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마지막 날, 이번 여행 마지막 날.
오늘이 오지 않기를 빌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하고 싶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을,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여행의 한가운데에선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것은 여행의 시작과 끝,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을 마냥 영원 속에 묻어 두고 싶은 내 간절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성을 벗겨내 온몸의 감각 세포를 깨워 여행의 시작과 끝 사이, 그 시간을 영원히 멈추어 있게 하고 싶었다. 시간의 흐름을 거역하고 영원한 찰나에 내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지만 시간에 저항하면 할수록 그 시간이란 녀석은 더 빠른 속도로 내 곁에 다가왔다. 보란 듯이, 아주 보란 듯이. 두 눈 부릅뜨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이 지극한 진리를 내 눈앞에 가져다 인지시켰다.
그래, 오늘이 마지막 날이구나.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이 내 눈앞에 와 있구나.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의 해가 밝았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아쉽기만 하다. 오늘 아침도 이곳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커피 한 잔에 빵을 곁들여 먹는다. 마지막이니 오늘 아침은 특별히 에스프레소를 마셔볼까. 잔에 꿀을 넣었나, 에스프레소가 달디달다. 남편도 같은 반응이다. 이 마지막날의 에스프레소 향과 맛을 오랫동안 기억하려 각자의 혀에 각인시킨다. 독특한 향과 맛은 찰나를 기억하게 하는 묘한 마법과 같으니 아주 천천히 음미해 본다. 아이는 옆에서 언제나처럼 식빵 한 조각 위에 잼과 버터를 듬뿍 바른 뒤 입으로 가져간다. 어떤 잼을 먹었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누구나 알 정도로 온 입술에 그리면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는 항상 말한다. "와, 너무 적게 먹었어."
마지막 날 오전 일정으로 샹젤리제 거리를 걷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벨기에 대통령이 파리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어 급하게 샹젤리제 거리를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고 했다. 특히 파리에는 불시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말을 현지 가이드는 전했다. 안전상의 이유로 국빈들의 방문을 미리 공개하지 않아 언제 어떻게 교통이 제한될지 모르지만, 파리 시민들은 모두 이런 불편을 감수하며 산다고 한다.
개선문이라도 슬쩍 보고 가자며 가이드는 우리를 안내했다. 개선문 주위로 장총을 든 파리 경찰들과 경찰차들이 보였다.
높이가 50미터가 되는 이 에투왈 개선문은 원래 나폴레옹이 루브르 박물관 마당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의 크기가 작아 마음에 들지 않아 이것으로 다시 짓게 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 때문인지 나폴레옹은 무조건 가장 큰 것을 좋아했다는 말도 전해져 온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 나폴레옹의 대관식‘도 이 그림을 그린 다비드에게 될 수 있는 한 가장 크고 장대하게 그릴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어찌 됐든 나폴레옹 덕분에 이 에투왈 개선문은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
샹제리에 거리를 걷지 못한 대신 우리가 향한 곳은 ‘트로카데로 광장.‘
오자마자 남편과 나는 이곳이구나!라고 외쳤었다.
13년 전 둘이서 여행했을 당시 이곳에서 우리 둘 점프샷을 남긴 추억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풍경. 흑형들이 관광객 주변을 기웃거리며 미니어처 에펠탑 모형을 팔고 있고, 한국어로 ‘이르케, 그르치, 이르케‘ 라며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지금은 셋이 된 우리는 둘이었던 그때처럼 점프샷 사진을 남기기로 했다. 나랑 아들, 남편과 아들,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셋 찰칵!
너와 나,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데 세월이 참 많이 흘러 있다. 십 년이 훌쩍 지나있고 우리 옆에는 그 해만큼 자라 있는 아이가 있다. 또 십 년이 흐르면 그때도 역시 우리는 한결같고 이 아이는 훌쩍 커있겠지. 지나온 십 년처럼 앞으로의 십 년도 우리 둘 한결 같이 그렇게.
거의 마지막이 될 일정인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향했다. 불어로 몽(mont)은 언덕 또는 산이란 뜻이고, 마르트르(martre)는 순교자라는 뜻이다. 즉 순교자의 언덕이란 뜻의 몽마르트르는 파리 최초의 주교였던 생 드니가 순교한 역사적인 장소라고 한다. 순교자들의 시체를 쌓아 두었던 언덕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종교적인 장소라고 한다.
몽마르트르 언덕 가장 높은 곳에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본 적은 없지만, 대성당은 인도의 타지마할과 비슷한 같은 느낌을 자아냈던 건축물이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비잔틴 양식에 하얀 돔이 인상적이었고, 건물 정면 위쪽 양 끝에는 잔다르크와 루이 9세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마지막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1시간가량 우리는 몽마르트르 곳곳을 거닐었다. 고흐, 피카소 등 19세기 가난한 화가들이 이곳에서 그림 작업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곳곳이 예술의 향으로 가득했다. 무명 화가들이 거리에서 진을 치고 자신의 화풍을 뽐내고 있었다. 연한 물감으로 수책화로 풍경을 그려낸 화가도 있었고, 엽서용 작은 그림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 화가도 있었다. 인물의 특징을 잡아 빠른 속도로 그려낸 캐리커쳐도 있었고, 연필로 흑백의 소묘 그림을 그려내는 작가도 있었다.
정말 파리는 어딜 거나 그림을 눈에 담을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에도, 미술관에도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그림을 접할 수 있다. 그 그림들 속에 파리가 있고 파리지앵이 있으며 파리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어떻게 이곳에서 예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곳에서 예술이 태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예술이 탄생하고 꽃 피울 수 있는 곳,
예술을 사랑하고 품을 수 있는 곳,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Paris!
파리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건 어쩌면 예술을 거부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 동일한 맛과 향을 지향하는 스타벅스 커피는 이 예술적 도시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유니버셜한 익숙함을 느끼고 싶어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갔다. 곧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이 익숙한 맛과 향으로 체감하기 위해서. 그러나 마지막까지 돌아가길 저항하는 내 의식이란!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는, 아니 일상에서 절대 입에 대지 않는 에스프레소를 시켜본다. 오늘 아침 식사로 마신 달디 단 그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은 이미 아니라는 걸 인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