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대문구 홍제천, 은평구 불광천
서울 서대문구의 대표물길 홍제천과 은평구의 자랑물길 불광천은 하류에서 만나 합쳐진 후 함께 한강으로 흘러간다. 하천이 이어져 있다 보니 천변 자전거 길을 따라 천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과 들꽃구경을 하며 자전거 여행하기 좋다. 남녘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봄꽃들이 봄바람을 타고 드디어 서울에도 상륙했다. 회색빛 도시를 화사하게 비추는 벚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 걸 보니 비로소 봄이 실감난다.
지하철 6호선 응암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불광천이 흐르고 있어 찾아가기 편하다. 본인의 자전거를 가지고 가거나, 응암역 2번 출구와 3번 출구에 있는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대여소를 이용하면 된다. 자전거 안장위에 올라 페달을 돌리자 얼굴에 닿는 바람에서 버들강아지처럼 살랑거리는 봄이 느껴졌다. 2개 하천 모두 4월 8일까지 봄꽃 축제가 열려 동네 주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마스크 없이 맞는 4년만의 봄 축제라 그런지 천변 길, 카페, 맛집 등 하천 일대 분위기가 한층 고조돼 있다.
일주일 남짓 잠시 피고 지는 꽃이기에 이토록 벚꽃을 사랑하고 매년 축제를 벌이는 것이겠다. 벚나무가 1년 내내 꽃을 피우고 있다면 이런 설렘이나 감동은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천변엔 화사한 벚꽃 외에도 하천가에 소복하게 피어난 봄까치꽃, 개나리꽃, 제비꽃 등으로 하천이 환해지고 지나는 시민들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본래 차례대로 피어나는 들꽃이었는데 올해는 기온이 빨리 오르면서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났다.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은 사람들이 가꾸어 놓은 정원 같은 곳이 아니라 후미진 뒷산이나 평범한 하천가 임을 알게 해주는 꽃이다. 하천가 풀밭에 주저앉아 쑥이나 돌나물을 캐는 동네 주민들도 빼놓을 수 없는 정겨운 봄 풍경이다. 보기만 해도 쑥떡, 쑥국에서 풍겨나는 은은한 쑥향이 느껴진다. 한 어린 아이가 할머니를 따라 쑥을 캐는 모습이 참 귀여워 곁으로 다가갔다. 부끄러워하며 앙증맞은 손으로 캔 작고 귀여운 쑥을 보니 우리말 ‘쑥스럽다’의 유래를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 여의도의 윤중로 벚꽃길에 갔다가 인파에 몇 번 치이면 벤치나 정자에 비스듬히 앉아 휘날리는 벚꽃들의 향연을, 짧은 봄날의 반가움과 아쉬움을 여유롭게 즐기고픈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럴 때 찾으면 좋은 곳 중 하나가 불광천 벚꽃길이다. 하천에서 가장 높은 둑길에 조성한 나무 데크를 거닐며 벚꽃 구경을 하는 사람도 많다. 천변 둑길 가에 작고 예쁜 카페와 맛집들이 자리하고 있어 들르기 좋다.
불광천 벚꽃길은 낮이나 밤이나 평화롭고 아득한 풍경을 선사해 준다. 해가 저물면 길바닥에 깔린 하얀 할로등 조명 빛을 받은 벚꽃나무들이 화려하게 빛난다. 낮에 피는 벚꽃들이 화사한 새색시 같다면 밤의 조명불빛에 피어난 벚꽃들은 도시의 농염한 여인 같다. 저녁때는 불광천에 설치된 분수대에서 색색의 물빛이 솟아오르고 까불거리며 춤을 추니 도시속의 꽃놀이가 더욱 흥겹다.
홍제천 물길은 머리 위로 높다랗게 솟은 내부순환도로가 이어져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하천가에 귀여운 아이들을 연상하게 하는 개나리꽃이 무리지어 피어났다. 온통 순백의 벚꽃 속에서 샛노랗게 피어난 개나리꽃을 보면 보약을 먹은 듯 기운이 솟는다. 부드러운 봄바람, 따스한 햇볕, 환하게 웃어주는 봄꽃들, 사람들의 생기 있는 표정··· 일 년 중 가장 좋은 나날이 지나가고 있다.
하천길은 실내공간인 520m의 ‘열린 홍제천길’을 지나기도 한다. 과거 복개(하천이 흐르는 위를 콘크리트로 덮는 것)로 인해 단절구간이었다가 무려 50년 만에 이어진 길이다. 복개천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만든 길이 아니라, 지하 복개천 옆으로 산책로와 자전거 길을 냈다. 지나다보면 나타나는 콘크리트 기둥들이 삭막한 복개천 속내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예술적 영감을 주는 소재로 승화했다. 여기에 잔잔한 음악까지 틀어놓아 색다른 공공예술을 접하게 된다.
홍제천가에 조성한 인공폭포는 인공폭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과 잘 어우러져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높이 25m, 폭 60m에 달하며 도심 속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자연미가 아주 잘 살아있다. 얼마 전엔 폭포 앞 2층과 3층 높이에 ‘수변테라스 카페’가 생겨 전망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카페에서 보이는 폭포 옆으로 희끗희끗한 하얀 숲이 살짝 보인다. 폭포 오른쪽에 난 징검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연희숲속쉼터’다.
10,000㎡(약 3천 평)의 쉼터는 아담하고 잘 가꿔진 비밀의 숲속정원 같다. 허브정원과 벚꽃마당, 숲속 쉼터, 잔디 마당, 팔각정자 등이 있어 꽃구경하며 쉬어가기 좋다. 원래 튤립을 많이 심어놓은 꽃밭으로 유명하지만 이맘땐 벚나무가 주인공이다. 작은 동산에 벚꽃이 숲을 이룬다. 하천가의 벚꽃과는 느낌이 전혀 다른 산벚나무의 흐드러진 벚꽃 자태에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벚나무 가지에 앉은 직박구리 한마리가 꽃향기에 취한 듯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홍제천 자전거 길 끝에 이름도 특이한 ‘포방터 시장’이 있어 꼭 들르게 된다. 매주 토요일마다 여러 이벤트가 펼쳐지는 장터가 열린다. 2개의 하천 길을 달려오느라 출출했는지 시장골목 ‘이모네 분식’에서 먹은 평범한 순대와 떡볶이가 꿀맛이었다.
‘커피볶는 김여사’네서 커피를 마시다보면 북악산으로 흘러가는 홍제천의 정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자전거도로는 없지만 보행로가 이어진 천변을 계속 가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된 백불(白佛)이 있는 작은 암자 옥천암과 조선시대 인조반정에 출현하는 누각 세검정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