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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Nov 19. 2021

자신의 집 앞에서 살해된 순교자의 외침

<<그 사건 뒤에 무엇이 있나? -26>>

1994년 2월 18일 밤.      


57 아버지는 아들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서울 노원구의 자택으로 돌아왔다.  안에서 즐거운 대화가 내내 이어졌고, 아파트 상가에서 아들은 어머니에게  샀다.      


이들의 집은 아파트 2층이다.  아들은 주차하고 갈 테니 아버지 먼저 내리시라 했고, 아버지는 아내에게 전할 빵을 들고 혼자서 아파트 건물로 들어갔다.      


아들이 주차하고 차를 잠시 살펴본  아파트로 향하는 순간, 2 복도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뛰어 올라갔을  이게 무슨 일인가.. 아버지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누군가 아버지를 공격하고 이미 달아난 다음. 아버지는 칼에 찔렸다는 마지막 말을 신음처럼 토해냈다.     


아들은 급히 아버지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아버지는 이내 숨지고 만다. 행복한 하루가 끔찍한 고통으로 순식간에 뒤바뀐 순간이었다.      


목격자가 있을 수 있는 아파트 복도에서 더구나 바로 피해자의 집 앞에서, 주변 사람이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한 잔인하고 충격적인 범행이었다.      


목숨을 빼앗긴 사람은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 당시 이단 문제의 최고 권위자이자 사이비 교단과 맞서 싸워온 맹렬한 활동가, 57살 탁명환 소장이었다.      


2019년 고 탁명환 소장 25주기 추모예식


확실히 금품을 노린 범행은 아니었고, 탁명환 소장의 그간 활동에 비춰볼 때, 탁 소장의 비판을 받은 누군가 혹은 어느 집단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범행은 잔혹하고 과감했지만 사후 처리는 의외로 허술했다.  범행에 사용한 쇠파이프와 이를 감쌌던 달력 종이를 범인은 현장에 버리고 달아난 것이다.      


달력에 적힌 메모 등을 단서로 경찰은 서울 D교회 숙소에서 지내고 있는 26   씨를 유력 용의자로 체포한다.  D교회   목사의 운전기사이자 특전사 출신인  씨는 경찰에서 순순히 자신의 범행임을 자백했다.

탁명환 소장의 동선을 미리 파악해 아파트 주변에 숨어있다가 복도에서 뒤따라가 쇠파이프로 뒷머리를 가격하고 등산용 칼로 목을 찌른 뒤 달아났으며, 쇠파이프는 현장에 칼은 안양천에 버렸다고...     


 씨는 탁명환 소장이 D교회와  목사를 이단으로 비판했기 때문에 앙심을 품고 살해했다고 범행 이유를 밝혔다.      


그가 범인임은 명백했지만, 과연 한 광신도의 단독 범행인가 아니면 목사나 교회 관계자의 지시를 받은 조직적 범행인가,,, 핵심은 그것이었다.      


당시 D교회 박 목사는 교단으로부터도 성경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규정된 상태였다.  탁 소장 역시 D교회와 박 목사를 이단으로 비판했고 따라서 경찰과 검찰은 박 목사와 D교회가 임 씨의 범행을 사주했을 것이라 당연히 의심했다. 그러나 이 의심은 심증의 단계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물증으로서 연결 고리를 찾아내지 못한 데다 임 씨는 끝끝내 자신의 단독 범행이라 주장해, 결국 임 씨에 대한 징역 15년형 선고로 탁명환 살해 사건은 종결됐다.      


고 탁명환 소장 살해 현장


이후 D교회는 이름을 바꾸고 박 목사는 이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계속해 나간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2013년, D교회와 박 목사에 관한 특별한 소식이 전해진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이제는 교계의 원로가 된 박 목사에게 그동안 내려졌던 이단 규정을 해제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의 성경 해석에 ‘이단성’이 있다는 것은 일종의 오해와 착오이며 그는 이단적인 성경 해석을 하지 않았고 결국 이단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박 목사는 세상을 떠났다. 존경받는 원로 목사로, 무엇보다 ‘결코 이단이 아닌’ 박 목사는 많은 이들의 추모를 뒤로하고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탁명환 소장의 살해 당시 D교회와 박 목사가 범죄 혐의에서 벗어났다면 20년이 지나서는 이단 혐의에서도 완전히 벗어난,  그들로서는 특별한 감회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탁 소장 유족들은 지금도, 임 씨의 단독범행일 리 없다고, 배후 세력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탁 소장의 죽음은 한 광신도의 단독 범행이며, 탁 소장의 죽음은 이단과는 무관한 사건으로,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정리된 셈이다.      


D교회와 박 목사에 대한 이단 판단은 교계에서 알아서 현명하게 했으리라 믿는다. 다만 그렇다면 탁명환 소장 죽음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냥 억울하고 어이없는 우연적 사건으로 기억되면 그만일까?    


탁명환 소장은 생전 약속대로 그의 시신은 의대생들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됐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경기도 용인의 한국 순교자 기념관에 모셔져 있다.      


고 탁명환 소장 순교 기념비


순교자... 세상은 한 광신도에게 목숨을 빼앗긴 사건으로 기록할지 모르지만, 그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으로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최고의 헌신을 보여준 6백여 명의 순교자들과 함께 기억되고 있다.     


그의 죽음을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타협 없는 싸움 속에서 이해하고,  그래서 그의 죽음을 순교로 인식하는 한국인들의 상식이야말로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영원한 샘물임에 분명하다.


 소장의 죽음을 놓고 세상의 법은 20 실행범만을 단죄했고 배후로 의심받았던 이들도 이단이 아니라고 선언했지만, 역설적이게도 탁명환 소장의 죽음 이후 우리 사회에서 가짜 종교와 가짜 종교인들에 대한 경각심은 더욱 강력하게 전파되고 있다.      


슬프지만 바로 순교자의 위대한 힘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탁 소장이 정리한 이단의 특징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단자들은 그리스도 중심적이 아니고 자기중심적이다. 이단 교주들은 인간의 영혼이나 인권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이익과 지위 안락을 위하여 신도들을 도구와 기계처럼 이용할 뿐이다.”     


 소장이 평생 벌여온 이단과의 싸움은, 사욕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심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인간들에 대한 참을 수없는 분노에 다름 아니다.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이비와 불의에 용감하게 맞서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을 따르는 길이라 그는 믿었을 것이고 그 길에서 그는 비장한 죽음을 맞이했다.

    

악에 굴하지 말라, 용기를 잃지 말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듯한 순교자 탁명환 소장의 기념 비문에는 그래서인지 이런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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