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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Dec 01. 2023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법하신 사르나트 녹야원

불교성지

불교의 4대 성지로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현재 네팔), 깨달음을 얻으신 부다가야, 최초로 설법하신 녹야원 그리고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라를 든다. 바라나시에서 북동쪽으로 6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사슴동산이라고도 하는 녹야원이 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다섯 명의 제자에게 처음으로 법을 전하신 초전법륜지다.

가운데에는 우물도 있고 빙 둘러 스님들이 기거하던 방이 있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축제로 복잡했던 갠지스 강가와 달리 녹야원은 조용하고 넓고 푸르렀다. 온통 힌두교도뿐인 인도에서 찾은 불교 유적지에는 미얀마나 스리랑카에서 온 스님이나 우리와 같은 관광객뿐이다.

아소카 왕이 창건하고 후대에 증축해서 지름이 33 미터나 달했다는 다르마라지크 스투파는 그 형상이 사라지고 기반만 남아 있다


다르마라지크 스투파 상부에 있던 구조물


불교 성지라고 해도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법당이나 기숙사로 추측되는 터와 탑 그리고 오래된 보리수나무와 말고사 나무가 서있을 뿐이다. 부처님께서 처음 설법하셨다는 다르마라지크 스투파 주변에는 외국에서 찾아온 스님과 불교신자들이 열심히 기도 중인데 부처님의 자리에는 개가 무법자처럼 앉아 있다.


바라나시는 당시 인도 최대의 상업문화 도시였으며 다양한 유파와 다양한 사상을 가지고 매진하는 수행자들이 많았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득도하신 부처님도 당시 종교의 중심지인 녹야원에 오셨다.   

녹야원은 사슴이 많아 사슴동산으로도 불렀으나 현재는 기숙사 뒤쪽의 우리에 몇 마리 있을 뿐이다.


부처님은 다르마라지크 수투파 자리에서 처음으로 5명의 옛 동료에게 "베다교의 불평등과 카스트의 굴레에서 희생하는 민중의 현실을 타파하려면 현세의 카스트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으면 끝없는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자신의 법륜을 전하셨다.

다섯 제자가 앉아 있던 자리


녹야원은 기원전 3세기부터 시작해 7세기에 걸쳐 완성되었다. 한때는 1,500여 명의 승려들이 거주하며 수행했으나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파괴되고 묻혀 버렸다. 1876년 어떤 사람이 집을 짓다가 특이한 벽돌을 발견하고, 행장스님의 경전에 있는 내용과 결부시키다 보니 불교 성지임을 추측하게 되고  영국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굴이 이뤄졌다. 특히 아쇼카 왕이 세운 석주를 발견함으로써 이곳이 불교성지였음이 확실해졌다. 


물칸다 쿠티(여래향 실)와 스님들이 수행하며 머물던 기숙사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200년이 지났을 무렵, 찬드라 굽타의 손자인 아소카 왕은 마우리아 왕조에게 강력하게 저항하던 칼링가 왕국을 무자비하게 정복함으로써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자신이 무력에 의해 지배해 온 것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을 느끼며 타 종교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소카 왕은 부처님의 흔적이 있는 곳마다 석주를 세웠다.  원래 아소카 석주도 15 미터에 달했다지만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파괴되고 현재 2 미터 정도만 남아 있다. 석주는 녹야원의 유리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아소카 왕이 죽자 마우리아 왕조는 분열과 쇠퇴의 길을 걷다가 불교는 차차 인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아소카 석주와 비문


석주 상부의 네 마리 사자 석상과 5세기 굽타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부처님의 결가부좌상은  사르나트 박물관에 있다.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으나 오랜 세월 땅 속에 묻혀 있었다는 네 마리 사자 석상과 눈을 아래로 뜬 소년처럼 앳된 모습의 결가부좌상은 걸작 중에 걸작이다.


오른쪽으로 사라나트의 상징인 다메크 탑이 있다. '진리를 보는 탑'이라는 뜻으로 상층부가 허물어졌지만 직경이 28 미터 높이가 약 42 미터나 된다.  탑 외벽에는 부드럽게 말아 올린 연꽃 문양의 조각과 기하학적인 무늬가 탑 전체를 감싸듯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외국에서 온 신도들이 붙인 것 같은 금박도 눈에 띈다.




녹야원을 나와 근처에 있는 불교 사원으로 향했다. 이 사원 앞에는 독특하게 부처님이 아닌 스님 동상이 있다. 바로 '아나기카 다르마팔라'다. 그는 스리랑카의 독립운동가이며 최초의 불교 선교사다. 그는 사실상 인도에서 불교가 소멸된 후 인도 불교 부흥에 앞장섰고, 무슬림 통치가 인도 불교 붕괴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생 여행과 강연을 하며 전 세계에 비아라를 설립했는데 그가 지은 사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님이 처음 가르쳤던 사라나트의 바로 이 사원이다.  그 또한 말년에는 승려가 되었다. 

다르마 팔라는 법의 수호자라는 뜻이다.


사원 안에는 불상과 함께 부처님의 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생애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부처님의 생애를 그린 벽화가 법당 안에 있다.


초전법륜경은 불교의 핵심사상이라고 볼 수 있는 중도(즐거움이나 고통의 극단을 피하라)와 팔정도(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 그리고 사성제를 담고 있다. 'Dhamma'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쓰는데 변화하는 일체 법을 뜻할 때는 소문자를 써서 dhamma라 하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붓다의 진실한 가르침을 언급할 때는 대문자를 써서 Dhamma라고 한다. Chakka는 빠알리어로 우리말의 바퀴(법륜)로 번역된다. Pavattana는 영어로 rolling이라는 뜻으로 한자어로 초전을 의미한다. 


초전법륜경의 빠알리어 명칭이 '담마짝깝왓따나숫따'로 부처님께서 5제자에게 법을 설하고 계신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부처님이 태어나 법을 전하셨다는 인도에 불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타 종교를 배척하기 위해 성지를 훼손한 이슬람교도들 때문이다. 인도에는 불교뿐만 아니라 인도의 대부분 사람들이 믿고 있는 힌두교 유적지도 성한 곳이 별로 없다. 그나마 이 정도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세계의 불자들이 부처님의 행적을 따라 성지순례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아쇼카 왕이나 아나기카 다르마팔라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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