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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osun Jan 13. 2021

“부캐”가 되는 여행, 커뮤니티 호텔

커뮤니티호텔 ver. 2020


강물의 흐름은 강물 안에서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고 책을 읽고 영화, TV를 보는 것도 일상이라는 강물에서 멀찍이 벗어나 당연했던 일상을 다채롭게 보기 위함일 것이다. 창의성이 중요한 요즘은 일상이 응고되기 전 일상을 신선하게 유지해 줄 매력 있는 경험의 가치가 높아졌다. 그만큼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많아졌다. 

2019년 모노클 컨퍼런스에서는 여행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앞으로의 여행은 매주말마다 동네 숙소에서 묵으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비일상을 통해 일상의 창의력을 재충전하는 일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육체노동과 반복작업 위주였던 근대시기 집과 마을의 역할이 육체의 재충전이었다면, 창의력과 다양성이 중시되는 현시대 집과 마을의 역할은 창의력의 재충전이다. 

비일상에 더욱 깊이 몰입했다 나올수록 일상을 새로이 대하는 창의력은 다양해진다. 

여행을 통해 나를 비일상의 호수에 발목까지 담글지 정수리까지 담글지가 같은 기간 여행을 떠나도 얻게 되는 인사이트의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보다 깊은 마을탐험을 위해 여행의 흐름이 유적지 관광에서 현지인의 집에 ‘살아보는’ airbnb로 옮겨 가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보다 한 발 나아가 현지인이 ‘되어보는’ 여행거점인 커뮤니티 호텔이 부각되고 있다. 

매력있는 건물에서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찍고 오래된 노포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 창의력을 충전할 수 있을까? 여행의 본질은 “사람은 환경을 만들고 환경은 사람을 만든다 (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라는 처칠의 말처럼, 건물과 음식 같은 환경보다 그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란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지 않을까? 

커뮤니티호텔은 환경이 아닌 지역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주고 그들과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주는 여행거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티호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커뮤니티호텔의 운영자이다. 하드웨어인 건물이나 소프트웨어인 콘텐츠보다 건물과 콘텐츠를 여행자의 취향에 맞춰 선별하고 여행자와  연결해주는 운영자의 역량이 커뮤니티호텔의 성패를 좌우한다. 커뮤니티호텔 운영자는 대상마을의 역사, 음식, 건물, 자연 그리고 무엇보다 마을 내의 매력적인 사람들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 

마을 오지라퍼가 되어 마을여행을 온 여행자가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면 좋을지 고민하여 마을의 자원을 큐레이션하고 여행자와 지역 크리에이터 간의 엮임을 자연스레 유도해준다. 그 과정을 통해 여행객의 일상과 지역 크리에이터의 일상이 충돌하며 서로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고 새로운 시각을 틔워준다. 

여행자와 동네창작자가 한 팀이 되어 놀이처럼 마을 공공공간을 만드는 'DIT페스타'를 개최한 커뮤니티호텔 후즈넥스트

커뮤니티호텔 운영자의 역할은 단순히 맛집을 소개해주고 숨은 장소를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방도시와 골목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성이다.

 다양성을 만들어 가는 것은 지역 내 자기다움을 발하는 매력 있는 사람들이다. 매력 있는 사람들은 다른 매력인을 끌어당기고 이들이 모이면 그 그룹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지방도시에는 대도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바이브를 내는 그룹들이 존재한다. 커뮤니티 호텔 여행자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독특한 세계관의 그룹들과 평소의 본인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삶을 잠시나마 겪어보는 것이다. 

소위 요즘 유행하는 부캐가 되어보는 것이다. 평소라면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커뮤니티호텔 운영자의 소개로 여행자들은 여행기간 동안 마음의 벽을 내려놓고 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힙스터 부캐가 되어보기도 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예술가 부캐가, 어떤 지역에서는 내면으로 파고드는 문학인 부캐가 되어볼 수 도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시간이 3배로 느리게 흐르는 유유자적 삶 속에 동화되기도 한다. 

공주 커뮤니티 호텔 ‘봉황재’의 공주 원탑 오지라퍼,  권오상 대표와 떠나는 마을탐험 (출처: 봉황재)

지역을 속속들이 알면서 사람을 이어주는 접객력까지 갖춘 운영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반대로 말하면 가장 자본으로 베끼기 어려운 지역기반 스타트업 모델이 될 수 있다. 많은 지역기반 스타트업들이 훌륭한 아이디어와 실행력으로 초기성장을 이루지만 대형 자본의 카피로 인해 쇠락해 왔다. 

하지만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라는 말처럼 커뮤니티 호텔 개념은 베끼기는 쉽지만, 네트워크와 커뮤니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에 지역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 운영자만이 가능한 모델이다. 

사업적 측면에서 사회적 자본을 경제적 자본으로 치환하는 고난이도의 지역창업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투어리피케이션’이란 용어가 나올 만큼 인스타형 관광지 주민은 일상이 헤집어지며 피해를 호소하기도 한다. 커뮤니티호텔은 이 지점에서도 차이를 둔다. 일반적인 게스트하우스가 게스트파티를 통해 여행자와 여행자를 이어준다면, 커뮤니티호텔은 여행자와 지역민, 지역 크리에이터를 연결해준다. 

일반적인 관광이 지역의 맛집과 관광명소를 소개한다면, 커뮤니티 호텔은 마을의 일상적인 생활공간과 식당, 점포를 소개하면서 관광의 효과가 지역 내로 퍼지도록 도와준다. 

교토대학교의 케이타 연구원은 2019년 연구를 통해 커뮤니티호텔은 일반 프랜차이즈 호텔에 비해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가 5배 이상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처럼 커뮤니티호텔은 관광객과 지역 주민이 한 공간에 있지만 다른 차원에서 활동했던 기존 관광과 달리 여행객과 지역주민 간의 사회적, 경제적 관계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군산 커뮤니티호텔 후즈넥스트의 마을지도 (디자인: 로컬프렌들리 손지수)

커뮤니티호텔은 크게 분산형 커뮤니티호텔과 결집형 커뮤니티호텔로 구분할 수 있다. 

분산형 커뮤니티호텔의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의 하나레를 들 수 있다. 분산형 커뮤니티호텔의 개념은 1980년대 초 이탈리아의 분산형 호텔인 알베르고 디푸소(Albergo Diffuso)에서 시작됐다. 

호텔의 기능을 단일 건물이 아닌 마을 내의 점포들과의 연결로 분산시킨 모형이다. 알베르고 디푸소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가 미야자키 미츠요시는 이를 마치야도(まちやど: 마을숙소)라는 개념으로 풀어 2015년 ‘하나레’를 오픈했다. 하나레는 숙박 이외의 기능을 마을의 기존 식당, 목욕탕, 술집, 자전거 대여점, 기념품 가게 등과의 연결을 통해 해결해 마을의 일상 속으로 여행객을 끌어오는 분산형 커뮤니티호텔이다.

 미야자키 대표는 마치야도협회를 결성해 23개의 분산형 커뮤니티호텔을 멤버로 두고 정기적인 연구회를 개최하는 등 전국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5년 서교둉 로컬스티치를 시작으로 분산형 커뮤니티호텔 모델이 시도되고 있다. 공주의 봉황재, 정선의 마을호텔18번가, 서촌의 서촌유희, 서천의 커뮤니티호텔H, 군산의 후즈넥스트 등이 분산형 커뮤니티호텔을 시도하거나 준비 중이다.     

결집형 커뮤니티호텔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에이스호텔을 들 수 있다. 에이스호텔은 분산형 커뮤니티호텔과 달리 지역 내의 창의적인 사람들을 호텔 로비 등의 공용부에 몰려들게 하고, 이 곳에서 여행자와 지역 크리에이티브 계층간의 연계를 유도한다. 일본의 노이, 시탄 게스트하우스도 유사한 사례라 할 수 있고, 제주도의 플레이스 캠프, 비젠빌리지도 결집형 커뮤니티 호텔이라 볼 수 있다.

서촌의 커뮤니티 호텔 ‘서촌유희’는  서촌에 있는 ‘한권의서점’에서 체크인을 진행한다.  (출처: 스테이폴리오, 사진: 박기훈)

공공 입장에서 보면 지방소멸 시대에 커뮤니티 호텔은 인구감소에 대한 대안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인구감소가 확실시 되는 가운데 모든 도시가 인구증가를 목표로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 지역의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다른 지역의 인구를 뺏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도시 인구감소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 내 고령자만이 남게 되는 다양성 저감과 구매력 하락이다. 

커뮤니티 호텔은 주민등록 인구의 증가가 아닌 지역여행객의 증가를 통해 지방도시에 새로운 여행객을 유입시키며 다양성을 높이고 이들의 구매력을 통해 지방도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능을 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흐름을 “관계인구”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관계인구 증가를 통한 지역재생은 공공성과 사업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삼시세끼, 런닝맨, 1박2일, 무한도전을 보며 나도 저들 사이에 껴서 같이 놀아보고 싶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을여행에서도 재미있는 지역사람들을 보면 저들과 한 무리가 되어 같이 식사하고 그들의 일상 속 일부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커뮤니티호텔은 여행자를 마을을 관찰하는 시청자, 관객에서 무대 위의 배우로 올려준다. 보러 가는 여행에서 만나러 가는 여행으로 여행의 목적을 바꿔준다. 관찰자가 아닌 배우가 되어보는 여행을 통해 일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힘이 진해진다. 이번 여름, 다채로운 지방도시 세계관 속에서 서로 다른 부캐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이들 사이에 껴서 놀아보고 싶은 분들은 커뮤니티호텔 후즈넥스트로

이 글은 2020.07.30 네이버 더가게에 실은 글(https://www.thegage.co.kr/story/91)을 수정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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