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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성 Apr 03. 2021

만경강 평야를 품은 도시, 익산(益山) 자전거여행

전북 익산역 북부시장 만경강 춘포역

만경강과 평야가 펼쳐지는 익산 / 이하 ⓒ김종성 

이름만 들어도 넓디넓은 평야와 풍성한 들녘이 떠오르고 왠지 포만감이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강은 단연 만경강(萬頃江)이 아닐까싶다. 만경은 수 만개의 이랑이라는 뜻이니 ‘넓은 들’ 혹은 ‘너른 벌’을 끼고 있는 강이라는 말이겠다. 만경강이 품고 있는 평야를 '징게 맹게 외배미들(김제·만경 너른 들)'이라고 부른다. 완주 전주 익산 김제 군산옥구를 지나며 서해로 흘러들기까지, 그야말로 전북의 평야를 살찌우는 강이다.    

 

‘징게 맹게’는 전라도 사투리로 김제와 만경, '외배미들'은 이 배미 저 배미 할 것 없이 모두 한 배미로 툭 트인 땅을 의미한단다. 만경강 하류에 형성되어 있는 평야는 '김제'와 '만경'의 합성 지명으로 금만평야로 불리기도 한다. 만경강이 서해로 흘러 들어가는 곳에 지은 새만금방조제도 여기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만경강은 전북 익산의 먼 북동쪽인 완주군 원정산에서 발원하여, 고산천·전주천 등의 지류와 합쳐지면서 삼례를 거치고, 익산의 남쪽을 지나 서해(새만금)로 흘러가는 길이 약 74km의 큰 강줄기다. 모래가 많은 물줄기였는지 원래 모래 사(沙) 자를 써 ‘사수’, ‘사탄’ 등으로 불리던 것이 일제 강점기에 ‘만경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만경강에 모래가 남아있던 1960~70년대 까지 '만경강 모래찜질'은 전국적으로 유명했단다.  


풍성한 오일장이 열리는 익산북부시장  
너른 평야를 연상하게 하는 익산역
날 것 그대로의 옛 장터 풍경이 남아있는 익산북부시장

너른 평야가 연상되는 간판을 한 전북 익산역에 내렸다. 익산역 주변엔 전통재래시장이 많아 식사도 할 겸 장터여행하기 좋다. 역 앞에 있는 중앙시장과 위 아래로 북부시장, 남부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시장 건너편엔 구도심 거리를 살리기 위해 조성한 ‘문화예술의 거리’도 있다. 


새로 생겨난 공방과 갤러리 외에 갑을이용원, 동석전자, 한일양복점 등 오래된 가게의 간판들이 흥미로워 안에 들어가 보고 싶게 했다. 그 가운데 매 4일, 9일마다 닷새장이 열린다는 북부시장에 찾아갔다. 역 앞 도로를 따라 북부시장 가는 길, 웬 경운기 한 대가 털털거리며 천천히 차도를 지나가는데 뒤 차량들이 빵빵거리거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익산이라는 동네가 좋아졌다.


익산시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는 장터답게 시장통 안이 미로처럼 복잡하고 길이 많다. 익산 오일장엔 날 것 그대로의 옛 장터 풍경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특히 가게 밖에 붉은 고기를 통째로 걸어놓은 정육점들은 영화에서나 볼법한 풍경이었다. 할아버지와 손자 혹은 3대 가족이 함께 나와 오일장 구경을 하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도심속에 자연스레 출현한 경운기
아트센터와 흥미로운 가게들이 많은 익산역앞 문화예술 거리

시장통에 이리신협, 이리반찬, 이리방앗간 등 ‘이리’가 들어간 가게가 많았다. 초원 백반집에서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되면서 익산시가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익산역도 원래는 이리역이었다고. 더불어 해방이후 최대 열차사고라는 이리역 폭발사고에 대한 얘기도 듣었다. 1977년 11월11일 이리역에 화약을 싣고 정차한 열차의 폭발사고가 나면서 사망자 59명, 부상자는 1,343명에 달했다.     


이 중 철도원 16명이 순직했다. 당시 역전 창인동 삼남극장에서 ‘하춘화 리사이틀’ 공연장도 천장이 내려앉았는데, 이때 당시 무명이었던 코미디언 (故)이주일이 가수 하춘화를 구출하여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젊은층에게 11월11일은 빼빼로 데이로 기억되지만, 익산 시민들에게 이 날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공포의 날로 기억된다고.      


쌀익는 너른 평야가 펼쳐지는 만경강 
익산 만경강에 이어진 정겨운 강둑길
만경강 둑길에서 보이는 강변 마을

만경강 둑길을 타고 김제에 볼 일 보러 간다는 자전거탄 동네 아저씨 뒤를 따라 강둑길을 찾아갔다. 강 하류 끝에 물길을 가로막고 서있는 새만금방조제가 있는데다 하천정비공사가 한창인 만경강은 물줄기가 메말라 아슬아슬하게 흐르고 있었다. 강둑길에 종종 차들이 지나가서인지 둑길 옆에 따로 자전거도로를 깔아놓았지만, 나는 굳이 강둑길을 달렸다. 왼편의 마을 풍경과 오른편에 펼쳐지는 강 풍경을 모두 보면서 달릴 수 있어서다.      

강둑길을 오가는 자전거탄 어르신들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면 환한 미소로 화답해주신다.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면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그럴 때면 세상도 내 인생도 뭐 그리 나쁘지 않구나 싶다. 만경강에 이어진 긴 강둑길은 무려 일제 강점기 때 쌓은 제방이라고 한다. 농토를 늘리기 위해 제방을 쌓으면서 원래 S자 형태의 곡류(曲流)로 흘렀던 만경강은 직강화됐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닐 텐데 메마른 강가에 갈대와 물억새들이 가득 피어나 여행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눈부신 햇빛을 받아 강바람에 흔들릴 때면 은빛 파도처럼 출렁여 저절로 자전거 페달을 천천히 돌리게 했다. ‘춘포지구’라고 써있는 이정표를 지나면 마을 풍경이 모두 쌀 익는 평야로 변모한다. 야트막한 언덕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방이 훤히 뚫려 있는 평야 지대다. 만경평야는 넓기도 넓지만 한가로움과 평화로움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문화재가 된 국내 최고(最古)의 간이역, 춘포역
국내 가장 오래된 기차역, 춘포역
춘포역을 지키는 든든한 명예역장 아저씨

익산시 춘포면(春浦面) 동네는 예부터 넓고 비옥한 곡창지대가 있던 마을이다. 한자어 춘포를 풀어보면 우리말로 '봄 나루'다. 옛날엔 이곳까지 배가 드나들던 나루터 마을이었다. 이곳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간이역 춘포역이 있다. 아쉽게도 2011년 기차가 더 이상 서지 않는 폐역이 되었지만,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 간이역으로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14년 만경강변의 춘포 마을에 작은 간이역사가 하나 생긴다. 넓디넓은 만경평야 한가운데로 철도가 들어선 것이다. 그 10년 전부터 일본의 거대한 농업자본이 익산 춘포로 몰려왔다. 만경강 일대 들녘은 일본인 거대 농장주가 독차지했고 수탈한 쌀을 운반할 교통수단이 필요했다. 쌀을 싣고 갈 춘포역은 그렇게 생겨났다.   

   

간이역외에 지금도 춘포면 동네엔 호소카와 농장가옥, 대장 정미소, 호소카와 농장 주임관사(김성철 가옥) 등이 남아있다. 당시 역 이름은 대장역(大場驛)으로 마을 이름도 대장촌으로 바꾸었다. 대장은 '넓은 들(평야)'의 의미다. 1996년에야 현재 이름 춘포역으로 개칭했다. 마을엔 ‘대장 미용실’, ‘대장 교회’, ‘대장촌 식당’ 등 당시 지명의 흔적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때의 춘포역
만경강변 길에서 마주친 귀여운 염소들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쌀 수탈’을 ‘쌀 수출’이라고 주장하는 학자, 교수들이 있다. 당시 일본은 막대한 양의 쌀을 조선에서 사들여 자기 나라에 가서는 다섯 배의 값을 받고 팔았다. 이렇게 대량으로 쌀이 유출되자 조선의 쌀값이 오르게 된다. 


세금을 내거나 고리대를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헐값으로 일본인에게 쌀을 판 조선의 농민들은 다시 비싼 값에 쌀을 사먹는 악순환에 빠져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쌀 수출’을 주장하는 이들의 눈은 당시 배를 곯고 곯다가 살기위해 만주와 연해주로 떠난 수많은 동포들이 보이지 않는 외눈박이지 싶다. 


간이역답게 소담한 몸체와 맞배지붕(양쪽으로 경사진 지붕)이 정답다. 에메랄드 색으로 덮인 역사 안에는 그 옛날 춘포역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 등 추억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역 앞에 향나무도 멀쩡하고 간이역이 꽤 깔끔하게 보존되었구나 싶었는데 명예역장님이 관리를 하고 있었다. 


철도공사를 퇴임한 동네 주민 아저씨가 명예역장으로 간이역을 관리하며 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역장님은 춘포역의 전성기는 1960~70년대였단다. 전국 각지에서 만경강 모래찜질을 하러 춘포역을 통해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익산시를 통해 명예역장님께 연락을 하면 역 안내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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