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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성 Jun 18. 2020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전주천 자전거여행

전북 전주시 전주천 자전거여행

도심 속 생태하천 전주천/이하 ⓒ김종성

역사와 문화 그리고 맛의 천국으로 널리 알려진 전라북도 전주는 사계절 어느 때 가도 좋은 고장이다. 관광객은 잘 모르는 전주의 숨겨진 명소가 있는데 바로 전주의 대표 물줄기 전주천이다. 날씨 좋은 날 전주천에 가면 전주의 또 다른 매력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관광지에선 만나기 힘든 전주 시민들을 쉽게 마주치게 되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며 담소도 나눌 수 있다.   


예부터 “물 좋고 인심 좋고 살기도 좋은 땅”이라 일컬어왔던 전주의 명성 그대로다. 전주천은 전북 임실군 관촌면 박이뫼산 슬치재에서 발원해 전주시 도심을 가로지르다 삼천(三川)과 합류해 만경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길이 30km의 지방 1급 하천이다. 여울과 소를 조성해 자연성을 회복한 도심 속 생태하천이다.     


천변에 정겨운 섶다리, 징검다리와 산책로가 나있어 여유롭게 거닐기 좋다보니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도심 속을 지나는 동네 하천은 동네 뒷산만큼이나 주민들에게 위로와 위안이 되는 존재다. 아침저녁으로 운동 삼아 뛰거나 사색을 즐기며 산책할 수 있고, 천변에 사는 나무와 다채로운 들꽃들은 사람의 정서를 풍요롭게 해주고 자연의 계절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전주천 곳곳에 있는 자전거 대여소

전주천은 화려하지 않지만 편안한 하천이다. 도심하천이라 어쩔 수 없이 몇 군데 친수시설이 있지만, 생태를 생각해 조명시설도 거의 설치하지 않았다. 하천 도로변에 있는 가로등을 보면, 하천 쪽은 일부러 조도를 낮췄다. 밤이면 시골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조용한 하천이다. 그래서 ‘밤의 하천’으로 불리기도 한다. - 천변 안내판 글 가운데     


중류 구간엔 한옥마을과 남부시장, 청연루, 한벽당 등 명소를 지나가 여행하기 더없이 좋은 하천이기도 하다. 천변에 전주시에서 운영하는 공공자전거 대여소가 여러 곳 있다. 전기로 가는 전동자전거도 갖춰져 있어 무더운 날씨에도 부담 없이 하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오르막 언덕길 하나 없는 하천길이라 자전거 산책이 더욱 가뿐하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듬뿍 나는 날씨지만 희한하게 자전거 위에선 숨은 차지만 땀은 나지 않는다. 페달질을 하면서 많은 땀이 나지만 하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모두 날아가 버리는 거다. 땀이 바람에 날아가면서 생기는 상쾌한 기분은 덤이다.     


2개의 하천을 볼 수 있는 삼례읍 비비정 마을

삼례읍 비비정 마을 언덕에 서면 만경강과 전주천이 보인다

전주천에 가려면 전주역이나 전주버스터미널보다 더 가까운 곳이 있는데 바로 삼례역(전북 완주군 삼례읍)이다. 전라선 무궁화호 열차가 서는 삼례역은 2개의 하천을 만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차역이다. 역 앞 비비정 마을로 가면 만경강과 전주천이 만나는 풍경이 흐드러지게 펼쳐져 절로 감탄이 나온다.     


전주천이 합쳐진 만경강은 더욱 힘을 내어 새만금방조제가 있는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자연에는 '존재의 목적'이라는 것이 없어 좋다. 인간들은 흔히 자기중심적 생각에 사로잡혀 지극히 인간적인 목적을 자연에 부여하고 있지만, 자연은 그런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주어진 법칙에 따라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기차역 안에 삼례의 역사 안내판이 자랑스레 서있었다. 삼례는 조선시대 호남 최대의 역참이 있었던 곳이었다. 조선시대 전국 9대 간선도로 중 삼남대로(한양~삼례~해남)와 통영대로(한양~삼례~통영)의 분기점이자 호남 최대 역참으로 13개 역을 총괄했던 도찰방이 설치되었다. 교육 통신 민간교역 숙박 문화의 중심지가 바로 삼례였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엔 농업중심지로서 물산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복선화된 전라선 삼례역사가 새로 지어지면서 옛 삼례역은 막사발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우리에겐 흔하고 평범한 듯 보이지만 외국인들에겐 최고의 자연미, 인간미가 돋보인다는 격찬을 받는 막사발이 다양한 모양으로 전시돼 있다. 일본에선 국보로 대접받는 우리 조상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아무 장터에서 볼만한 막 만들어진 찻잔이 일본인들의 눈에는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라며 경탄을 받고 있으니 예술의 세계란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양곡창고에서 문화창고가 된 삼례문화예술촌
전망 좋은 정자 비비정

막사발 박물관 옆엔 삼례문화예술촌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광복 후 헐릴 뻔했던 일제 강점기 때의 옛 양곡 창고를 살려 조성했다. 미술관과 문화카페 목공소 책박물관 등 흥미로운 공간이 들어서 있다.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도 있어서 여유 있게 삼례여행을 할 수 있다.     


삼례역에서 가까운 ‘비비정 마을’로 가면 하천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독특한 마을 이름은 오래된 정자 비비정(飛飛亭)에서 따왔다. 노을에 물든 황금빛 강물에 황포돛대가 떠 있고, 잔풀 하나 없는 깨끗한 백사장엔 기러기 떼의 그림자가 깃들던 곳이라니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 ‘완산8경’에 오를 만 했다.     


시골뿐만 아니라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자는 자연을 극복하거나 이용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만 자연을 대화의 상대로 보고자 하는 선조들의 마음이 담겨 있구나 싶다. 유장한 강줄기와 함께 옛 만경강 철교, 철교 위에 서있는 열차가 한눈에 펼쳐진다. 철교와 열차모두 운행하지 않는 관광지로, 1928년에 지었던 만경강철교는 등록문화재(579호)가 됐다. 열차 안에 식당과 카페, 갤러리가 있는데 모두 창문을 통해 강이 보인다.     

 

여울과 소를 조성해 자연성을 회복한 전주천

전주천에 사는 수달가족

삼례읍에서 만경강을 바라보며 전주천으로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에서나 보았던 수달 가족을 만났다. 여러 하천을 거닐었지만 수달은 처음 보았다. 여행자를 반기는 듯 물가에서 헤엄을 치고 있어 절로 발길이 머물렀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뿐 도망치지 않아 신기했다.     


사람과 눈을 마주쳤음에도 쉽게 도망가지 않은 점에 비춰볼 때 도심하천 생활에 상당히 적응한 것으로 보였다. 어족자원보존과 환경보호를 위해 천변에 낚시가 금지돼 있는 것도 수달의 식생에 한 몫 하는 듯 했다. 더불어 전주천의 건강한 생태계를 미루어 짐작하게 했다.     


수달은 천연기념물(제330호),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보호받고 있는 귀한 동물이다. 물에서 헤엄치면서 물고기를 주로 잡아먹는 족제비과 포유류 동물로 깨끗한 물에서만 살아서 수질상태의 척도로 알려지고 있다. 수달은 과거 우리나라 전국의 하천에 넓게 분포하고 있었으나 남획, 서식지 파괴, 먹잇감 감소, 교통사고 등으로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전주천에는 수달 외에도 원앙(천연기념물 제327호), 흰목물떼새(멸종위기 2급) 등 귀한 동물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2000년대 부터 되살아난 전주천

생태계는 인간이 존중하고 보호하면 반드시 그 보답을 한다. 스스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모델이 바로 전주천이다. 1960~70년대 이후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진적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하수도 정비 시설까지는 미처 갖추지 못했다. 그로 인해 도심 내 하천은 생활하수와 공장폐수가 흘러들어 수질이 악화됐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물질적 풍요는 삶의 질을 높이려는 욕구를 낳고, 그제 서야 삶의 질을 규정하는 주변 자연환경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0년, 늦게나마 하천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천 주변을 흉물스럽게 덮고 있던 콘크리트 호안과 주차장을 걷어냈고 수변에는 꽃창포와 갯버들을 심기 시작했다.     


고기가 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도록 어도를 만들었고 하천 사이사이에 놓인 우직한 돌다리는 사람들의 발길을 다시금 전주천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전주시의 꾸준한 하천 관리는 3~5급수에 머물던 수질을 1~2급수로 바꿔놨고 수달 외에 쉬리 납자루 동사리 각시붕어 등 1급수 어종들도 전주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공적인 전주천의 생태하천 복원사업은 모범적인 도심하천의 생태복원 사례로 꼽힌다. 인간의 노력에 대한 자연의 보답과 복원력이 놀랍고 고맙다.

유해조수가 돼버린 민물가마우지

전주천에 사는 야생동물 가운데 새까만 몸체에 노란 턱이 이채로운 새 민물가마우지도 눈에 띄는 존재다. 하천에 사는 이웃인 왜가리나 중대백로와 달리 잠수를 해서 먹이를 잡는 노련한 물고기 사냥꾼이다. 원래 철새였으나 200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자리를 잡고 사는 텃새가 되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냥솜씨는 가마우지에게 독이 되고 말았다. 해마다 이 땅의 하천, 호수 등지에 많은 가마우지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민물고기의 씨를 말려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어서다. 처음엔 보기 드문 새라 보호종으로 지정했는데, 이젠 지자체마다 골머리를 앓는 대표 유해 조수가 되고 말았다.     


섶다리 싸전다리 어은골쌍다리··· 정겨운 전주천 보행교     


전주천을 지나는 보행교 가운데에는 토속적이고 재미있는 이름의 다리들이 많다. 가련교, 싸전다리, 어은골쌍다리··· ‘여울목 섶다리’는 다른 다리와 달리 억새풀과 섶나무(잎나무, 풋나무, 물거리 따위의 땔나무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만든 정감 가는 옛 다리라 볼일이 없는데도 건너가 보게 된다. 매년 10월이면 전주천 섶다리 축제가 열린다. 가을 추수철에 만들어 이듬해 여름까지 운영한다. 예부터 장마철 큰물이 지기 전에 철거하거나 떠내려 보내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정다운 섶다리

폭이 좁고 비교적 물살이 세지 않은 곳에 들어 앉아있는 징검다리도 빼놓을 수 없다. 징검다리가 놓인 곳에는 물의 흐름에 맞서게 돌무더기를 쌓아 두는 것이 보통이다. 유속을 느리게 하려는 지혜이다. 졸졸졸 물소리를 들으며 건너가거나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쉬기 좋아서일까, 여름 더위에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 나온 사람들도 징검다리 주변에서 논다. 사람들은 징검다리에서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고 혹은 위안을 받기도 한다.     


천변에서 추천대(楸川臺)라 이름 붙은 정자를 만났다. 전주천의 옛 이름은 추천(楸川)이었던가 보다. 추(楸)는 개오동나무 가래나무 호두나무를 의미하는 한자다. 이곳은 조선 성종 때 학자이경동이 고향에 돌아와 낚시를 하며 만년을 보냈던 곳이라고 한다. 이 물줄기를 사랑했던 이경동은 호를 추탄(楸灘)으로 지었다. 추천대에서 전주천을 바라보며 쉬다보니 하천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콧등에 맺힌 땀을 식혀주었다.     


추천대에서 덕진공원(전주시 덕진구 덕진동)까지 자전거로 5분 거리에 있다. 전주천을 여행한다면 시간을 내어 덕진공원을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공원 안에 자리한 덕진지(德津池)라고도 불리는 연못은 고려시대에 풍수지리설에 따라 축조된 역사 깊은 공간이다. 공원 전체 면적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99,000㎡(3만 평) 규모의 큰 연못이다. 가장 뜨거운 8월의 여름이면 연꽃이 만개하고 초록빛 수련과 분홍빛 홍연의 향연이 펼쳐져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탁한 물을 머금고 가장 무더운 날 피어나는 신기한 연꽃은 그래서 불교의 상징 꽃이 되었나보다.

넓고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 덕진공원
한여름날 주민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전주천

전주천은 추천대가 자리한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에서 삼천을 만나 합류하면서 천변이 사세를 확장하듯 넓어진다. 능수버들이 천변에 흐드러지게 늘어서서 그늘을 드리워주고, 개개비가 이름처럼 독특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전국적으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여름철새로 갈대밭과 연밭 등 하천가의 숲을 좋아하는 작은 새다.  

   

오리가족이 떼를 지어 전주천을 유영하는 모습도 보인다. 아이가 점점 줄어드는 팍팍한 도시에 살다보니, 새끼들을 줄줄이 데리고 다니는 다복한 오리 식구들이 정겹기만 하다. 훌쩍 자란 새끼들을 돌보는 어미의 뿌듯한 표정이 "우리 아이들 많이 컸죠? " 라고 말하는 듯하다. 저 아이들 중 한 마리가 어른이 되서 짝을 만나고, 내년에 또 귀여운 새끼들을 데리고 고향을 찾아오듯 전주천에 나타날 생각을 하니 기특하기 만하다.     


전주천은 길고양이들도 살아가기 좋아 보였다. 자동차의 위협으로 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하천변에 천적도 없다. 하천변을 산책하는 시민들이 애정과 관심을 보이고 먹을거리도 준다. 그래서인지 고양이 모습도 한결 편안해 보인다.     


한여름에는 따가운 햇살을 피해 해질녘에 많은 시민들이 나와 산책하면서 더위를 식힌다. 매일 저녁 운동하러 나온다는 어느 주민은 “전주천변을 따라 뛰다가 벤치에 앉아 쉬면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이곳에서 멱 감던 생각이 나고 마음이 편하다”며 어디서 왔느냐며 음료수 하나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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