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이 낮아진게 우리 탓은 아니잖아

동물적 본능과 사회적 본능

by Kyum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다고. 노인인구가 많아지고 있다고.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초등학교 한 반에 열다섯 명, 담임 한 명에 보조교사 두 명이라고. 어. 잘됐네. 애들은 좋겠다. 2030년에는 노인인구가 세계 인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거라고. 어. 당연하지. 아이를 안 낳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인걸요.


의아했었다. 도대체 저 많은 치킨은 어디서 나온 거지. 도대체 저 많은 소고기집에서는 어떻게 고기가 끊이질 않고 공급이 되고,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서 배가 터지도록 소고기를 먹을 수가 있지. 도대체 저 많은 삼겹살집에는 어떻게 사람들이 끊이질 않지. 도대체 어떻게 돼지의 배를 도려낸 고기가 저렇게 많은 거지. 우리 집 앞 삼겹살집엔 테이블이 서른 개. 회전을 세 번만 해도 구십 번. 한 테이블당 두 명씩 앉았다고 치면 백팔십 명. 백팔십 명이 한 사람당 150g의 삼겹살을 먹었다고 가정하면 음... 도대체 몇 마리 돼지의 배를 오려낸 거지. 감이 잘 안 온다. 아무튼 아주 많은 돼지들의 배를 도려내 하루치 장사를 해 수익을 냈겠지. 그리고 그렇게 많은 배를 도려낼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그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개체수를 증식시켰기 때문일 테고. 그런데 만약에 저 많은 닭, 소, 돼지들이 종족번식을 않아도 될 '자유'가 있다면 어떨까. 새끼를 낳으려고 할까? 그럴리가. 오히려 자신들의 운명을 알게 된다면 동물농장의 동물들처럼 사람을 죽이고 정권을 잡으려고 하거나, 도저히 비참하게 잡아먹히는 운명을 피해갈 수 없음을 일찍이 알아차리고 자살하려 할 텐데.


근데 내가 저 가축들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음. 국가에서 출산율 감소를 왜 우려하지? 경제인구 감소를 우려한다고. 경제인구? 아. 노예..? 과거의 노예란 인신매매로 끌려온 순수한 사람들이었다면, 요즘의 노예란 돈 때문에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자들 아닌가. 그러니까 아무리 다니는 직장에 만족하더라도, 프리랜서로 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더라도, 건강을 챙기며 여유롭게 일하고 다방면의 관심사를 자유롭게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경험의 폭을 확장시켜 나갈 만큼 마음대로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이들은 전부 자본주의의 노예가 아니냔 말이지... 아, 물론 나도 자본주의의 노예다.


나는 그래서 아이를 도저히 낳고 싶지가 않다. 자본주의의 노예를 낳는 것은 누구에게 득이 되는가. 적어도 내게 득될건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위한단 명분으로 하는 모든 소비가 결국 기업의 이익과 나아가서 나라의 부를 위해 이루어지게끔 시스템화 되어있듯, 내가 키운 아이는 사회라는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또 하나의 노예가 되버리고 말테니까.


오해할까 봐 쓰는 것은... 그렇다고 내가 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은 아니다. 쾌적한 아파트에 살고, 비싼 전자기기를 여러 개 갖고 있다. 모아놓은 돈이 많진 않지만 주식투자로 야금야금 돈을 불려 가고 있으며, 잔여할부금 없는 국산 중형차를 타고 다닌다. 직장에 다니며 월급을 꼬박꼬박 받고, 친구들을 만나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는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사는 편이고, 전시 감상이나 영화 관람도 얼마든지 내키는 대로 한다. 이 정도면 꽤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도 생각한다. 아니 사실, 넉넉한 형편은 아닐지라도 지금의 생활에 그럭저럭 만족하고는 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아이를 낳고 싶지가 않다. 그럭저럭 만족하는 지금의 나쁘지 않은 삶이 나쁘게 바뀔까 봐 경계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나쁘게 바뀔 확률이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는다면, 기저귀 값, 분유 값, 옷 값, 책 값, 좀 더 크면 교육비. 한 달에 몇 백은 우습게 들겠지. 그럼 돈은? 돈을 벌기 위해 내 시간을 쓰겠지. 써도 써도 모자라니 잠을 줄이고 건강을 축내서 내 시간을 써서 돈을 벌겠지. 돈을 벌고 돌아와서는 아이를 돌볼테지. 가뜩이나 마음대로 쓸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던 나였는데 아이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시간마저도 마음대로 못 쓰게 될게 뻔하다. 그러니까 국가건 어른이건 누가 됐건 출산율이 낮은 이유를 2030에게서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가축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을 뿐이라고.


한때 친척 어른들이 참 많이도 물어보셨더랬다. 너는 언제 결혼할 거니. 그러면 '5억을 주시면 일주일 안에 혼인신고를 마치고 오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해온 지 2년이 좀 넘었다. 장난처럼 해온 대답이지만, 실은 진심이었다. 게다가 5억이란 정말... 결과적으로 꼴등이 될지언정 스타트선에라도 겨우 발맞춰 서있을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금액이다. 둘이 같이 사는데 주거문제로 매번 상의하다 보면 분명 다투는 일도 생길 테니, 그럴 걱정 없이 맘 편히 살 수 있는 아늑한 집을 한 채 구매해야겠지.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방 한 칸이 딸린 강북지역 열여덟 평에서 운 좋으면 스물네 평짜리 아파트를 매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돈, 4억 5천.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이야 축의금으로 퉁치니 예외로 둔다. 그럼 나머지 5천 갖고는 둘이 함께 사용할 TV, 가구, 전자제품, 침구류 사면 땡... 그렇게 5억은 0으로 수렴하였습니다. 여보, 우리 지금부터 시작해봐요. 젊으니까 뭐든 할 수 있겠죠. 우리 함께라면 충분해요. 사랑하니까 할 수 있을 거예요. 잘 이겨내 봐요!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 둘은 아이를 낳았습니다. 가난하지만 아이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하하. 과연 그럴까요.


어쩌면 나도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한다면 생각이 달라질까. 글쎄. 지금까진 이 모든 공포를 감수하고라도 기꺼이 여생을 함께하고픈 사람이 없었거니와,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 한 편에 남아있던 일말의 로맨스에 대한 기대마저 싹 녹아버려 세상에 대한 냉소만 남아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모르겠다. 어느 날, 천년을 기다린 도깨비 같은 사랑을 찾는다면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싶어질까. 그때의 나에겐 종족번식의 동물적 본능과 인간으로 살고 싶은 사회적 본능 중 무엇이 앞서게 될까. 모르겠다. 좀 더 살아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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