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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절에가다 Nov 05. 2024

다시 루브르, "왜 그림을 봐야 할까요?"

다시 루브르

파리 3-1일 차.


런던 마지막날, 파리로 가는 유로스타를 타기 전 3시간의 자유 일정. 이번 여행에서 남편과 나는 런던에 흠뻑 빠져있었던 터라 주어진 3시간의 자유가 아쉽기만 했었다. 다행히 파리에서는 하루의 자유 일정이 계획되어 있었고,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유로자전거’ 루브르 미술관 투어 덕분에 파리에서의 하루가 훨씬 더 충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13년 전 신혼 시절, 남편과 둘이서 파리 여행을 할 당시 ‘유로 자전거’라는 업체의 투어 프로그램에 하루 온종일 참여했었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침 일찍 집합 장소에서 만나 근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씩 마시며 투어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진한 에스프레소 향과 고풍스러운 프랑스 미술사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은 절묘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그때 이후로 에스프레소는 우리에게 파리를 떠올리게 하는 에펠탑과 같은 것이 되었고, ‘유로 자전거’의 미술관 투어 프로그램 또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처럼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파리 지하철 안

종일권 나비고 지하철 패스를 구매하고 파리 지하철을 탔다. 깔끔쟁이 남편은 예전 기억 때문인지 타기도 전에 아이에게 파리 지하철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심어준다. 냄새가 지독하고 더럽고… 으..

어라, 생각보다 깨끗해져 있는 상태에 가장 놀란 사람은 남편. 두 달 전에 폐막한 24 파리 올림픽 때문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이내 나는 아이에게 선입견을 심어준 남편을 탓했다. 세느강이 구토를 유발할 정도로 더러워 수영 시합을 중단했다는 뉴스를 전하며 끝까지 자신을 항변하는 이 남자!

 

그저께 이미 단체로 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왔지만, 단체 여행의 시간적 제약 때문에 많이 아쉬웠다. 한 시간으로는 다빈치의 ‘모나리자‘만을 보기 위해 달려가는 듯 보였으니. 루브르를 재방문하는 것은 이번 여행의 당연한 의무처럼 여겨졌다. 인상 깊게 남았던 ‘유로 자전거’, 그것의 도슨트 투어와 함께라면 더더욱 루브르를 다시 만나야 했다.


만나기로 한 집합 장소에는 운 좋게도 우리 가족만 있었고, 엉겁결에 개인 투어가 되어버려 훨씬 만족스러웠다는 사실. 루브르 박물관은 오직 프랑스 공인 가이드만이 투어 진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날의 개인 맞춤형 투어 가이드 성함이 ‘정희태’ 씨인데, 다수의 책을 집필하고 설민석 씨 등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분들 프라이빗 투어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가이드는 입장하자마자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왜 그림을 봐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찾아가셨으면 합니다! “


와, 너무 멋진걸! why로 시작하는 질문에 투어 시작 전부터 설렌다. 정답은 없다. 단지 질문만 주어졌다.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가 품게 될 것이다. 어떤 답이라도 상관없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원하는, 내가 바라는 답이 나에게 답일 것이다. 질문이 중요한 시대, 질문을 잘해야 하는 시대, 어떤 질문을 던지며 사는지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는 시대에 나만의 답 찾기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시작되었다.


“그 나라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요! “


질문을 받자마자 답을 말해버리는 아이 때문에 모두 머쓱해지기도 했다. 모든 문제에 해답을 빠르게 내어야 하는 한국식 교육에 아이가 이미 물들어 있는 게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도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아이 방식의 투어의 시작이란 생각에 존중하기로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품고 시작하는 것도, 답을 수정하거나 고수하는 것 모두가 하나의 과정이니까.


개인 맞춤형 투어라는 생각은 가이드의 또 다른 질문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먼저 물어봐줬기 때문이었고, 아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잘 아는 편이라는 대답을 했다. 다행히 박물관의 예술 작품들이 신화에 기반해 많은 상징을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의 눈빛이 더 반짝였다.


함무라비 법전, 돌로 되어 있었네?

루브르는 총 3개의 관으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 관광객들이 ’모나리자‘가 있는 ’드농관‘만 보고 간다고 하면서, 가이드는 가장 한적하고 덜 유명한 곳인 ’리슐리외관‘ 부터 우리를 데려갔다. 리슐리외관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일요일 오전 9시, 함께 줄을 서 있던 많은 관람객들이 다 어디 갔는지 이곳은 정말 조용했다.


중앙에 시커멓게 우뚝 서 있는 기다란 돌이 가장 오래된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이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 법전이라고만 알았지 이게 돌인지는… 윗부분에 두 인물이 보이는데 왼쪽이 함무라비왕이고, 오른쪽 의자에 앉아서 왕보다 더 높아 보이는 인물이 바로 태양신이자 정의의 신인 샤마시라고 했다. 어깨 양쪽에 불꽃이 일고 있고, 왕에게 지팡이를 건네주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이 법전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두 인물 아래로 빽빽하게 조문들이 적혀 있었다. 이 시점에서 가이드는 입꼬리 양쪽을 올리며 또 하나의 질문을 했다.

가장 좋다는 것이 결혼이라면, 더 좋은 건 뭘까요? 부부라면 아실 수도 있는데…”

질문을 듣자마자 이번엔 내가 정답을 빠르게 말해버렸다. “이혼? “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똑같은가 보다. 고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도 결혼보다 이혼이 더 좋다는 걸 보니. 듣고 있던 내 아이는 알아 들었나 몰라?



술과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 프시케를 납치하는 제피로스, 큐피드

조각상이나 그림들을 잘 살펴보면, 곳곳에 그 인물을 뜻하는 상징 혹은 아이콘이라 불리는 것들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한 상징을 잘 읽고 해석하는 것이 작품을 보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아이는 디오니소스 조각상을 보자마자 포도 덩굴, 악기를 손으로 꼽았다. 이 조각상의 표정이 참 압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느낌이 들었다.


서풍의 신이라고 알려져 있는 제피로스가 프시케를 납치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조각상을 설명하면서 가이드는 루브르의 큐레이팅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괜히 이 작품을 창가 쪽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며, 루브르의 큐레이팅 자체도 하나의 작품처럼 여겨진다는 말을 덧붙였다. 제피로스가 휘감은 천 조각이 창문에서 뻗어오는 빛을 받아 훨씬 투명하게 실제처럼 느끼게 했으니. 조각에 투과되어 산란된 빛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에로스로 알려져 있는 ‘큐피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조각상이었는데,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쉿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한 장난기 가득한 아기 큐피드의 모습이 내 시선을 오래 끌었다. 누구누구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 장난 좀 쳐볼까 하는 이맘때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흑백 사진

가이드가 되는 조건에 사진 잘 찍는 것도 포함되는 건 아닌지 궁금했던 순간이 바로 우리 셋 흑백으로 찍힌 이즈음이다. 흑백 배경으로 찍힐 줄이야. 누가 봐도 우린 지금 루브르에 있다는 것을 창밖 피라미드가 보여주고, 우리 키의 몇 배나 높은 천장이 또 이곳의 웅장함을 보여준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하나는 그 둘을 보고 있다. 아이의 표정이 그날의 행복감을 나타내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은 더 행복해진다. 그리고 그 둘의 교감을 바라보는 나는 뭉클하다.



캉탱 메치스, <대금업자와 그의 아내>

남편이 가장 좋아했던 그림, 메치스의 ‘대금업자와 그의 아내.’ 현재 벨기에 북부인 플랑드르라는 지역은 당시 유럽의 경제 중심지로 발전하면서 많은 상인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당시의 경제적 부유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돈을 세고 있는 남편의 표정이나 그걸 바라보고 있는 아내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깨지기 쉬운 크리스털 컵이나 자신의 허영을 비추는 듯한 거울은 모두 물질적인 것의 허망함을 보여주고 있고, 대비적으로 아내가 읽고 있는 성경책은 정신적인 것, 종교의 가치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에서 나는 삶과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동일한 질문처럼 보인다. 물질적인 것을 좇아 살 것인가, 아니면 정신적인 것을 좇아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지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선택하고 판단하게 하니깐. 뭐든 적당히 균형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일 것 같기도 하다.


니콜라 푸생, <아르카디아의 목동들>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그림, 푸생의 ‘아르카디아의

목동들.‘ 아르카디아는 유토피아, 낙원을 뜻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펠로폰네소스 지역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이름만큼 이곳은 풍요롭고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 많은 이들에게 이상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그림 속 빨간 옷을 걸친 목동 하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을 읽을 줄 몰랐던 그는 여신에게 알려달라고 묻고 있는 장면이라고 한다.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라는 문장이었는데, 여기서 ‘나’는 죽음을 뜻한다고. 그러니까 이런 지상 낙원 같은 곳에도 죽음은 늘 존재한다는 뜻이다. 삶과 죽음은 한 몸과 같이 우리 인생에 이어져 있기 때문에.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살아있으니 언젠가 죽게 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현재 살아있으니 최선을 다해 나의 하루를 채워가야 함을 이 그림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루브르 박물관을 나서며, 우리는 왜 그림을 봐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답을 각자 한 가지씩 마음에 품게 되었다. 그들의 과거를 만나는 일이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그들이 남긴 것들과 소통하는 일이 현재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지혜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여행 Tip:

- 루브르 박물관의 ’리슐리외관‘은 한적하기 때문에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답니다.

- 루브르 박물관 건물에 푸드코트가 있어서, 간단한 식사를 하기에 좋습니다.

- 루브르 실내에서 흑백 사진을 찍어 남기는 것도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느낌이 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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