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벼락거지의 슬픔

가진 적도 없는데 상실감이 깊었다.

by Kyum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데 쓸 시간과 에너지를 비축하여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편.


이었다. 남의 것을 탐해본 적 없고, 탐하고 싶은 마음 자체를 외면하였으며, 그리하여 비싼 집이나 좋은 차나 건물주의 늘어진 팔자 등은 내 인생과 하등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뭐, 로또는 샀다. 금요일에 로또를 사고, 5억이 생기면 뭘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좋았다. 실제로 1등에 당첨될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1등 당첨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 인생이 비참한 것도 아니었다. 그깟 5억, 없어도 되잖아.


그런데 올해 5월에 아는 동생이 코인으로 5억을 벌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난 인생이 비참해졌다. 5억은 내 인생에 당장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 동생은 코인 단타로 2천만 원을 투자해서 세 달만에 5억을 벌었단다. 뭐 먹고 싶냐고, 갖고 싶은 거 있냐고 묻는 동생에게 나는 축하한다고 말했다. 정말 축하한다고. 이제 원하는 삶을 살라고. 퇴사하고 싶다 하지 않았었냐고. 하라고. 명품 신발 갖고 싶다고 하지 않았었냐고. 사라고. 여행 가고 싶다 하지 않았었냐고. 가라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그렇게 말해줬다. 그러고 나는 산책을 나갔다.


밤이었고, 중랑천이었다. 생각을 비우려고 무작정 걷다가 가슴이 답답해져서 달렸다. 달리면서 머릿속에 있는 단어들을 하나씩 꺼내 길바닥에 버렸다. 돈, 질투, 무능, 거지, 희망, 인생. 그런데 던진 단어들이 지들끼리 하나로 뭉쳤다. 그러고는 아주 큼지막하고 묵직하게 '등신'이란 단어를 만들더니 그걸로 나를 때렸다. 아팠다.


사실 그날, 나는 5억을 벌었다는 동생에게 배신감을 크게 느꼈다. 나랑 형편이 비슷한 아이였는데. 월급을 200만 원 정도 받으면서 한 달에 150만 원을 쓰던 아이. 그래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서 좋다던 아이. 하지만 차 살 돈도, 집 살 돈도 없으니 자기에겐 미래가 없어 연애도, 결혼도 다 포기했다던 아이. 퇴사한단다. 5억으로 작은 가게 하나 차릴 거란다. 5억이면 큰돈은 아니지만, 뭔가를 새로 시작할 수는 있는 돈이랬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돈을 엄한 데 쓰지 않고 사업을 한다는 게. 하지만 속에서 그 아이에 대한 배신감이 끊이지를 않았다. 그래. 다 좋은데, 나도 진작 좀 알려주지. 지만 다른 세계로 갈 게 아니라, 나도 좀 데리고 가지... 배신감과 원망은 자아성찰로 이어졌다. 아. 내가 무슨 자격으로 걔를 탓해. 나는 코인에 관심도 없었잖아. 그럼 난 뭐에 관심이 있었지. 도대체 과거의 나는 뭘 하며 살았지.


2007년에 비트코인을 알았다. 불법투기의 수단이 되고 있으며 범죄 집단의 전유물이라던가. 심각한 사회문제를 유발하니 근절해야 한다고 라디오에 나온 금융전문가라는 사람이 한참 동안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때 당시 비트코인 1개의 가격이 백만 원. 뭐야. 뭔지 몰라도 왜 그렇게 비싸. 그러고 말았다. 호기심은 생겼지만 자세히 알아보기 귀찮았고, 그다지 관심도 안 갔다. 그때의 내 최대 관심사는 좋아하는 락밴드의 신보,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같은 것이었으니.


2017년에 누군가 말했다. 요즘 코인으로 돈 번 사람 많다고. 물었다. 지금 그럼 비트코인이 얼만데? 천만 원이란다. 10년 전에 백만 원이었던 게 지금 천만 원이나 한다고? 그럼 그때 샀으면 열 배네. 그때 살걸. 그때 산 사람들도 있을까? 지금은 늦었겠지? 지금 너무 많이 올랐다. 괜히 지금 샀다가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 다 잃는 거 아니야? 관심 끄고 나는 일이나 열심히 하자. 지금 내 인생도 나쁘지 않잖아.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얼마 후 비트코인이 폭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그렇지'하고, 나는 안심했다. 간사하게도.


2021년 5월, 비트코인은 5천만 원이었다. 아아. 2017년에 샀으면 다섯 배잖아... 14년 전은 그렇다 쳐도... 4년 전에 난 뭘 한 거지. 나는 책을 많이 읽었고, 노래를 만들기도 했고, 누가 만든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종종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미술관에 자주 갔으며, 일도 열심히 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자고 싶을 때 못 자고, 쉬고 싶을 때 못 쉬었다. 내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나는 자본주의의 노예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난 내 인생이 몹시 비참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온갖 이유로 억울해졌고 별의 별게 다 원망스러웠다. 36년 동안 쌓아온 내 우주가 와르르 무너지고 자아가 바스러지는 데에는 고작 하루면 충분했다. 그날 산책길에 벤치에 앉아 후회를 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고는 작정을 하고 제대로 후회를 했다. 마음속에 악마가 툭 튀어나오게 내버려 뒀다. 악마는 삼지창으로 내 심장을 쿡쿡 찌르며 나를 실컷 비웃었다. '바보. 등신. 비트코인 안 사고 뭐했어. 그동안 뭐 했냐고. 회사 다니면서 번 돈 제대로 모으지도 않고 다 쓰기만 했잖아. 그럼 재테크라도 잘해뒀어야지. 책 읽고 미술관 다니고 사람들 많이 만난다고 혼자 똑똑한 척 다 하더니, 순 멍청이였네. 진짜 똑똑한 애들은 다들 진작에 코인 사서 몇 억씩 벌었을 텐데. 등신. 지금 서울 집값 많이 오른 거, 다들 코인으로 돈 많이 벌어서 집 사서 그런 거 아니야? 너만 코인 안 한 거 아니냐고. 등신아.' 따끔따끔. 심장이 아팠다.


할 수만 있다면 2007년으로 돌아가 백만 원짜리 비트코인을 딱 다섯 개만이라도 사고 싶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2021년 5월의 나에게는 2억 5천이 있을 것이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통장에 꽂혀있으면 앞날에 대한 걱정은 크게 줄어들만한 액수였다. 2007년에 인디밴드의 CD를 살게 아니라, 코인을 사야 했다. 기타를 배울 게 아니라, 업비트를 깔아야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을 게 아니라, 차트 공부를 해야 했다. 음악? 책? 좋아하는 일? 그까짓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열심히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인데. 그동안 돈을 벌기 위해 참아왔던 것들이 생각났다. 고생하는 엄마가 생각났다. 세상 오만 것들이 미웠다. 나를 자본주의의 노예로 만든 사회제도도 원망스러웠지만, 진작 코인을 사지 않은 나 자신이 가장 원망스러웠다. 가진 적도 없는 것에 상실감을 느끼니 영혼이 바싹바싹 말랐다. 나는 5억이 생겼을 때의 나를 매일매일 상상했다. 5억을 가진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대단한 존재였다. 상상 속의 내가 반짝반짝 빛날수록, 현실의 나는 초라하고 볼품없어졌다. 상실감은 점점 뾰족하고 날카로워졌다. 나는 날카로워진 상실감으로 마음속에 구덩이를 푹푹 팠다. 겨우 움트던 마음속 새싹들을 뿌리까지 끊어 전부 폐기하고 마음을 텅텅 비웠다.


구덩이가 마음의 80% 정도를 파고 들어간 후에야, 나는 그로기 상태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그렇게 정신을 못 차렸었나 보다. 어떻게 벗어났냐면... 내가 코인을 했다. 직접 겪어보니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코인을 사고팔며 벌어도 보고 잃어도 봤다. 그러면서 5억을 번 그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수개월 동안 코인 트레이딩에만 매달려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미국 주식을 2년 동안 꾸준히 하고 있다. 그래서 코인도 비슷한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코인이란 미국 주식하고는 달랐다. 미국 주식은 내가 좋아하는 기업의 현황과 정책을 살피고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는 이 기업이 뭘 하겠구나라는 거시적인 전망만 있다면 마이너스일 때 더 사고, 그러다 많이 오르면 조금 팔고 하는 정도로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온 결과 지금 내 미국 주식 계좌는 꽤나 수익률이 좋다. 하지만 코인은 얼마나 빠질지, 얼마나 오를지 예측이라는 게 불가능했다. 유튜버들도 어쩐지 석연치 않았고, 차트를 보면서 내 감으로 하다가 많이 잃었다. 같은 종목이라도 어떤 날은 +100프로가 되었다가, 어떤 날은 -80프로가 찍혔다. 이렇게나 다이내믹한 걸 투자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도박에 가까웠고, 그 아이는 분명 이 도박 같은 게임에 매 순간 자신의 판단력만을 믿고 인생을 걸어왔을 것이었다. 딱 한번 잘못되면 전부 날릴 수 있기에 주변에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래서 나에게도 말을 안 했던 거겠지. 그렇게 그 아이를 이해하게 되자, 배신감이 사라졌다.


그때의 경험은 내가 퇴사를 결정하는 데에도 영향이 있었다. 왜냐하면, 코인으로 돈을 많이 벌면 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나는 조직 내 인간관계를 늘 피곤하게 생각했고, 중국산 절임배추처럼 축축하게 실려가는 지하철 출근길도 싫어했다. 쉬고 싶을 때 마음대로 쉬고, 집중 잘 될 때 집중해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늘 했었다. 특히 아침에는 푹 자고 새벽까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지난한 한 달이 끝난 후에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코인으로 돈을 많이 벌지 않더라도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5억이 있는 상태에서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겠지만, 5억이 없는 상태에서도 원하는 대로 살아볼 수는 있는 거니, 일단 해볼까 싶었다. 그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요즘은 코인과 주식을 많이는 안 한다. 그보다는 현생 채굴을 많이 하고 있다. 지금 열심히 맡은 프로젝트를 해두고, 입찰에 참여하고, 거래처를 확장해둬야 몇 달 뒤에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매드로 일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서 더욱 일에 몰입하면서 코인과 주식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졌다. 새벽까지 작업을 하고 아침에 늦잠을 자기도 하고, 낮에 잠깐 한적한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서 그곳에서 작업을 하기도 하는 지금의 생활에 나는 꽤나 만족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마음속 구덩이에 귀여운 입주자 하나가 들어왔다. 뭐. 일하는 자아라나.


"안녕. 나는 글을 쓰고 있어. 새내기 작가라는 명함이 여기 있네. 어색하다. 작가라니. 근데 작가 맞지. 나의 이름을 건 단행본을 출간하는 작업은 아니지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책을 만드는 일에 참여해 취재와 집필을 하고 있잖아. 그리고 언젠가 나의 이름을 건 단행본도 꼭 출간할 거야. 아무튼, 누군가의 이야기를 소상히 듣고 그것을 기록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대단해. 그나저나 이 구멍은 참 깊고 아늑해서 좋네. 집중이 잘 되거든. 깜깜하긴 했는데 희망불을 갖고있으니 내가 있는 동안은 괜찮을 거야. 나 여기 오래 머무를게. 잠시 떠날 수도 있겠지만 언제고 다시 돌아올 거야. 여기는 내 자리고, 내 집이니까. 아늑한 공간을 나에게 내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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