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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Feb 24. 2024

구름 뒤에 가려진 것

얼마 전 찾아온 우수를 전후로 비가 내린 요즘입니다. 입춘이 지났어도 아직 겨울인 것은 마찬가지라 밤이면 내려가는 기온 탓에 비가 눈으로 바뀌어 하루아침 사이 눈이 쌓이는 일도 있었어요. 게다가 한동안 흐린 날의 연속이라는 일기예보가 있고요. 매달 보름달이 뜨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저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하늘을 가득 메울 구름에 가려질 보름달 때문입니다.


반면, 일부러 보이지 않도록 가려둔 채 지내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대부분 지금 당장 마주하지 않아서 편안한 것일 테죠. 알 수 없는 나의 미래, 가까운 이와 있었던 어긋난 일, 부정적으로 꼬리를 무는 생각... 뭐 이런 것들 말입니다. 분명 언젠가는 파헤쳐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우선 덮어두게 되는 건 왜일까요? 미뤄둔 채 지내면 일단 마음이 편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정말 이렇게 지내도 괜찮을까요? 미뤄두면 문제가 해결이라도 된 것인 양 잊고 지낼 수 있다고 한들 다시 비슷한 상황이 찾아오면 그 문제는 불쑥 고개를 들고 내 곁에 줄곧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죠. 말 그래도 정말 미뤄둔 것일 뿐이지 해결된 것은 아니니까요.


이제 제 미뤄둔 문제를 말해보려고 해요. 저에게 그것은 불안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문제를 여태 쭉 외면해 온 탓에 이따금씩 제게 날아드는 이 감정이 불안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으면 초조한 마음이 들어 밖으로 어디로든 돌아다니던 일,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이 해소되지 않아 하릴없이 다른 이와 전화로 수다를 떨던 일,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내가 싫어 쉼 없이 자기만의 방을 찾아 헤매던 일... 이 모든 것이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는 불안한 사람이에요. 형용사로 저를 소개하라고 한다면, 불안한 최은영이라는 이름표를 자처해 적을 만큼 지금의 나에게 적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예요. 스스로 불안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기분이 어떻냐고요? 물론 유쾌하지는 않죠. 자기소개에 부정적인 단어를 피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런 식의 고백은 불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당당하게 저를 불안한 사람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있는 그대로 나를 직면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구름 뒤에 가려져 있다고 해도 언젠가 구름은 걷히기 마련입니다. 사실 구름 사이에 보름달의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어요. 단지 가려져 있을 뿐이지 없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처럼 불안한 나 역시 불안을 감추기 위해 있는 것을 없는 셈 칠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불안함을 떠안고 있고 마주해주지 않으면 불안은 점점 커져갈 뿐이니까요. 


줄곧 이야기한 것처럼 불안한 나를 인정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지만 한편으로 꽤 속 시원한 일입니다. 불안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순간, 불안해서 하던 일을 내려놓을 수가 있었거든요. 혼자임을 부정하고 밖으로 쏘다니기보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게 되었습니다. 괜히 다른 번지수를 찾아 외로움을 달래기보다 연락이 닿길 바라는 이에게 마음을 전해 한 번 부딪혀보기로 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표현하며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 시도들은 또 다른 불안을 낳을 수도 있겠죠. 아마 분명 그럴 거예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내가 힘을 쏟으려는 방향이 꽤 올바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그 문제를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마치, 구름이 걷히는 순간 보름달을 두 눈으로 똑바르게 보겠다는 마음가짐처럼 말이에요.


그러나, 저는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 그 일을 무조건 마주하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속도가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탈이 나지 않도록 단단하게 마음 근육을 키워서 준비가 되었을 때 그 일을 하나 둘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앞서는 의욕 때문에 내가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그러니 지금 여전히 구름으로 보름달을 가려두었다고 해서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저 역시 보름달을 보지 못한다는 아쉬운 마음을 쉬이 달래는 것으로 이 편지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보름달을 바라볼 날은 언제든 찾아오기 마련이니까요.




이천이십사 년 두 번째 보름달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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