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내딛는 용기의 말과 행동 — ‘괜찮다’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1년 뒤 이 맘 때쯤, 나는 뭘 하고 있을까
오늘 이 순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 꼬락서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럴 때 내가 하는 상상이다.
그때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으로 더 나은 내일이 되길 바란다.
헌데 이것도 내 에너지 역치의 열정과 힘이 있을 때 얘기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덮친 지도 모른 채, 다시 힘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이겨낼 수 있는 ‘선’을 넘겨버리고 만다.
내가 가라앉는다.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었다.
다음이 없는 막연한 휴식을 나는 두려워했다.
계획되지 않고 예측하지 못하는 ‘다음’을 기다리는 것이 내겐 가당찮은 일이었다.
지난 6월 중순.
결국 나는 멈췄다.
처음으로 아무런 ‘다음’ 없이.
뭐, ‘일’이라는 것? 까짓것 하려면 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엔 거기 진심인 나는 없을 거라고. 빈 껍데기만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뿐.
이윽고 격렬한 심정 변화가 나를 멈추게 하였다.
내가,
나라는 인간이,
공중분해 될 것만 같았다.
숨 막히는 처절한 기분이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주 지독하게 ‘모든 것’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
처음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먹고, 자고, 눕고, 멍하니 OTT 서비스를 바라보는 정도?
나름 나의 사회생활은 OTT 드라마를 통해 이뤄졌다.
그 어떤 누구도 만나고 싶지도 않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난 3개월 간 유일한 대인관계는
남편, 가족(시댁과 친정 식구들), 운동 메이트 1인, 단골 카페 직원들 일부가 끝이었다.
간혹 피할 수 없는 연락에는 간결하게 답하였고,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이런 걸 흔히들 ‘번아웃’이라고 말하는 건가? 싶었다.
그래. 그렇게 나는 활활 타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 나의 일에 진심인 누군가라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동요이다.
문제는 다들 너무 열심히인지라, 스스로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그렇게 흘러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타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래서 좀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를 아꼈으면 좋겠다.
이럴 땐 ‘나를 위한’ 수단과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 15가지나 된다.
아무리 해도 노력의 결과가 좋지 않다.
(그래서) 내 앞이 막막하다.
갑작스레 주책맞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할 때 할 때가 있다.
저 인간들을 내가 아작내고 싶다.
나는 언제나 내가 만든 규칙과 모양새로 사회 구성원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자위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시작되는 하루의 회의감이 몰려온다.
출근길 단순히 ‘회사 가기 싫다’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퇴근길 ‘아싸’를 외치면서도 이내 집에서는 들어 눕는다.
더 바빠지고자 애쓴다.
가끔 찾아오는 여백의 시간엔 울컥 무언가 올라온다.
현실을 피하고자 ‘도피처’에 의지한다. (OTT, 무언가의 약, 게임 등 중독성이 있는 무언가)
‘도피처’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가기 싫다. 미치도록.
‘도피처’ 중 뭔가 사라지면 상당히 불안하다.
누군가 건네는 ‘작은 위로’에 숨 막힐 정도로 울음이 터져 나온다.
지금 이 상황을 타계하고 싶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두렵다.
3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괜찮다.
그 시간 동안 나만 아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단어를 감히 사용할 수도 있겠다.
나는 지난주에 나에게 편지 같은 일기를 썼다.
누구에게나 동굴은 필요하다.
가끔은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을 때,
구역질이 날 만큼 세상과 떨어져 있고 싶을 때,
어디선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자기계발과 성공하는 마인드니 뭐니 다 필요 없다.
떨쳐내라.
그냥 흘러가라.
그때를 좀 알아라.
무엇은 흘려보내어 비워보기도 하고,
무엇은 채워 넣기도 하고,
네가 허락하는 것을 해라.
우두커니 가만히 있어도 너는 괜찮다.
너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너의 몸이 일으켜 세워지는 대로,
주저앉고 싶으면 앉아도 괜찮고,
누워버려도 괜찮다.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뤄지는 대로, 내일이 아니어도 그다음 그다음 날 그 언젠가여도 괜찮다.
아니, 안 해도 된다.
하고 싶으면 해라.
그렇게 네가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들어봐라.
그렇게 잘 듣고 알아채면, 언젠가 출구도 보인다.
언젠가 그 문을 열고 싶은 호기심과 용기가 생기게 마련이다.
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인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멀리, 오래갈 것이니, 너를 믿었다.
이젠 누군가 함께 부대끼고, 티격태격하며 일상을 보낼 것이고,
‘목적 있는 삶’을 만들어가는 의지와 설렘이 다시 너를 찾아왔다.
세상 이치가 전부도 없고, 전무도 없더라.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그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아라.
그리고 멋진 시간이었다고 기억해라.
그동안 나의 동굴로 만들어 둔 ‘나의 집’ 이 이제 너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
그간 하루 중에 온전히 처박혀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아도 답답하지 않으리만큼 충분히 안전했다.
평화로웠다.
그리고 이제 나간다.
일상다반사를 마치고 다시 들어왔을 때,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보냈노라’라고 감사와 휴식 그리고 위로가 너는 쓰다듬어 줄 것이다.
활기찬 너의 일상이 그러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