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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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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Sep 09. 2019

< 나의 보리 >

epi. 45 추억은 방울방울






오래전.

한때 어딜 가나 묵직한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고 다녔을 정도로

폴라로이드 사진에 빠져있었다.


요즘은 핸드폰 카메라에 익숙해졌지만

폴라로이드를 애정 하던 짧지 않은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잠시 그 시절을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방 정리를 하는데.

오래된 짐을 담아놓은 박스 안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첩을 발견하였다.

무려 5권이나.

그중 나의 보리의 타이틀을 달고 있던 민트색 사진첩.


반가웠다.

어디~오랜만에 한번 봐볼까~


하고 펼친

제법 묵직한

사진첩에선


과거의 모습들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손으로 만진 사진의 느낌은 다정했고.


그중에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밥을 잘 챙겨주자> 사진.


이 사진을 보니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때는

나의 보리가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베이비 보리의 시절.

잠귀가 밝은 나는

한밤중에 들려온 얌얌얌 짭짭짭

소리에,

잠에서 깼다.


깜깜한 방 안에서 움직이던 더욱 검던 그림자.

이것은 꿈은 아닌 것 같은데.....


불을켜보니

가히 충격적인 모습이

눈앞에 뙇.


베이비 보리는

자기의 똥을 야심차게 먹고 있었는데


나는 이전에도 오랜 시간 함께한 반려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충격적인 모습에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잠에서 덜 깨었던 탔인지, 습관이었는지.

머리맡에 있던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나의 보리의 똥을 찍어두었고,


다음날 아침

온전히 찍혀있던 똥 사진을 보고 새벽의 사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잠귀가 밝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잠귀가 어두운 편이었고.


그 시절의 나의 보리는 새벽마다

맛있는 브라우니를 먹는 것 마냥, 맛있는 브라우니. 맛브 타임을 갖었던 것.

그렇게 무려 자기의 똥을 먹던 베이비였다.


잠에서 깨어 온전한 정신으로 마주한 어쩌다 마주하게 된 이 장면은

내게 다짐 같은걸 하게 했던 사진이었다.


<밥을 단디 챙겨주자> 하고..







그다음으로 눈에 띈

사진은

<새우 보리> 하고 쓰여 있던 이 사진.




나의 보리가 소년이었을 무렵.

하루 종일 장난하며 발랄하게 뛰어놀던

건강한 소년의 시절의 기억이다.


그 무렵의 나의 보리는

하루가 꽉 차도록 뛰고 또 뛰어도

다시 뛰고 싶은 소년이었다.


날이 아직 다 풀리지 않았던 초봄

우리 가족 모두와 함께 여행을 갔던 해.


공 바라기인 소년 보리는

내가 던지는 족족 빠르게 달려가 물고 다시 컴백했다.

시시하게 던지지 말고 제대로 한번 던져보라는 나의 보리의 표정을 읽은 나는

제법 세게 던졌는데

내 팔이 휜 것인지.


글쎄 그 공이

바다로 떨어졌는데,,

아직 날이 다 풀리지 전인 제법 쌀쌀한 바다를 향해

사실

그 당시 바다가 무엇인지 알턱이 없는 소년 보리는

그대로 청벙~첨벙 하고 바다로 돌진.

바다는 일렁이는 땅이 아닌데 말이야..


기세좋게 첨벙첨벙

그렇죠.. 춥죠..

물이 많이 찰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찬 바다 안으로 기세 좋게 돌진하던 소년 보리는

추위에 새우등을 하곤 그대로  온몸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온몸으로 찬 바다에 빠져 매우 춥다! 는 제스처를 뽐내던 소년.


볼 때마다 웃길 거 같다

오케이. 찍어두자.

찰칵.

일렁이는 길 위에서

<새우 보리>





그리고 새우 보리 옆에 자리한.

기억할만한

<shiny>한 사진.

나의 보리 청년시절의 기억.

샤이니.

꽃 피어나던 봄 춘.

꽃피던 나의 보리의 청춘.


지금은 뚱뚱하지만.

나의 보리에게는 모델보다 아름답던 시절이 있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노랫소리가 어딜 가든 귓가를 맴돌던 그때.


당시

보리는 모질 이 아주 좋아 털을 길러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미용사 언니의 말을 계기로.

코카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지속적으로 미용을 하던 나의 보리였다.

등은 밀고 어깨 밑으로 쭉 기르는 조금은 과한 스타일.


그 결과 청년 보리는 책에서 보던, 구글 창에 나올법한 외형의

바로 그 코카스파니엘이었다.

어딜 가나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어딜 가든 예쁘고 멋있다는 말을 들어 그 말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저기.... 본인한테 하는 말이 아닌데요..

불구하고! 와따시의 콧대가 높았던 시절.


아리따운 외모에

온 빌라를 울리게 하는 우렁찬 목소리.

거친 숨결과 사나운 눈빛.흔들리던 심장  

도도함의 피크를 찍던 시절이었다.


"우리 그렇게나 재수 없었다 그치?~~"



z~z

여기 이곳

현실엔 마음 편한 후덕한 아재가 내 무릎을 베고 잠을 자고 있다.


z~z

지금

장년을 지나 아마도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는 나의 보리.


근데 어쩜. 날이 갈수록

솜 인형 같은 수 있지.

폭신폭신한 솜 인형 같은 아이.


안 좋아하던 때가 없었지만.

지금의 후덕한 나의 보리가 제일 좋다.


지금의 나의 보리의 아우라 안에는

이제껏 없었던 편안함과 폭신함 그리고 업그레이드 버전 따뜻함이 있다.



아무나 낼 수 없는 업그레이드 버젼 따뜻한 아우라란

가령 이런 것이다.

내 옆에서 자고 있던 나의 보리는

턱을 내 머리 위로 가져다 댄다.


단지 내 이마 위에 턱을 놓았을 뿐인데.

오 마이 갓.워메~

뭡니까 이 턱!?

당신의 턱밑은 왜 이렇게  따뜻합니까..


어디로 빨려 드는 줄 모르게 마음 탁~놓고 잠들게 하는 능력.

그런 것.

앨범 밖의 현실의 지금 나의 보리는 베이비도, 에너자이져도, 모델도 아니다.



내 머리맡에는,

등에는 평생 낫지 않을 피붓병이 있고 갑상선이 좋지 않아 신경질 자주 내고

코도 심하게 고는 퉁퉁한 노년의 개가 있을 뿐이다.


저 말들을 다시 말하면.

지금 내 머리맡에는

이제는 정말로 친구가 된 나의 친구가 있을 뿐이다.








_나의 베스트 프렌드.








추신_ 끝내기 아쉬운 앨범 안의 사이드 컷들.


<안 먹은 척! 매실 2개 어디 갔니>


스릴을 알게 된 날.




함박눈 오는 날의 나의 보리

엘샤가 부릅니다.

<레릿고~~~>






귀차니즘이 다시금 찾아와..

<목욕을 안 했더니 꼬수운 내가 난다.>


빅 발견.






앨범의 마지막 장의 마지막 사진은

나~즈벵~냐~~~

지~하바~~

<라이온 킹>


내가 왕이다.멍멍






예상치 못한 사진첩의 발견은 늘 즐겁다.


베이비 보리.

소년 보리.

청년 보리.

추억은 방울방울 합니다.








_내 친김에 아이클라우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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