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우주에서 나를 외치다
제주도 본태뮤지엄의 무한 거울방에 처음 갔을 때, 우리보다 먼저 들어갔던 앞사람들 때문에 사소한 곤욕을 치르던 스탭이 생각난다. 바닥에 발을 담그지 말라고 매번 주의를 주는데, 아마 앞사람이 발을 담그는 바람에 설치 작품의 일부가 훼손되었던 것 같다. 스탭은 우리에게 티 나지 않을 만큼(예민한 내가 겨우 알아차릴 만큼만)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우리더러 잠시 기다리시라 말한 뒤 빗자루를 손에 쥐고 전시장에 들어갔다. 쓱싹쓱싹. 바닥을 닦는 경쾌한 소리가 몇 번 들리고는 직원이 다시 나타났고, 이제 들어가셔도 된다며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바닥에 발 담그지 마세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방은 새까맣고 어두웠다. 그래서 머리 위로 행성처럼 동동 떠있는 알록달록한 불빛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동행한 언니와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동시에 함성을 내지르듯 말했다. '예쁘다!' 그 예쁜 공간에서 우리는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사진으로는 우리가 본 그 공간의 느낌을 전부 담을 수 없어 아쉬웠다. 우주의 한가운데서 우주를 찍을 수 있는 항공카메라가 내 손에 있다한들, 마주하여 감각하는 영원과 경이의 세계를 어떻게 그 안에 다 담아낼 수 있으랴. 한 편으로는, 발 담그지 말라던 바닥도 유심히 봤다. 잔잔하게 물이 깔려 있었는데, 밟고 싶은 충동을 살짝 느꼈다. 한 발 더 다가가서 행성을 바라보고 싶은 기분이랄까.
모든 공간이 영원히 열려있는 누군가의 우주에 그렇게 취해 있다가, 밖에서 직원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조금 더 있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해서 아쉬웠고, 집에 와서는 쿠사마 야요이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작품을 좀 더 보고 싶어서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작가는 유년시절부터 망상과 환각을 겪어 왔고, 열 살 무렵부터 발작증세를 보였다. 어머니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하기보다는 못된 아이라며 몰아세우며 학대하는 길을 택했고, 아이에게는 그것이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밖에 아버지의 외도 문제와 어머니의 아버지 감시 명령 등으로 총체적 난국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던 아이는, 어느 날 둥근 물방울무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환영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 뒤로 이어진 작품 활동도 자신이 보는 환각을 캔버스나 공간을 통해 옮겨놓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 무한 거울의 방은 그녀가 느낀 정신병리현상의 일부였다.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고통을 이렇게 솔직하고 아름답게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삶이라니, 나는 그것이 쉽사리 짐작이 되지 않았다. 물론 함부로 짐작하지도 않는다. 짐작은 편견을 낳을 수 있어 위험하다. 그보다 공감이 훨씬 좋은 방법이기에,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작가의 마음에 한 뼘만 더 다가가 보기로 한다.
몸 안에서 시작된 고통은 기어이 꿈틀거리며 살갗을 뚫고 나와서는 스멀스멀, 방안을 새까맣게 물들인다. 그저 살고 싶어서, 빨갛고 파랗고 노란빛을 그린다. 빛 그리기에 집중하다 보면, 빛은 어느새 반짝거리며 동동 떠올라 행성이 된다. 처음부터 그곳에 우주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빛이 행성이 된 후로 새까만 방안은 영원의 우주가 되었다. 이제 거울을 본다. 거울 바깥에는 우주가 있고, 그 안에는 만다라가 존재한다. 소멸과 소생이 무한히 반복되는 그녀의 우주. 그 우주 공간 안에선 평온이 주인이다. 공포는 자리를 차지할 틈도 없이 외면당한다.
가끔 일상에서 불안증과 자기 검열에 시달릴 때가 있다. 어떤 일에 대한 나의 자격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열하고 곱씹으며, 막연하고도 막막한 공포를 느끼는 일종의 가면증후군이다. 그럴 때 나는 무한 거울의 방이 생각난다. 무한 거울의 방은 내게 영원의 의미와 죽음의 의미를 동시에 곱씹게 하는 묘한 공간이다.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을 예술작업으로 연결해 대중에 노출하는 행위에 필요한 용기, 그것의 실체조차 나는 모르겠다.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한 가지뿐. 나는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내면의 우주로 승화하여 세상에 노출하는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나 또한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으니까.
쿠사마 야요이가 살아있는 동안 본인을 가장 즐겁게 만드는 활동을 하면서 오랫동안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예술활동일 테지. 그녀의 행복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