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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성 Mar 01. 2023

백제의 꿈 서린 산책로, 몽촌토성길 기행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123층 롯데타워와 500살 은행나무가 공존하는 몽촌토성길 / 이하 ⓒ김종성

서울 시민들이 애용하는 지하철은 편리한 대중교통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보고 싶게 하는 여행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8호선 몽촌토성역은 꿈 몽(夢), 마을 촌(村)자가 들어가서 그런지 더더욱 호기심이 드는 역명이다. ‘꿈꾸는 마을에 들어선 토성’이라니 가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고대 삼한시대부터 이곳을 검마을 또는 곰말이라 했는데, 곰의 음이 꿈으로 변하였고 한자로 몽(夢)이라고 쓴 데서 몽촌(夢村)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몽촌토성이 발견된 올림픽공원에는 산책하기 좋은 토성길이 나있다. 아름다운 숲, 멋진 낙락장송과 나지막한 언덕길이 매력적인 산책로다. 한낮의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며 걷기 좋다. 약 4.2㎞ 거리로 제주도 오름을 떠오르게 하는 오르락내리락 유순한 능선길이 걷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고층 빌딩과 고대 유적을 양쪽에 끼고 가는 길은 시공을 초월해 백제의 들녘을 걷는 듯 묘한 느낌이 든다. 

건축미가 돋보이는 한성백제박물관
판축공법으로 지은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서울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산책로의 들머리로 삼은 곳은 한성백제박물관으로 9호선 전철 한성백제역이 가깝다. 몽촌토성처럼 주변 자연지형을 잘 살려 지은 박물관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과 ‘서울특별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탈만하다. 꼭대기에 주변 일대가 바라보이는 하늘 정원이 있고, 이곳을 따라 연결된 산책길이 몽촌토성길과 이어져 있다.


한성백제박물관은 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등 백제 한성기의 핵심 유적들과 그곳에서 출토된 수만 여 점의 유물을 보존 관리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토성을 조성하는 실크기 현장이 눈길을 끈다. 어떻게 흙으로 튼튼한 성을 쌓을 수 있었을까? 흙성을 쌓는 특별한 방법인 판축 공법 덕분이란다. 콘크리트 못지않게 단단하게 쌓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축 공법은 시루떡을 만드는 방법과 비슷하다. 시루떡 만들 듯이 흙을 층층이 다져가며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서해 남해를 통해 중국과 일본까지 교역했던 백제
박물관 앞 야외미술관

2천 년 전(기원전 18년) 고구려에서 내려온 온조가 한강 남쪽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다. 몽촌토성과 풍납동 풍납토성은 이때 지어진 왕성이라고 한다. 왕도 한성(王都 漢城)은 백제가 성장하면서 도읍의 규모가 커지자 그에 걸맞게 붙여진 새로운 명칭이다. 한성에 살던 백제인들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안팎에 모여 살다가 죽으면 언덕 넘어 지금의 석촌동 고분군에 묻혔다.


몽촌토성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서울올림픽(1988년) 개최를 위해 올림픽공원을 조성하면서부터다. 올림픽 대회를 몇 년 앞두고 올림픽 경기장을 건설하던 중 발견된 것이다. 뜻밖의 성곽이 발굴되자 공원 건설이 한동안 중단되기도 했으나, 결국 역사의 소중한 유적인 몽촌토성과 올림픽공원이 공존하도록 결정되었다.

운치있는 나무들이 많은 토성 길
토성의 해자 역할을 했던 몽촌호

발길이 머무는 멋진 조각 작품들이 서있는 야외조각공원을 지나 토성길로 올라서면 갑자기 머리 위로 햇살이 쏟아지면서 사방이 탁 트인다. 올림픽공원 일대가 발아래로 펼쳐지는 전망이 좋다. 남녀노소 산책하는 시민들과 반려견의 발걸음이 한껏 여유롭다. 몽촌토성만큼이나 오래된 고목 나무들이 토성길에 운치를 더한다. 해질녘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황금빛 노을도 멋지겠다. 올 겨울은 한파가 잦아서일까,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사로운 여유다.


몽촌토성은 남한산에서 뻗어 내려온 자연적인 지형인 언덕을 최대한 활용해서 만든 토성이다. 토성길 곳곳에 있는 전망쉼터에서 내려다보면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좋은 구조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왕이 거처하면서 백성들을 다스리던 풍납동 토성과 달리, 몽촌토성은 외적의 침입과 같은 비상시에 수도를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성격이 강한 곳이었다. 성벽 바깥쪽은 성내천이 몽촌토성을 감싸고 흘러 자연스럽게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서 판 못) 역할을 한다. 올림픽공원 지도엔 ‘몽촌호’라는 공식명칭이 붙어있다.

몽촌토성 목책(나무 울타리)
새들도 날개를 접고 거니는 꿈결같은 길

몽촌토성 산책로는 외성과 내성을 넘나들며 성벽의 위와 아래로 길게 이어진다. 그때마다 사방을 두르는 풍광도 달라진다. 성내천의 물길이 나오기도 하고 방어선으로 구축한 해자나 목책(나무로 만든 울타리)도 만난다. 움집터도 있고 몽천역사관도 있으며 올림픽 때 지은 경기장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몽촌토성의 언덕 위에 홀로 서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다. 이 나무는 조선 전기에 심어져 나이가 500살이 넘는 '몽촌토성 보호수'다.


500살 은행나무와 그 뒤로 펼쳐지는 123층짜리 잠실 롯데타워가 신기루처럼 솟아있다. 몽촌(夢村)이라는 이름처럼 마치 꿈길을 걷는 듯하다. 토성길에 서있는 안내판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있다. ‘새들도 날개를 접고 거니는 꿈결 같은 길’ 백제는 풍화되어 시간 속으로 사라졌지만, 몽촌토성길을 거닐면 꿈 가득했던 왕국의 이야기가 한줄기 바람에 실려 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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