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도 여행기_첫날 새벽 산책
2020年 2月 17日
새벽 산책
새벽 5시. 알람이 울렸다.
잠들기 전, 새벽 일정에 맞춰 일어나겠다고 호언장담 했지만,
일어나기 쉽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며 잠들었는데,
역시 눈이 떠지지 않았다.
이거 뭐야,..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방안의 환한 불은 ‘너는 오늘의 잠을 다 잤으니 어서 일어나!라고 말하고 있는 듯, 환했다.
새벽은 잠을 더 원하게 하는 시간.
나는 얼마든지 방의 환한 불정도는 개의치 않고 다시 잠들 수 있으나.
문득
아 맞다. 여기 인도지
나 여행 왔지!
하는 현실감에 눈이 뿅 하고 떠졌다. 갑자기 또렷하게.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가 1초 만에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새벽 산책에 가야지!’
나가지 말라고 말하는 따뜻한 이불을 박차고 침대를 벗어났다.
준비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세면은 생략해 버리고
추울 수도 있다는 어제의 주의를 떠올려 로브 하나를 더 걸쳤다.
그리고 바나나를 챙겨 방에서 나왔다.
준비를 마치고 나온 혜영언니의 웃는 얼굴을 보니
새삼 이곳이 집도 한국도 아니라는 실감이 더해졌던 것 같다.
밖은 어떤 모습 일까.
설레어 설레어
자고 일어나 보니 이게 어제의 실감과 설렘은 설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연다.
아직 깜깜한 시간.
축축하지만 맑은 공기가 코로 들어왔다.
아직 꽃잎을 닫고 있지만 싱그러울 예정인 꽃들과 풀들이
내뿜는 공기일 것이라 생각하며
난생처음 공기를 들이마시는 듯. 새벽의 공기를 코 입으로 후-하거리고 있자니
여행지의 기대감은 공기마저 달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야가 멀리서 보인다.
“자야 굿모닝~~!””
좀 더 활기차게 인사를 하게 만든다.
“지오도 굿모닝~”
사람을 밝게 만든다.
바나나를 의자 손잡이에 걸었다.
모두들 굿모닝_
오늘 새벽 산책의 목적은 , 목적이 없는 산책이었다. 자야와 하는 여행에 목적이란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 목적이 있다 한다면, 이번 여행 안에선 웬만하면 새벽 5시 기상하는 데에 습관을 들이라는 정도의 메시지가 있는
여행의 몸풀기 정도의 일정이었다.
운 좋으면 야생동물(코끼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야는 우리가 가는 길 위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화장실을 미리 갔다 오라는 말을 했다.
나는 한 귀로 흘렸다.
쉬 안 마려운걸_
그렇게 모인 새벽 버스 안에는
일행의 네 명 정도 빼고는 대부분이 참석해 있어 북적였다.
여행 멤버들은 아무래도 부지런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내 마음 한편으로는 소그룹을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모르겠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 마음 한쪽이 안심되고 의지되고 포근했지만,
사실 나는 단체여행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여행을 다니면 혼자이거나 많으면 둘셋이었지 이런 북적이는 여행은 처음이었고 처음인 만큼 여럿이 모이는 느낌이 익숙지 않았다.
그래 익숙하지 않을 뿐이야.
혼자 다니는 여행도 좋지만 , 이렇게 여럿이 다니는 여행도 분명 재밌을 거야_ 생각했다.
자야는 출발 전 한마디를 더 했다.
혹시나 기대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늘 산책할 구간은 사람 보도가 통제되어있고, 그만큼 야생동물이 많이 다니는 길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건기이고, 대다수의 동물들은 이미 물을 찾아 숲 속 안쪽 깊은 곳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보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자야는 설명했다.
나는 이곳에서 동물을 보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이런 일은 기대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렇게 타지에서 새벽부터 움직이는 것 자체가 좋았기에 뭐든 상관없었다.
지오는 시동을 걸었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어제 들어왔던 어두운 길로 다시 나갔다.
검던 하늘은 점점 검푸른 빛이 도는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보랏빛 하늘 밑에 커다란 나무의 모습이 마치 멋진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나무의 선을 유리창 위로 따라 그려본다.
언젠가
나는 나무를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차는 덜컹덜컹 심하게 요동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지오는 깜깜한데서 잘도 사슴, 야생닭 등등 숨어있는 동물들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제때 포착하지 못했고,
파스슥 흔들리는 풀더미나 나무들을 볼뿐이었다.
_쉽게 보여주지 않는구나.
버스는 간이 검문대 봉 앞에 멈춰 섰다. 길은 수동 차단기로 막혀 있었다.
이용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6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했다.
인도는, 이곳 케랄라주는 산을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이든 차든 길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보통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 정도 사람이 차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손 안에서 기울어진 핸드폰에 am 5:55 화면이 나타났을 때 지오와 자야는 잠시 버스에서 내렸고
함께 따라 내렸다.
검문대 주변만 켜져 있는 깜빡거리는 백열등 빛 아래로 사내들이 의자에 발을 기대고 늘어져 앉아 있었다.
백열등 아래만 빛이 있을 뿐 사방은 아직 어두웠다.
그들은 하나같이 간편하고 시원해 보이는 긴 면을 허리에서 두르고 있었다.
저 옷 뭐지.
그 수건 같은 치마는 , 면으로 보였고
바람도 잘 통하고 땀도 안찰 것 같았다.
이나라 날씨에 안성맞춤인 차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_편해 보이는 걸. 나도 저렇게 입고 싶다.
남자들이 두르고 있는 치마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자야 옆으로 갔다가
자야가 보고 있는 대형 간판으로 시선이 옮겨 갔다.
대형 간판 위에는
다큐 혹은 과학서적 안에서 볼 수 있을법한
부리가 커다란 새가 그려져 있었다.
이 새의 이름은
great indian hornbill. ‘큰 코뿔새’.
이곳 말인 말라얄람 어로는 vezhambal.
케랄라 주를 대표하는 새로
주를 대표할 수 있을 만큼 케랄라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던 새였다고 한다.
하지만 환경오염으로 인해 멸종위기를 맞았고, 개체수가 줄어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다.
대형 간판은 그 말을 하고 있었다.
큰 코뿔새를 통해 우리 모두 환경 보호해야 한다고. 더 잃어서는 우리 모두가, 지구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임을 말하고 있었다.
큰 코뿔새 그림에서 나는 허전함이 느꼈다.
_
빵빵
헤이 보람
길을 지나가도 좋은 모양이었다. 가드들이 차 앞의 가로막을 열어 주었다.
다시 구불구불한 길 위를 지나가며 이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다녔을 동물들을 상상해 보게 된다.
새벽녘, 이동하는 코끼리 무리
발자국이 울려 퍼지는 땅의 진동.
낮잠에 빠진 맹수들.
천천히 흐르는 늘어진 한낮의 시간.
자동차 소리나 총소리에 놀랄 일 없이 어디에도 묶이지 않은 또 다른 동물 가족들.
그들 답게 살아가고 있는 숲의 모습을, 사육되지 않는 숲의 모습을.
사람만 살고있지 않는 그런 모습들을 그려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들이 책 속에서 보던 동화 이미지 같이 예쁘지만 현실감 없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그 많은 동물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얼마나, 사람만이 당연한 듯 살아가고 있는 이상한 세상에 나는 살아가고 있는지.
모든 상황을 ‘멸종’이란 말로 설명하기에 그 말은 죄책감도 미안함도 느끼기 힘들며, 가볍다. 심지어 단어 자체는 심플한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내가 사는 곳. 서울은 삼엄하게 통제되지 않는다. 통제하지 않아도 동물이 설곳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아주 일부의 산만 통제되고 관리된다. 원하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있다.
사람에게 위험이 되는 존재는 오로지 사람이지 야생동물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평소 생활에서 야생동물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고라니 로드킬 정도.
산에는 사람 말고도 다른 동물들이 살고 있을 터였다.
어디로 갔을까.
인간이면서 이런 의문은 너무도 뻔뻔하다.
뻔뻔하게.
그러나 깊게 생각해 보지 않는.
그리고 생각 없이 살던 데로 사는 것.
당연한듯한 무심함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에 대해 느끼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일인 것이다. 사람만 사는 게 맞는 일 일리 없다.
우리는 늦었지만 지금이라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게 법을 배우는 데에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게 맞는 일일 것이다.
어떻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물음에 가슴속에 물방울 한 방울 툭
하고 떨어지면서 마음의 진동이 느껴졌다.
물결이 생기고 흔들린다.
마음속 파동에
울렁거려 침을 크게 삼켜야 했다
_
어느새 하늘은 짙은 핑크빛으로 물들더니 오렌지 빛을 더하고 있었다.
황홀한 해의 빛이 숲에 더해지고 있는 이 광경은
숲이 내뿜는 이른 아침의 안개가 태양이 완전하 떠오르기 전 숲이 내쉬는 깊은숨과 같이 느껴졌다.
능선 아래로, 모든 종류의 색이 서로 섞어 놓은 듯이 풍부한 숲의 색을 하고 있어서
어째서 이렇게도 멋진 색을 하고 있는 거냐며 혼자 속으로 감탄의 감탄을 거듭했다.
그러다
코끼리 똥과 마주하게 된다.
위를 향해 한참을 올라가던 버스가 멈춰 섰다.
거대한 녹색 경단 같이 보였다.
지오는 왜 차를 세운 걸까. 자 코끼리 대신 코끼리 똥입니다. 하고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코끼리들은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한 새벽보다 더 깊은 새벽에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실제 코끼리를 보면 아마 난 제일 좋아하겠지만, 지금 당장 보지 못해도 정말로 코끼리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코끼리가 살아가는 숲 안에 있다는 현실감이 더 중요했다.
지오가 운전하는 버스는 흙 밟듯 똥을 밟고 지나갔다.
나는 바퀴아래 깔린 똥을 상상했다.
조금 더 올라 차는 다시 정차했다.
사람이 맘대로 걸어 다니거나 행동할 수 없는 지역이었지만 걷는 게 아니니 잠시 내려서 쉬었다 가기로 한 것이다.
내내 차를 타고 있어서인지
땅을 밟자마자
기지개를 켰고, 기지개인지 요가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자세들을 하고 있었다.
서로를 보고 웃다가 다시 앞에 펼쳐진 장관을 보고 웃기를 반복했다.
모두가 공통되게 요가 안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 멀리서 건강함을 내뿜는 나무 한그루가 눈 안에 들어온다.
커다란 나무 가까이로 다가가
나무를 올려다본다.
가까이에서 올려다본 나무의 안쪽면은 멀리서 보는 것보다 잔가지와 나뭇잎이 무성했고
건강함이 느껴졌다.
나무를 만지고 있으면 어딘지 응원받는 기분이 든다.
등산하다가 힘들어 잠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으면 힘이 충전되기도 하니까.
이런 얘기를 동생에게 하면 이상한 얘기 한다고 질색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나무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강력한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 멀리에서 경아 선생님과 은샘이
나무와 나를 찍어주었다.
사진 속 나는 부스스한 머리에 나무 앞에서 빙구같이 웃고 있다.
나는 이사진이 좋았다.
함께 여행하니까 서로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구나.
단체여행의 장점또하나 발견.
나무 안녕
그렇게 새벽 산책이. 버스 산책이 끝났다.
_
숙소에 도착하고 보니 아침 8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배가 고팠고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리조트 안은 이미 음식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새벽 일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분들과 영미 선생님은 이미 식사가 끝날 무렵이었고,
영미쌤은 정말로 코끼리 똥만 보고 온 거냐며 그럴 줄 알았다고 크게 깔깔거리고 웃었다.
해가 반짝 뜬 리조트는 꽃마다 코코넛 이파리마다 빛났다.
무엇보다 리조트 식당에 준비된 조식은
처음 보는 음식들로 더욱 빛나고 있음이었다.
우와
뭐가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 보고 하나하나 알고 싶었지만
배고파 급해진 마음에,
접시 하나안에 모든종류의 음식을 다 담았다.
이곳에서 아침메뉴는 알고 보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 주로 발효시킨 쌀을 쪄서 만든 ‘이들리’라는 빵과
그와 함께 곁들여 야채 스튜 같은 삼바르, 코코넛 처트니를 먹는다 한다.
가득 담아서
이들리는 쌀로 만들어 그런지,
발효시킨 만큼 살짝 시큼한 맛이 났지만
마치 우리네 백설기 같지만,백설기보다는 찰기가 적은 , 그래도 익숙한 맛이었다.
굿.
향신료와 야채를 함께 끓여 만드는 수프의 일종인 삼바르도 이거 좀 아는 맛이었다.
내가 이거 어디서 먹어봤더라...
몇 번을 더 찍어 혀끝으로 찹찹 느껴본다.
아.
이 맛은, 집에서 엄마가 가끔 다이어트할 때 야채만 끓여 만들어 주던 건강 수프. 거기에 약간의 매콤한 향신료들이 더해져 낯설지만 익숙한 맛이었다. 막힘없이 술렁술렁 잘 넘어간다. 맛있어.
쳐트니는 코코넛을 갈아서 마늘과 몇 가지 향신료와 함께 버무린 것이라는데 이건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고소하게 섬섬하니, 아침메뉴로 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셋은 삼합이다.
이곳의 아침메뉴는 처음이지만 처음인 것 같지 않은 맛으로 입맛에 딱이었고
나는 몇 번이고 리필해서 먹었다.
여기선 나비 저기선 냥이라 불리는 동네 고양이를 마주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를 거 같지 않던 이들리였지만, 내 배는 빵빵해져 있었고
아주 알맞은 타이밍에 홀 직원이 따뜻한 짜이를 가져다주었다.
짜야.
ㄸ.. 땡큐
버블 위로 달콤한 우유가 흘러내리듯, 이들리 삼바르 쳐트니로 빵빵해진 위 사이사이로 짜이가 스며든다.
완벽해.
완벽한 아침식사였다.
이곳의 음식들이 한걸음 더 궁금해졌다.
가능한 한 다양하게 먹어보고 싶다.
그리고 짜이 한 모금 마시던 순간, 알았다.
이곳에 있으면서 나는 앞으로 엄청나게 많은 짜이를 마시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아직 시원한 공기는 서서히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었고 햇볕은 빛났고 나무와 꽃은 벌써 일어나 있었지만
나는 배가 부르니 다시 졸려지고 있었다.
_ 버스에 걸어둔 바나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