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스승의 날이면 으레 따라 부르던 노래다. 그렇게 진심으로 나를 아끼며 조언을 해주던 스승님이 내게도 계셨나? 퍼뜩 떠오르는 분이 없다.
지인 중 ‘선생’이라는 호칭 대신에 ‘스승’이라는 호칭을 쓰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그분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스승님’이라 할 것이다. 사실 스승이란 단어는 내게는 너무 생소하고 부르기도 쑥스럽거니와 그토록 존경심이 우러나왔던 분도 없었고, ‘스승님’보다는 ‘선생님’이나 ‘은사님’이란 단어가 더 친근감이 든다.
그동안 만났던 선생님 중 기억나는 분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촌지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조회 시간마다 괴롭히던 함 xx 선생(오죽하면 우리는 그를 ‘돈 xx’라 불렀다). 대문짝만 한 딱딱한 출석부로 여학생들을 무지막지하게 때리던 과학 선생, 멋진 허스키의 목소리를 가진 음악 선생님은 오페라 아리아 하나쯤은 알아야 한다고 한 학기 내내 아리아만 가르쳐 주셨고, 늘 빛나는 하얀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장을 주름잡으며 사춘기 소녀들의 마음을 어지간히 흔들어 대던 체육 선생님도 있었다.
일선에서 물러난 요즘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사진과 글쓰기다. 사진은 이것저것 듣던 문화센터 과목 중 하나였다. 요리, 어학, 춤, 공예 과목은 길어야 6개월 정도 나의 관심을 끌다가 끝났지만, 사진은 무려 10 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사진에 취미를 갖게 된 것은 문화센터 강사였던 문 선생님 덕분이다.
그렇다고 그분이 개인적으로 내게 관심을 쏟으며 특별히 봐주신 것은 없다. 그분의 장점이라면 출사 후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에 대해 늘 아낌없는 칭찬을 해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에 희한하게 사진을 찍어 와도 면박이 아닌 격려의 글을 써주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그분의 칭찬을 듣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곳에 달려가 사진을 찍어오다 보니 그만 사진에 푹 빠져버리게 되었다. 요즘은 사진을 찍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조차 여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서 간다.
여행을 다녀오면 같이 간 일행들에게 늘 사진첩을 만들어 주고 있다. 커플 사진집을 만들어 주면 다들 어찌나 좋아하는지 여행만 다녀오면 만사 제쳐놓고 커플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진첩을 만드느라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다.
물론 우리 것도 만드는데 도대체 내가 찍힌 사진이 없다. 사진 찍는 것은 좋아하지만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남편은 홀아비도 아닌데 늘 홀로 외롭게 찍혀 있는가 하면 어떤 포인트의 사진은 없기도 하다. 정말 다음 여행부터는 나도 좀 멋지게 포즈를 잡고 남편과 인증 숏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즐겁게 소일하고 있는 일 중 또 다른 하나는 글쓰기다. 학교 다닐 때 누구보다 글쓰기를 싫어했는데 이 나이에 글을 쓰며 행복해하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여행 작가 협회’ 회원들과 팸투어에 참가하고 나면 후기를 SNS에 올려야 한다. 사진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기사 몇 줄 쓰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2,3 년 동안 꾸준히 여행 후기를 쓰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이 붙어 SNS에 다른 종류의 글도 한두 편 올리고 있다. 내 글이 훌륭하지는 않지만 솔직하게 세상사를 늘어놓다 보니 어떤 이는 좋다고 하트도 올려주고 또 어떤 여행기는 다음 메인 화면에 올라가 조회 수가 엄청 오르기도 한다. 그 즐거움에 나는 또 어디를 다녀올까? 어떤 글을 쓸까? 하며 고민을 한다.
한동안 글쓰기 수업을 듣기 위해 이곳저곳 다닌 적이 있었다. 그중 전성기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선생님은 그 수업이 끝난 뒤에도 5 년이 넘도록 한 달에 한 번 만나 우리의 글을 봐주신다. 고맙기 짝이 없다. 덕분에 글도 많이 늘었지만 무엇보다 글 쓰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분 또한 보잘것없는 내 글에 늘 칭찬을 해주신다. 덕분에 난 오늘도 글을 쓰고 있다.
뛰어난 사람 뒤에 훌륭한 스승이 있다고 한다. 비록 뛰어나지는 못해도 이만큼이라도 글을 쓰게 만들어 주신 것은 모두 그 은사님 덕분이다. 은사님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