인다.


사실 예술가에게 뮤즈의 존재는 절대적일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창조하는 것에 있어 큰 영감을 주는 원천이자 예술가의 감정이나 욕망, 이상 등을 투영할 수 있는 존재가 또 뮤즈이기 때문이다. 모네에게 카미유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예술적 창작의 대상이기도 하고 영감이기도 하며 때로는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하는. 그에게 그런 존재가 안타깝게도 둘째 아들을 낳은 후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과 고통을 예술로써 승화시키기 위해 또 다른 뮤즈가 필요했던 것일까. 알리스라는 두 번째 아내와 이곳 지베르니에서 여생을 보내며 수련이란 작품들을 그려냈다고 한다.


실제 연못, 모네의 수련 연못(오르세 미술관에서 찍음)


여행 Tip:

- 지베르니 모네의 생가에 방문하기 전에 온라인 예매를 하시면 빠르게 입장할 수 있어요.

- 모네의 생가는 4월부터 10월까지 개방하고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관리와 정비 작업을 한다고 하네요.

- 기념품을 살 수 있는 장소가 있는데, 물건들이 품질이 좋았습니다.

쟁반과 코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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