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탄공항에 도착해 두 시간 반을 자고 보홀행 페리에 탑승하기까지
심심했다. 여름나라에서 다이빙도 하고, 열대과일도 잔뜩 먹고 싶다고 생각을 하던 중 같이 미술감상모임을 하다 알게 된 언니의 권유로 5박 6일 일정으로 보홀에 다녀왔다. 다낭에 갔다 온 후 4년 만의 해외여행이었다. 항공권을 몇 달 전 예약하고, 오픈워터 자격증 코스와 숙소까지 예약을 마치고 날짜가 다가올수록 설레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그러다 약속한 날짜가 되었고, 나는 전날에서야 부랴부랴 짐을 쌌다.
추웠다. 인천공항까지 가는 길도, 공항에서 내려서 체크인하러 항공사 카운터로 가는 길도. 여름나라의 기온은 27도 정도로 우리나라의 늦여름에서 초가을과 비슷할 것 같던데. 몇 시간만 자고 일어나면 인천공항과는 완전히 다른 그곳의 온도와 습도를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우리는 기억나지 않는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예약한 항공편에 무사히 탑승했다.
잤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최근에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언니는 옆에서 자고, 나는 스마트폰 메모장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끄적이며 마음을 정리했고 그러면서 좀 졸기도 하고... 도착하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공항엔 사람이 많았고 편의점과 환전소도 문을 열고 있었다. 우리는 유심칩을 사고, 공항에서 500m 정도 떨어져 있는 호텔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픽드롭서비스로 멀리 있는 숙소에 간 건지 우리가 편의점에 잠깐 들르고 유심칩을 갈아끼우고 주변을 둘러 보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호텔까지 걸어가는 길은 어둡고 사람이 없었으며, 호객행위를 하며 말을 거는 커다란 택시와 우리를 쳐다보는 낯선 사람들의 속을 알 수 없는 눈빛들 때문에 정말 너무 무서웠다. 총을 든 경찰들이 몇 있었는데 속으로 과연 저 경찰들이 비상 상황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인지 가늠하며 한국대사관 컨텍방법을 헤아리던 중 우리의 목적지 호텔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호텔 로비까지 우리를 안내해줬다. 그 호텔의 직원이었고 마침 퇴근하던 중에 우리를 마주친 거였다. 필리핀에는 팁문화가 있다지만 그때는 쫄아있던 터라 팁같은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땡큐땡큐만 연발한 후 숙소로 뛰어 들어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12시 40분. 짐을 풀고 씻고 나오니 2시. 우리는 6시에 세부항구에서 보홀 타그빌라란항구로 가는 페리를 탑승해야 했다. 항구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30분가량이니 5시에 일어나야 했다.
못 일어날까봐 불안해서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다섯 시에 일어나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호텔 직원이 불러준 택시를 탓는데, 탑승하자마자 대뜸 택시비용으로 얼마를 줄 거냐고 물었다. 요금은 알아서 달라고 할 것이지... 얼마나 주는 게 적절한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얼마를 줄 거냐 물으니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그랩 요금 기준으로 420페소를 불렀다. 그러자 그는 500페소를 달라고 했는데, 실랑이하기도 피곤하고 여권, 돈 등 우리의 모든 짐이 캐리어와 가방 안에 다 있고 힘없는 여자 두 명만 있으니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 보다는 호갱이 되는 것이 나을 듯 하여 500페소에 합의를 봤다.
항구에 도착했는데 배가 연착되어 20분 정도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터미널 피, 짐 부치는 비용으로 350페소를 내고 앉아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 봤다. 그제야 여행을 온 게 실감이 났다. 도착하자마자 환복하고 오픈워터 교육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 교육이 만만치 않게 힘들다던데. 잘할 수 있을까.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페리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두 시간 후 오전 8시 20분에 우리는 드디어 목적지인 타그빌라란 항구에 도착했고, 내려서 피켓을 들고 서있는 다이빙샵의 픽드롭서비스 기사를 찾아 다이빙샵 숙소로 가는 벤에 탑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