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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Dec 06. 2022

구로동 주식클럽 :  3화

“나도 이제 부자가 되는 건가?”


사람들은 전문의라고 하면 돈이 많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부자곰은 달랐다. 2013년 부자곰은 의대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전문의가 되었다.



‘이제 나도 드디어 부자가 되는 건가? 전문의들은 돈 잘 번다고 하던데 외제 차도 살 수 있겠지?’



부자곰은 전문의 자격증을 담은 액자를 조심스럽게 닦으며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당시 부자곰은 대학병원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펠로 과정을 밟고 있었다.


펠로란 임상강사로 간단히 말하면 아직 교수가 되지 못한 미생을 말한다. 임상강사가 끝나면 바로 교수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 펠로 과정을 평균 3년 정도 버티면 진료조교수로 발령이 난다. 하지만 모두가 진료조교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 7 대 1, 서울대병원이나 아산병원은 15 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애초에 펠로가 되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문의 중에서도 무척 똑똑하고 열정적인 소수만이 펠로가 될 수 있었다. 즉, 전국의 전교 1등이 모이는 의대에서 6년 내내 상위권 성적을 내고 인턴, 레지던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상위 5퍼센트만이 펠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펠로는 출발점일 뿐 논문, 학생 교육, 과내 행정 업무, 정부 지원 과제, 교수님 뒤치다꺼리 등 온갖 잡무를 완벽하게 해내야만 진료조교수로 추천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진료조교수 열 명 중 한 명 정도만 정규직인 전임조교수로 승진할 수 있었다. 전임조교수가 되면 비로소 대학병원의 식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끝이냐고? 절대 아니다. 부교수, 정교수, 종신교수가 되기 위한 끝없는 경쟁이 기다렸다. 퇴근, 워라밸 같은 속 편한 소리를 하다간 애초에 펠로 방 문턱도 넘지 못했다. 병원에서 평생 하루 세 끼를 먹을 각오로 시작해야 대학병원 교수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펠로 월급이 고작 세후 330만 원 정도라는 것이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30대 중반의 의사, 그것도 전문의가 기대하는 액수는 아니었다.


더구나 부자곰의 부모님은 노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의사 아들이 곧 부자가 되어 자신들을 호강시켜줄 것이라는 꿈에 부푼 상태였다. 부산의 17평짜리 아파트 한 채가 부모님의 전 재산이었고 부자곰이 매달 보내주는 200만 원이 그들의 유일한 수입이었다. 월급 330만 원에서 부모님 생활비 200만 원, 오피스텔 월세 70만 원을 제하고 공과금, 휴대폰 요금, 식비 등을 빼면 부자곰의 통장은 매달 적자였다.


물론 펠로를 때려치우고 페이닥터로 취직하면 매달 1100만 원 정도를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석사, 박사 학위에 바친 세월과 그동안 쓴 논문이 너무나 아까웠다. 월급이 잠깐 스친 계좌를 보고 허탈해질 때마다 부자곰은 ‘내가 고작 월급쟁이 의사가 되려고 박사까지 땄나? 이 악물고 버텨 교수가 되어야지. 짧은 가운 입고 학생들 가르치고 존경도 받는 게 내 꿈이다!’라고 생각했다.


오피스텔 보증금 1000만 원을 빼고 부자곰의 수중에 있는 돈은 은행 계좌에 있는 640만 원뿐이었다. 펠로에서 진료조교수가 되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진료조교수의 월급은 450만 원 정도였고 최소한 전임조교수 정도까지는 올라가야 700만 원 이상의 기본급이 보장되었다.


문제는 펠로에서 전임조교수까지 승진하는 데 몇 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전체 펠로 중 2퍼센트 정도만이 전임조교수 자리에 도달했다. 부자곰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으로 버티며 주 7일, 매주 100시간 가까이 쏟아부은 노력이 전부 헛수고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시달렸다.





***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학병원 의사는 집 열쇠, 차 열쇠를 받고 결혼한다는 전설이 있었다. 하지만 부자곰이 펠로로 일했던 2015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자들은 괜히 부자가 된 게 아니었다. 30대 중반에 통장 잔고는 640만 원인 백 없는 의사에게 귀한 딸과 아파트 열쇠를 줄 호구는 없었다.


‘최소한 서울 아파트 전세 구할 돈은 있어야 결혼을 할 텐데.’


한숨만 푹푹 쉬던 부자곰에게 운명처럼 아니,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은 메세지가 왔다.


‘선생님. 저 M제약 서 부장입니다. 지난번 학회 발표 감사했습니다. 저희 한 상무님께서 한 번 뵙고 싶다고 하시는데 식사 자리에 모셔도 되겠습니까?’


M제약 상무씩이나 되는 사람이 왜 일개 펠로를 만나고 싶다는 것일까? 펠로에게는 약 주문 권한이 없었다. 부자곰은 대학병원에 적을 둔 사람이 제약회사 임원과 사적인 자리를 갖는 것이 찝찝했다.


‘식사는 좀 그렇습니다. 저는 제약회사 분들과 따로 식사하지 않아서요. 마음은 고맙습니다만….’


‘저희 상무님께서 꼭 한 번 뵙고 싶어 하십니다.’


혹시 소개팅 주선인가 싶었던 부자곰은 결국 긍정적인 답을 보냈다.


‘병원 외래로 한 번 찾아오시죠. 잠깐 뵙는 것은 가능합니다.’


여자친구도 없는데 괜찮은 사람을 소개해준다면 마다할 것 없겠지 싶었다. 하지만 부자곰이 근무하는 병원에 찾아온 한 상무는 전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제가 자회사를 따로 하나 설립하려고 하는데 선생님을 거기 자문의사 겸 사외이사로 모시고 싶습니다.”


교수도 아닌 부자곰을 왜 모시고 싶다는 것일까? 평소라면 단박에 거절했을 테지만 불안한 미래, 성공에 대한 집착이 부자곰의 눈을 흐렸다. 사실 평생 진료만 하고 방에 틀어박혀 논문만 쓰던 의사가 사회생활 만렙인 제약회사 임원과 20분 이상 대화를 허용했다는 것 자체가 다 끝난 게임이었다. 선생님 논문이 너무 훌륭하시고 이번에 낸 저널은 임팩트 팩터 10점이 넘고 과장님께 얼핏 듣기로 다음 번 진료 조교수는 박 선생님이 거의 내정되었다고 하던데 어쩌고 저쩌고….


“저희가 한 템포 빠르게 미리 스카우트랄지 제의를 드리는


거지요.”


부자곰은 한 상무의 말이 폭신한 무지갯빛 거품에 쌓인 독이라는 것을 뻔히 알았다. 그런데 미사여구가 덕지덕지 붙은 그 말이 어쩜 이리도 달콤하게 들리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 제가 어떤 역할을 하길 원하시는지….”


 


“우선 제가 설립할 자회사 장외주식을 좀 사시죠. 많이는 필요 없고 1억 원 정도면 됩니다.”




1억 원이 누구 집 개 이름인가?


“죄송하지만 전 그런 돈이 없습니다. 펠로 월급이 뻔해서…. 그리고 있다고 해도 1억 원이나 갑자기 장외주식에 투자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삼성전자 주식도 사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요.”


부자곰의 솔직한 대답에 한 상무가 허허, 너털웃음을 짓고 말했다.


“박 교수님께서 연구에만 몰두하시다 보니 이런 일을 잘 모르시나 보네요. 더 존경스럽습니다. 아무 걱정 마세요! 귀찮고 자질구레한 일은 저희가 다 해드릴 겁니다. 그리고 이건 사실 비밀인데… 서 부장, 잠깐 박 교수님과 둘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서 부장은 잠자코 목례를 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한 상무는 부자곰 쪽으로 의자를 당겼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저희 자회사 내년에는 코스닥에 상장합니다. 물론 제가 대표가 되고요. 장외주식 1억 원 사두시면 최소 20억 원은 가실 겁니다.”


20억 원. 그 돈이면 부자곰의 모든 걱정과 불안을 해결할 수 있었다. 2015년 압구정현대아파트 시세는 15억~17억 원 정도였다. 20억 원이면 강남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와 포르쉐를 사고도 남았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부자곰이 평생 간절히 기다려온 신분 상승의 기회가 아닐까?


“솔깃한 말씀이네요. 그런데 정말로 제가 현재는 여유자금이 전혀 없습니다.”


“에이, 설마요. 박 교수님 같은 분이요?”


“네,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습니다.”


“정말로요?”


“네, 저도 너무 아쉽네요.”


부자곰의 대답을 듣고 한 상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한 상무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교수님, 혹시 전문의 대출 받아보셨습니까? 1억 5000만 원까지는 나오실 텐데요.”




부자곰이 침을 꿀꺽 삼켰다.





***





“상처받은 개미들이여, 구주 클럽으로 오라!”


하이퍼리얼리즘 투자 픽션


<구로동 주식 클럽>



박종석 지음


12월 14일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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