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절에가다 Nov 06. 2024

오르세, 빛과 색의 향연

세느강변 오르세 미술관

파리 3-2일 차.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낸 오전 4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한 시간이 채 안된 것 같았는데, ‘유로 자전거’ 정희태 가이드의 작품 설명에 홀린 듯 오전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낯선 공간 속에서 낯선 시간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나머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영원히 익숙해질 수 없는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생경함 그 자체가 된다. 시간의 틈새까지 채워지는 그 생경함이란! 온몸으로 생경함을 받아내느라 시간의 흐름을 느낄 겨를이 없다. 여행지에서 시계를 보는 것은 그것이야 말로 낯선 일이 된다. 때로는 불친절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고. 낯선 이곳에서 시간이란 것을 인지하고자 한다면 얼마 남지 않은 남은 하루가, 그리고 익숙함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아쉽기만 할 것이다.


무참히 흘러가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움켜잡기 위해서는 인스턴트 한 식사가 필수적이다. 가이드의 추천으로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 내 푸드코트를 이용했다. 각 나라의 시그니처 메뉴들이 즐비했고, 우리는 팟타이와 해산물 볶음밥 그리고 피자를 시켰다. 식사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것을 진동벨로 알려주는 시스템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남편이 시켜온 수제 IPA 맥주 드래프트의 맛은 정말 잊을 수 없었다.


오르세 실내 정면

배를 부르게 했으니 파리에서의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보로 20분이면 도착하는 오르세 미술관.

공원을 지나 세느강 위  Pont Royal 다리를 건너니 오르세 미술관 건물이 보였다. 실내 정면에도 시계가 있었던 것이 기억에 있는데 멀리서 보니 실외에도 시계가 두 개나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원래 기차역으로 쓰여, 이동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이곳저곳 시계를 만들어 놓았던 것 같다.


오르세라는 명칭은 '오르세 거리'에서 왔고, 17세기 파리 상인 시장이었던 샤를 부세 오르세가 그 거리를 자신의 이름을 넣어 정했다고 한다. 기차역으로 사용했던 오르세 역은 점차 시설이 낙후되면서 미술관으로 개장을 했다고 한다.


오르세 미술관도 루브르 박물관처럼 도슨트 투어 신청을 하고 싶었지만, 프로그램이 없어 그럴 수 없었다. 일상으로 돌아가길 고요히 저항하는 엄마와 달리, 아이는 체력인지 정신력인지가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에 도착해서는 "또 그림이야?"라고 하면서 오르세 미술관 0층으로 불리는 곳 어느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어야 했다. 셋이서 함께.

무참히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한 나는 혼자서라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가만히 앉아 이곳에서 여유를 부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오르세를 채우고 있는 작품들, 그리고 그 작품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또 하나의 작품 같아서. 파리에서 미술전공을 하고 있을 것 같은 금발의 여학생이 조각상 하나를 흰 노트에 스케치하고 있는 모습. 중절모와 스카프로 잘 차려입은 노부부가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보고 있는 모습. 남학생 몇 명이 조각상 앞에서 장난스럽게 조각상 포즈를 따라 하고 있는 모습. 지나가다 말고 다시 발길을 돌려 조각상의 어딘가를 세세히 살피는 중년의 남자의 모습도. 이름 모르는 조각과 그림들이 즐비한 이 낯선 공간에 함께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커다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시간이 얼추 흐르고, 오르세에 왔으니 꼭 봐야 할 그림들이 있다며 남편은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곧장 5층으로 향했다.


인상파라고 불리는 화가들의 그림들이 여러 점 있었다. 인상주의(impressionism) 혹은 인상파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색채, 색조, 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는 미술 사조라고 한다.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 눈에 보이는 세계를 기록하려 했다고 한다.(위키백과 참조)


'인상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라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이드는 이 그림을 오르세에서 꼭 보라는 말을 남겼었다. 당시 미술계의 반항아를 자처한 마네가 당시 부르주아들의 생활을 풍자하며 그림으로 남긴 작품이라 들었다. 이 그림이 살롱전에서 낙선한 뒤 낙선전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작품이라고 한다. 남녀가 풀밭 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난처하게 만든다. 심지어 중앙에 자리한 벌거벗은 여인은 관람객을 또렷하게 응시하고 있고, 그 주변 과일과 음식들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으니. 이처럼 당시 부유한 사람들을 그림으로 풍자하고 비난할 수 있었던 마네의 용기는 어쩌면 그가 부르주아 출신 금수저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내 나름의 요상한 결론을 내려보기도 했다.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피아노 치는 소녀들>

인상파 화가 중에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 르누아르의 부드러운 선과 색,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의 마음을 훔친 것 같다. 특히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 그림이 가장 좋다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예전 우리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대부분의 피아노 학원에서 봤던 것 같은 '피아노 치는 소녀들.' 익숙한 그림체라서 그런가 르누아르의 그림들은 우리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실제로 르누아르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에게 그림은 항상 행복하고 즐거워야 한다. 인생에는 이미 괴로운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라고. 행복 예찬론자 같이 느껴지는 화가, 르누아르. 그의 그림들 속 주인공들은 정말 대부분 행복해 보인다.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도 그렇고, 무도회에서 춤을 추거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 보인다. 그가 다루는 따스한 색감과 붓터치의 부드러운 질감 또한 그림을 포근하게 만드는 것 같다.



모네, 수련 시리즈

지베르니 마을에서 클로드 모네를 만나고 왔었다. 모네의 핑크빛 생가와 그 주변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 정원까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모네는 남은 일생동안 수련 연작만 250점을 그렸다고 한다. 모네는 순간순간 변화하는 빛을 표현하기 위해 동일한 장소에서 연작을 그렸다. 수련이 그랬고, 또 잘 알려진 루앙 대성당도. 그에게 어쩌면 빛은 죽어 있는 사물을 시시각각 다르게 살아있게 만드는 어떤 미지의 힘처럼 생각되지 않았을까. 빛에 따라 내 앞에 고정되어 있는 그 어떤 것이 다르게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더 빛을 추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흐, <오베르 교회> <초상화>

드디어 고흐를 만났다. 고흐 작품 중 내가 좋아하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와 ‘아몬드 꽃’은 보지 못했다. 분명 어디 있을 것 같았는데, 혹시 11월 예술의 전당에서 있을 고흐전에 그림들이 가 있는 건 아닌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사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유료로 고흐전이 전시되고 있기도 했지만) 다행히 고흐의 초상화는 볼 수 있었다.


역시나 고흐의 그림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특히 고흐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이 초상화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마치 고흐와 대화를 나누는 듯 보였다. 고통 속에서 말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 그의 속마음을 들어보고자 애쓰는 듯. 안타깝게도 그 친구는 꽉 깨문 입술 사이로 피를 흘리고 있고, 대화는커녕 불만 가득한 혹은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본다. 이 친구를 돕고자 한 내 손길조차 거부하는 듯이.

그림 주변에 있는 조명 때문에 그림 전체가 노르스름한 민트색으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배경과 인물 모두 노랗게 이글이글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고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회오리처럼 강렬한 붓질이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느끼게 한다. 이런 강렬한 붓질을 하려면 손이 아니라 팔, 팔이 아니라 몸, 몸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바쳐야 할 것만 같다. 그의 그림들에는 이러한 뜨거움이 가득하다.


그 열정을 시대가 알아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통 속에 귀를 자르고,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생을 마감한 고흐. 안타까운 그의 인생이 그림에 더해져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한다. 그의 마지막 초상화 앞에서 손 내밀어 그를 구하고자 하는 많은 우리를 고흐는 과연 어떻게 바라볼까.



여행 Tip:

- 오르세 미술관에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죠? 작품을 알고 보면 훨씬 다가오는 게 많을 것 같네요.

- 여유롭게 하루를 이곳에서 보내도 좋을 것 같습니다. 2층, 5층에는 멋진 식당도 있더라고요. 그림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요.

- 오르세 미술관 바로 옆 건물이 레지옹 도뇌르 박물관이 있답니다. 무료이니 오르세 방문 이후 한번 들려봐도 좋을 것 같네요.

이전 10화 다시 루브르, "왜 그림을 봐야 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