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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Mar 23. 2020

화재에 무너진 아파트.. 왜였을까?

<<그 사건 뒤에 무엇이 있나-22>>


1993년 1월 7일 자정을 조금 넘긴, 모두가 잠든 시각,,

청주시의 한 아파트 1층에서 의문의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로, 지하와 1층은 상가고 2층부터 아파트인 탓에  

한밤중 1층의 연기는 신속히 발견되지 못했다.


새벽 1시 13분, 119 신고가 접수된다.


신고받은 지 3분 만인 새벽 1시 16분, 소방대원 19명이 현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시뻘건 화염이 보일 정도는 아니어서 다소 안도했지만, 의외로 진화는 쉽지 않았다.


발화점은 지하였고 아래에서부터 상가의 물건을 태워가며 불길은 연기를 격렬하게 내뿜고 있었다.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상황은 심각했던 것이다.


새벽 1시 25분, 소방대원 23명이 추가 출동했고 청주시 모든 소방대원에게 비상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아파트 주민들은 당황한 채, 일부는 서둘러 밖으로 탈출하고 일부는 집안에서 두려워하고 일부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공포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소방대원들과 주민들이 생사를 오가는 사투를 벌이고 있던 새벽 2시 10분,,,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장면이 벌어진다.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 현장 (MBC뉴스 화면)


4층 아파트 건물이 그대로 폭삭 주저앉은 것이다.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마치 목조 건물처럼

바닥으로 부서지고 넘어졌다.


한겨울 짙은 어둠 속에서 불길과 연기에 휩싸인 건물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충격적 장면을 목격한 이들은 다들 얼어붙고 말았다.  


주민 28명 사망, 48명 부상, 2백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대참사,


청주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는 이전에 경험 못한 비극적이고, 무엇보다 ‘불길한’ 예감이 들게 하는 참사였다.


화재에 건물이 모두 타버리는 일은 있어도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현상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 필요했다.


말하자면, 이 사고는 어디까지나 하찮은 부주의로 인해 발생했으며 그러니까 앞으로는 안전한 관리가 가능하며, 재발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믿음’과 ‘안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경찰이 이 지옥을 설명하기 위해 주목한 건, 상가에서 사용한 LP 가스통이었다.


지하에서 누전으로 시작된 불이 LP 가스통 수십 개의 호스를 태워 가스가 누출됐고 연쇄 폭발이 일어났으며 그 충격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폭발음 같은 걸 들었다는 일부 주민들의 진술이 더해졌다.  


아 그랬구나,  제대로 관리가 안된 LP 가스통이 문제였구나라고 사람들이 끄덕일 즈음,

뜻밖의 강력한 반발이 가스안전공사로부터 제기된다.

 

가스안전공사는 가스가 폭발하면 주변 건물의 유리창이 파손될 정도로 파장이 넓게 퍼지는데 현장 주변 상가 주택 등에는 전혀 피해가 없었고, 열기로 인해 호스가 녹아내리면 가스 누출은 멈춘다고 주장했다.


그러고 보니 결정적으로 현장의 LP 가스통에서는 폭발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미궁 아닌 미궁이었다.


1981년 준공돼 불과 12년밖에 안된 건물이 도대체 왜 무너졌다는 말인가.


'멀쩡한' 건물이 화재 중에 무너졌다면 가스 폭발 같은 강력한 힘이 작용한 게 당연하다는 이 논리적 사고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음이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서서히 드러난다.


12년밖에 안된 건물은 결코 '멀쩡하지 않았던 것'이다.


건축주가 다른 건설회사 명의를 빌려와 하청업체들에게 날림 공사를 시켰고 감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수많은 설계변경이 이뤄졌고 부실한 자재를 쓰고 공법을 어긴 사실도 속속 밝혀졌다.


사고 현장 모습 (MBC뉴스 화면)


그런데도,  

극도의 부실시공 탓에 무너질 건물이 무너졌다는 직시가 아니라,

화재 때문이다, LP 가스 폭발 때문이다 등등의

부연 설명이 계속 동원된 건, 우리 사회의 부실한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부실시공이란 엄청난 실체를 '날 것' 그대로 이 사회에 내던지는 건 감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은 부실시공 책임자인 건축주뿐 아니라 상가 번영회장과 심지어 상가 경비원까지 기소했다. 화재가 붕괴의 한 원인이니까 경비원한테도 방화 관리를 제대로 못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 엄청난 참사 책임에 상가 경비원이라니...

당연하게도 번영회장과 경비원은 항소심을 통해 무죄로 풀려난다.  


1998년 대법원은 이 사고를 이렇게 정의했다.


“,,, 화재가 주위로 확산되면서 애초부터 부실하게 시공되어 화재에 대한 안전성을 전혀 갖추지 못한 위 건물의 내부 구조물들이 연쇄적으로 붕괴되는 바람에 발생하였다..”


화재가 원인이 아니라 화재에도 버티지 못할 정도의 말도 안 되는 건물을 지은 게 이 참사의 원인이라는 말이다.


우암 상가아파트 자리에는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졌다. 다시는 이런 부실이 있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평화 상가아파트란 이름으로 2년 뒤 새로 탄생했다.


그러나 안전의 상징으로서 평화 상가아파트가 준공된 1995년 6월에,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고 말았다.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이 우연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암 상가아파트는 준공 12년 만에  그나마 화재라는 핑곗거리라도 있었지만

삼풍백화점은 준공 6년 만이었고 화재 따위도 없었다.


우암 상가아파트의 경고를 애써 완화해 받아들인 우리 사회는  

최악의 비현실적인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를 통해,

부실시공이란 괴물과 더 이상 피할 곳 없는 절망적인 대면을 하고 말았다.


우암에서 삼풍까지 그 2년을 돌아보면  

압축성장의 최대 그늘, 부실시공의 참혹한 대가를 치르는 터널이었다.


우리는 지금 그 터널을 벗어나 있을까,

사고공화국이란 오명을 기억하는 대한민국은 어쩌면 영원히 그 터널을 통과 중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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