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화교들의 요리 그리고 '논야' 요리
앞에서도 언급했듯, 코타키나발루가 속한 동 말레이시아는 중국계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1/4를 차지합니다. 따라서 간판에도 한자가 많고 중국계의 요리가 유명하고, 많습니다. 그 중 하이난 성의 요리들은 지난 글에서 간단히 설명했고 이번에는 광동성과 복건성 계열 화교들의 요리가 이곳에서 어떻게 전해지고 발전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화교들과 말레이 인들이 결혼하면서 두 문화의 요리가 섞인 '논야' 요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간단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사바섬 투어 중에 만난 광동 요리들
코타키나발루 최북단의 제셀톤 포인트에서 표를 예약하면 사바 섬을 비롯한 여러 섬들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빠른 제트 보트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재미있고, 맑고 푸른 산호초 바닷가에서 수영하거나 스쿠버 다이빙, 시 워킹 등 여러 활동을 할 수 있고 야생 원숭이들을 볼 수 있는 정글 트래킹도 가능하지만 이번 포스팅은 식문화에 대한 것이니 음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차콰이테우는 넓은 쌀국수면을 중국 간장 등으로 볶아내는 요리입니다. 해물, 계란, 숙주 등 여러가지 버전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오징어와 생선살이 들어간 해물 버전이었습니다. 한 그릇에 한국 돈 2천원 정도였는데도 상당히 맛있었습니다. 특히 싱가폴이나 서 말레이 쪽에서는 차콰이테우에 매운 고추와 향신료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반면 동 말레이식은 마늘과 생강, 파로 향을 낸 향긋한 기름과 간장으로 고소하게 볶아낸 타입이라 한국인들의 입맛에 어지간하면 잘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산 지역에서 많이 먹는 완탕이 원래 광동 요리입니다만, 말레이시아 요리로 넘어오면서 이상하게 완탕이 아니라 에그누들 요리가 완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완탄미는 계란 노른자로 반죽해서 독특한 식감과 담백한 맛을 내는 에그누들을 쓰는 요리를 통칭하는 것으로, 프라이드 완탄미가 되면 볶음 면, 수프 완탄미가 되면 녹말을 푼 수프 속에 면이 들어가는 식입니다. 이것은 닭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수프 완탄미입니다. 한국 기스면과 비슷한 따뜻한 녹말 닭국물에 담백한 에그누들, 채소가 들어가서 편하게 먹기 좋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먹는 탕수육이 대표적인 광동 요리입니다. 탕추러우 혹은 영어로 스위트 앤 사워 비프/포크/ 치킨이라고 쓰여 있는 요리가 바로 광동식 탕수육으로 우리나라 탕수육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에서는 보통 탕수육에 밥이 같이 나오고 탕수육 소스에 밥을 비벼서(!!) 고기와 같이 먹습니다. 한국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라 당황스러웠지만 한국과 약간 다른 상큼한 소스 덕에 의외로 아주 맛있습니다.
2. 선데이 마켓 푸드 코트
선데이 마켓은 코타키나발루 시내 동북쪽 가야 스트리트에서 일요일 오전 6시 ~ 오후 1시까지만 열리는 전통 시장입니다. 코타키나발루는 워낙 작은 도시이고 대형 쇼핑몰이 많은 관광지이다보니 상설 전통시장은 도시 밖에만 있습니다만 매주 일요일 오전에 열리는 선데이 마켓과 매일 밤 도시 곳곳에서 저녁 시간에 너댓시간 열리는 장이 전통 시장을 대신합니다. 필리핀계 이주민들의 야시장도 유명하지요.
말레이시아는 비록 이슬람 국가이지만 동말레이 지역은 이슬람교인 비율이 비교적 낮고 중국계나 돼지고기를 먹는 원주민 인구가 많아 상대적으로 돼지고기 요리도 많은 편입니다. '콘지' 라고 하는 광동식 쌀죽은 중국 광동과 민남 지방에서 인기가 많은 요리인데 이곳에서도 흔히 보입니다. 고기육수를 담백하게 내어 만든 쌀죽에 고기를 조금 넣고, 참기름을 뿌려 주는데 저렴하기도 하거니와 보기보다 굉장히 맛있어서 아침에 속을 달래기 아주 좋습니다.
중국 복건성은 대만이 속한 곳이기도 해서, 대만식 우육면 좋아하시는 분은 비슷한 점을 느끼셨을 겁니다. 네 바로 같은 요리입니다. 다만 동 말레이에서는 피쉬볼이 들어가고 간이 덜 짜며 향신료가 별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만식 우육면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분명히 거의 같으면서도 다른 미묘한 부분에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딤섬 역시 코타키나발루에서 흔히 먹는 광동 요리입니다. 인건비가 싸고 해물이 저렴한 동네이다보니 딤섬이 생각보다 많이 저렴합니다. (길거리에서는 종류에 따라 한 접시에 한국돈 1~2천원 사이, 호텔에서도 2~4천원 사이) 술을 잘 먹지 않는 이슬람 국가 특징으로 간이 광동식보다 훨씬 담백합니다.
3. 탄중아루 샹그리아 호텔 중식당
탄중아루 샹그리아 호텔은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장 고급 호텔이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 비쌉니다.
이곳 중식당인 향궁 (Shang Palace)는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장 비싼 중식당 중 하나입니다만 그래도 한국의 중국집들 정도 가격이어서 좋습니다.
700g짜리 생선을 쓴 청증어가 한국 돈으로 2만원 조금 넘는 정도였습니다. 닭육수와 생강즙, 중국 간장으로 살짝 재워둔 신선한 생선을 쪄서 위에 뜨거운 파기름을 살짝 붓고 생강채와 파채, 고수를 얹어주는데 매우 담백하고 고소합니다.
양배추 잎을 절반 두께로 얇게 저며서(!!) 고기 소를 싸고그릇에 담긴 육수에 넣어 찐 딤섬입니다. 종이처럼 얇은 양배추잎이 아주 달콤하고 육수에 적셔져서 찐 고기소가 촉촉해서 아주 좋았습니다. 한 접시에 2500원 정도.
뜨거운 육즙 가득한 소룡포입니다. 생강향과 돼지 육즙이 가득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역시 한 접시에 한국돈 2500원 정도
가격은 같았습니다.
큼직한 타이거 새우를 튀겨서 갈릭칠리 소스에 버무려 주는데 달콤새콤매콤한 것이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한국돈 2만원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위에서 썼던 에그누들, 완탄미와 같은 것입니다만 쇠고기와 버섯이 듬뿍 들어가 아주 고급스럽고 맛있었습니다. 가격이 기억나지 않지만 몇천원 수준이었습니다.
역시 위에서 언급한 차콰이테우와 같은 요리입니다만 계란과 숙주, 애호박, 양파, 돼지고기 등이 골고루 듬뿍 들어가서 매우 맛있었습니다. 역시 가격은 비싸지 않았습니다.
4. 복건성(호키엔) 스타일의 바쿠테 전문점 유키 바쿠테 (우기 육골차)
바쿠테(육골차)는 돼지의 뼈와 갈비, 꼬리, 내장 등 이 지역 사람들이 잘 즐기지 않는 부위를 푹 고아서 만드는 말레이시아 지역의 강장 음식입니다. 광동 이민자들은 닭육수에 구운 마늘과 백후추를 써서 맑은 국물로 푹 고아낸 돼지갈비 바쿠테를 즐기고, 복건성 이민자들은 돼지의 여러 부위를 써서 푹 고아낸 다음 온갖 한약재를 넣고 간장으로 간한 진한 바쿠테를 즐깁니다. 코타키나발루에서는 유키 바쿠테와 신기 바쿠테 두 집이 아주 유명하고 저는 그 중 유키 바쿠테를 다녀왔습니다.
복건 요리는 원래 불도장과 전가복 등 보양음식이 유명하며 오래 고아낸 국물요리에 한약재를 쓰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이 말레이에서 발전한 것이 바쿠테입니다.
동 말레이에서는 복건식 바쿠테집만 있고 광동식 맑은 바쿠테는 아무리 찾아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싱가폴의 유명한 송파 바쿠테 같은 곳이 광동식 바쿠테입니다.
한방 갈비탕 같은 느낌이라 우리나라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국물입니다. 돼지꼬리나 내장 부위도 먹고 싶었는데 늦은 시간이라 특이한 메뉴는 다 떨어져서 아쉽게도 평범한 돼지갈비와 미트볼 바쿠테를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습니다.
유부, 밥, 꽈배기 (유조라 해서 중국 남부 지역에서 아침에 콩국물 찍어 먹는 용도의 빵)는 모두 국물을 흠뻑 흡수시켜서 먹습니다. 국물이 워낙 좋아서 이렇게 먹기 아주 좋습니다.
미트볼은 피쉬볼로 착각할만큼 탄력이 좋고 돼지갈비는 오래 고아서 아주 부드럽습니다. 국물이 정말 시원하고 깊어서 호텔에서 술 마신 후 마시려고 테이크아웃도 했습니다.
5. 코타키나발루 남부 수산시장 해물집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후기가 많은 성천 (Sung Tian)레스토랑을 많이 갑니다만, 한국 사람 안 가는 곳들이 더 현지 맛 그대로라 일부러 수산시장 근처의 한국사람 전혀 없는 집을 들렀습니다. 영어는 다 잘 통하고, 1kg 단위로 판매하지만 게나 새우, 생선 등 비싼 메인을 하나 시키고 나면 나머지는 500g (하프 킬로) 로도 해 줍니다.
꽃게나 소프트쉘 크랩, 새우, 생선 등은 보통 1kg당 50링깃 정도 (약 만삼천원 ) 조개나 오징어 등은 종류에 따라 1kg당 25~50 (약 7천원~만삼천원) 정도라서 생각보다 싼 가격에 이것저것 먹어볼 수 있습니다.
해물의 조리법은 삼발 소스를 쓰거나 튀긴 뒤 볶는 등의 방식들이 논야 요리 방식입니다. 말레이 현지 조리법과 중국식 웍 조리법이 결합되어 아주 맛있습니다.
오징어와 꼴뚜기류도 저렴합니다. 튀겨서 삼발소스에 얼큰히 볶아주거나, 오징어튀김, 숯불구이 등 다양한 요리법이 있고 1kg
고르고 나면 조리법을 선택하는데 가게마다 사진이 여러장 걸려 있어서 사진을 보고 골라도 좋고, 인기 있는 조리법 추천해달라고 해도 좋습니다.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생선 조리법입니다. 생선을 반으로 갈라서 숯불로 굽고 (시간이 꽤 걸립니다) 직접 만든 매콤한 삼발 소스를 발라 한 번 더 구운 것입니다. 담백하고 얼큰하고 숯불 향도 좋아서 아주 즐겁게 먹었습니다. 1kg 짜리 생선이라 50 링깃이었습니다. 원래는 55링깃인데 많이 시켰다고 할인받았습니다.
소프트쉘 크랩입니다. 통째로 튀겨서 나오는데 알이 꽉 차 있어서 바삭바삭하게 먹기 아주 좋았습니다. 이 쪽도 1kg 50 링깃
현지에서 가장 인기있는 새우 조리법은 버터 쉬림프입니다. 버터소스를 흥건하게 하는 타입이 있고 건조하게 튀기듯 한 다음 위에 양파칩 등을 뿌려주는 사진과 같은 방식이 있는데 비주얼은 전자가 더 좋지만 맛은 압도적으로 후자가 좋습니다. 바삭하게 잘 튀겨져서 껍질 깔 필요도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동 말레이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나시 고렝(볶음밥)도 팝니다. 재미있는 것이 계란 후라이를 올려주고 케첩과 쇠고기가 들어가는 나시고랭을 나시고랭 USA라고 부릅니다. 오른쪽의 미훈 고렝 싱가폴은 먹어보지 못해서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