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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Mar 24. 2024

쉬어가도 괜찮아요.

고백을 하나 하자면, 저는 아픈 사람이에요. 평소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지라 겉으로 보기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저는 최근 몇 년 간 여섯 개의 진료과를 다니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봐야 했던 환자로 분류되는 사람입니다. 제가 지닌 진단명을 누군가 들으면, 젊은 사람이 벌써? 하는 놀람의 의문문을 마주하기도 하죠.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스스로 아픈 사람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차요. 나는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열심히 살았을 뿐이에요."


지난주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시더라고요, 열심히 살았을 뿐이라고.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때 들었던 감정은 좌절과 절망에 가까웠어요. 한평생 열심히 산 저는 그 말에 어떻게 하면 열심히 살지 않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왜 건강하지 않은 지에 대한 답을 들었지만, 삶의 태도를 어떻게 바꿔볼 요량이 없는 저는 제 건강을 위한 답을 찾지 못해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사실, 처음 듣는 말도 아니었어요. 맞아요. 저는 새로운 진단명을 얻을 때마다 과로와 스트레스 그리고 그로 인한 불면을 원인으로 듣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잠시 쉬어가자고.


그러나, 관성이란 것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다짐을 잠시 미뤄두고 이윽고 열심히 사는 저로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익숙하니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불을 내뿜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하얗게 태워버린 숯 같은 버석한 형상에 스스로 중독되어 버렸거든요.


나에게 일말의 빈틈도 허용하지 못하는 엄격함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원을 그리는 보름달을 동경하게 된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달은 항상 보름달의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아니죠. 30일이 채 되지 않는 주기의 대부분의 날 동안 보름달은 완전무결함을 잃은 채 자신이 지닌 모자람을 여지없이 하늘 아래 있는 존재에게 드러냅니다. 그것이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요. 아주 성실하게 말이죠. 그 일부인 '보름달'이라는 순간을 포착하고 저것은 완벽함이라며 단정 지어 맹목적인 사랑을 품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저였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보름달이 아름다운 원을 그리며 빛날 수 있는 것은 지난 세월 동안 채워지지 못한 모습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말이죠.


이제 보름달을 향한 제 사랑의 이유를 수정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름달의 완벽한 모습만 골라내며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모습까지 수용하며 사랑하는 방향으로요.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에게 먼저 그 태도를 보여야 하겠죠? 저는 무언가를 사랑할 때, 그것을 닮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사는 이유로 아프지만, 이 성실함이 또 다른 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임은 분명합니다. 이제 저는 잔인하게 스스로 몰아붙이던 마음을 덜어내보려고 해요. 세상에 늘 완벽하게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름달을 통해 배웠으니까요. 


오늘 뜨는 보름달은 왠지 제게 위로를 건네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를 꽉 채우거나 완벽해지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듯이요. 자신에게 관대해져도 괜찮다고 다독여줍니다. 제가 채우지 못한 비워진 자리를 보름달이 대신 채워줄 수도 있겠죠. 완벽하게 원의 모습으로 빛나는 보름달의 기운이 느껴지는 밤이니까요.


혹시, 저처럼 너무 열심히 사는 탓에 쉬어가는 법을 잊어버린 분이 있다면, 이 편지를 읽고 보름달을 꼭 올려다보는 여유를 보내셨으면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제 당부를 기억해 주세요.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요. 


네, 그렇습니다. 쉼을 선물해 주는 거예요. 보름달이 우리에게 해주듯이 말이죠.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쉬어가도 괜찮다고 스스로 말해주기로 해요.




이천이십사 년 세 번째 보름달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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