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 없는 말이었는데, 다시 이 말이 믿고 싶어졌다.
우리는 B패션가 님과 일하고 싶습니다.
이 한 줄을 기다렸다.
이어 “한번 해보고 싶다”는 B사의 대표는 포부에 가득한 메시지를 이어갔다.
일본 미국 유럽 태생의 패션 브랜드들의 라이선스 비즈니스 사업의 리더십으로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블랙스완.
내 인생에 예기치 않은 돌발상황들로 점철되었던 올 한 해였다.
이 연재를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마무리될 때쯤엔 새로운 시작의 다짐과 설레는 마음을 쓰고 싶다고,
그렇게 바랬었다.
2024년 9월 중순이 되어서,
현실이 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게 되어 기쁘다.
나는 지난 3개월의 시간 쉼 동안 의외로 많은 것들을 이루고 깨달았다.
왜 내가 대표를 포기하였는지 생각했고,
내게 어떤 공부(독학)가 필요한지 나에게 물었고 독서와 사색에 매진했다.
노트에도 쓰고 나의 모바일에도 저장하며,
언제든 다시 끄집어낼 정보와 지식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다음 이정표의 기준을 세웠고,
목적과 목표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며, 그 설계를 하였다.
사회적인 대인관계는 최소화했다.
이 기간 동안엔 오직 나와 나의 가족 관계만 있었다.
일부 필요에 의해 만나는 사회적 관계를 제외하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것 역시도 지난 3개월 동안 10 통화도 안 되는 횟수였고,
사회적 만남 역시도 10회도 안 되는 수준으로 회상된다.
가끔 남편은 나를 히키코모리 (引き籠もり)라고 불렀다.
외롭다기보다
고요해서 좋았고,
심심하기보다
혼자라서 즐거웠다.
내 마음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뭐든 하면 된다.
때론 안 했거나 못 했더라도, ‘내일 하면 되니까’라고 나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안온한 나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일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고 돈을 벌고 있었기에 심란한 순간도 찾아온다.
꼭 필요한 생필품만 사는 일상이 익숙해졌고,
미래에 대한 심란한 마음이 쳐들어올 때는 뛰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나를 들여다보고 다듬으며,
비우고 채웠다.
다시 〈 근로계약서〉 를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대표로서 갖춰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자기반성 때문이었다.
나는 언젠가 다시 대표를 할 것이다.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내가 대표다’라는 마음가짐과 의지로 일할 수 있는 조직과 사업 환경을 갖춘 회사,
그리고 나를 온전한 대표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오너가 있는 회사.
이 두 가지 조건을 가진 인연과 회사를 찾았다.
사실 6월 중순만 하더라도,
나는 대표라는 직책도 내려놓았고, 좋은 대표님들이 내미는 〈 근로계약서 〉 도 숨 막혔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도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커리어 일생일대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단 한 번도.
나는 늘 〈 다음 〉 을 정하고, 지금의 퇴사를 준비했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 근로계약서〉는 참으로 마음이 편안하다.
더 이상 대표로서 짊어져야 할 돈 앞에 굴복하지 하지 않고, ‘일’을 잘하면 되니까.
나의 워라밸은 언제나 일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물리적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24시간!
일과 일상이 맞물려 돌아가는게 나의 습관이었고, 그것이 단절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일을 통해 내 삶은 풍성해졌고,
일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 내 삶의 중요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일을 통해 경험하는 세상은 나를 계속 새로운 세계와 환경으로 데려다 주었다.
문제 해결 과정이 때론 고단했지만,
무럭무럭 성장하는 생각들과 실행하는 추진력을 갖추면서 나는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고 있었다.
다만 쉴 때와 멈춰야 할 때를 내가 제대로 알지 못했을 뿐이다.
—
나에겐 다 계획이 있다.
인생은 트레이드오프(Trade-off)이다.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다.
다만 나의 미래 계획(내 인생의 목적)이 있다면,
치명적이지 않을 정도이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손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협상의 조건도 아마도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약 15% 낮게 나 스스로를 책정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어쩌면, 그 회사 안에 나보다 역량이 부족하지만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이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숫자에는 다 의미가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그 연봉이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논리적이고 주도면밀한 (?) 나의 계획된 숫자라고 말할 수 있다.
내 개인의 입장에선,
실수령액 기준과 향후 내가 대표라는 궤도에 오르기까지 목표로 삼은 기간 대비 연봉 상승률 % 을 추론했다.
회사 입장에선,
한 명을 고용하면서, 회사가 감당해야 하는 맨먼스(Man/Month)라는 비용을 먼저 계산했다.
그리고 〈 신규 사업 〉인 만큼 예산 항목 중 ‘인건비’에서 내가 차지하는 비중과 추후 채용 인력을 고려한 합리적인 선을 지켰다.
대신 ‘일’을 쾌적하고(?) 원활하게 잘할 수 있는 조건들만 요청했다.
맥북과 아이패드 지원과 도서(서적 분야 관련 없이 모두) 지원이 대표적이다.
새로 시작할 회사와 대표님과의 인연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대표님은,
나를 아주 당차고 거침이 없으며 자신감 가득한 눈빛과 넘치는 에너지가 인상적이었던 사람으로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이후 나는 직장을 옮기거나 직무가 변경될 때 마다, 안부와 인사를 나누는 정도로 인연을 이어갔다.
나 역시 대표님에 대한 인상이 좋았기 때문이다.
일의 인연이라는 것이 그렇다.
적을 기억하기 보다,
비록 이해관계로 시작될지언정,
가슴에 남는 인연들은 되새김하며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래가 지금의 현재를 가져왔다.
지나고 나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노잉’ 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노잉’에 대한 한 줄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마치 미리 겪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알고 있는 상태.
사실 이 책은 너무 말 같지 않은 자기 개발서 중 하나였다.
좋았던 것은 책의 사이즈와 무게, 그리고 글자의 크기와 간격?
잠깐 노잉을 좀 더 얘기하고 넘어가자면,
시간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그것을 경험한 예시들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즉 우리는 시간을 과거 → 현재 → 미래로 생각하지만,
때론 미래의 시간이 현재를 불러오기도 한다는 의미이다.
막연히 쉴 때 이 책의 행간을 읽자니, 참으로 터무니없었다.
노잉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떠오른 지금,
이 단어를 쓰고자, 책을 다시 들여다봤다.
신기하게 그 때는 어이 없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진짜 이렇다고? 라며 희열을 느꼈다.
그 당시 대표님이 사업 상 고군분투하셨던 사안을 내가 소상히 잘 알고 있던 터라,
그것이 성사되었을 때 내게 전화를 주신 적이 있었다.
성사된 배경과 과정,
그리고 다음을 함께 도모하게 될 멤버들의 얘기까지.
그중 특정 인물과 역할을 들었을 때,
‘내가 지금 여기 있지 않았으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텐데’ 라며 잠시 잠깐 그 자리에서 근사했을지 모르는 내 모습이 번뜩이듯 스쳤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내가 전화를 받았던 장소, 날씨, 공기, 생각들 모두.
나는 대표를 사임하고, 휴식을 앞둘 때,
내 소식과 안부를 일부 특정 사람들에게 전했었다. 약 3명 정도에게.
그중 한 명이 여기 대표님이었다.
지금은 그 회사의 주요한 멤버들과 입사 전 티 타임을 하러 가는 길이다.
서로가 합의해야 할 조건과 기준들은 전주에 마무리가 되었다.
대표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제 3.0 버전을 이끌어 나갈 리더십들 간의 티 티임 정도로 먼저 인사를 서로 나누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이미 내가 아는 친구도 있고,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다.
이 날은 비가 왔다.
그리고 곧 추석 연휴를 앞둔 금요일이다.
모두 나를 반겨주었고,
그들과 다른 길과 결을 가진 나에 대한 기대의 눈빛을 보았다.
나는 다가오는 9월 23일 월요일,
그렇게 그들과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예정이다.
이전 연재에 나는 시절인연을 언급했다.
그곳과 인연 역시 다시 일어날 일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또한 재도전한다면,
내가 가져야 할 태도와 사업 전개 방향과 역량 그리고 그 견해를 오너와 일치할 수 있는 지혜로운 설득의 능력 등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했었다.
시간은 많은 것들을 변하게 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듯 누군가도 그런 듯하다.
사람도 변하게 하고, 상황도 변하게 한다.
그래서 타이밍, 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또한 절대적이 없다는 것 역시도 시간의 흐름이 증명한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다르거나 틀릴 수 있는 것들 말이다.
그렇게 나는 재회를 통해 변했고,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의 다짐을 다독이고,
그대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시절인연을 같이 나누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노잉이 믿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살아보겠다고 결정했다.
여유와 쉼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이 뭔지를 고민했고 충실했다.
그동안은 ‘최선’은 누구나 당연히 하는 것이고,
‘최고’만 필요했다.
어쩌면 인생은 항상 준비하는 시간이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윽고
기회가 왔고,
‘느낌’이라는 것이 왔다.
노잉의 말처럼 말이다.
멋진 싱크로니티가 찾아올 조짐이고, 나는 용기를 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무게와 속도가 몰아칠 수도 있다.
걱정보다는 기대를 할 때이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흐름 속에 나를 맡기고,
온전히 ‘일’이라는 것이 절실하게 하고 싶다.
그 사이 나도 모르게 새로운 세계에 내가 도착해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