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감상모임에 다닌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둔다

by Kyum


처음에는 혼자 전시를 보러 다녔었다. 그런데 매번 뭘 봐도 내가 느끼는 감상이 비슷한 것 같았다. 다른 뭔가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피카소를 보고 '독특하다' '수학적이다'라는 나의 얕은 감상 말고 나만큼이나 초보인 누군가의 엉뚱한 관점이 궁금했다. 뭐 예를 들면 피카소를 보고 무섭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잖아. 거기엔 이유가 있을 거고. 그런 걸 듣고 싶었다.


소모임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어플을 깔고 미술관이라고 검색해서 가장 회원수가 많은 미술감상모임에 가입했다. 정회원으로 승인을 받고 처음으로 참석한 정모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전이었다. 여덟명 정도가 그 모임에 참석했었다. 전시 관람이 끝나고 후기를 나눌 때 작품에 대해서 발표할 거리를 찾으려고 열심히 보고, 작품 소개 텍스트도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봤다. 괜히 대답을 잘 못해서 어버버 거리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후기나눔에서 나는 나름대로 내가 느낀 바를 잘 표현했다. 자코메티가 계속 조각을 하면서 보여주려고 했던 게 결국에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화가들은 어떤 작품을 하건 마지막 주제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더라. 화가들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이 그런 것 같다. 인간이라서 갖게 되는 모순이나 인간이라서 겪는 고통과 그것을 이겨낼때의 환희나 체념하고 받아들일때의 숭고함 같은 것들, 아무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 고민하면서 다른 동물들과의 차이를 찾아가는 게 인간인 것 같다. 대충 이렇게 떠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몇 년 전이니 기억에는 왜곡이 있을 수 있다.) 나의 첫 후기 발표를 듣고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호응하고 공감해줬다. 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 브리핑이 있었다. 다들 나와 비슷한 걸 느꼈다. 하지만 표현이 달랐다. 그 점이 재미있어서 자꾸 모임에 나갔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나는 작년부터 그 모임의 모임장을 (얼떨결에 맡아서)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은 모임을 열어 회원들과 함께 전시를 봤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물론 모임은 종종 열고 있다. 아, 물론 5인 미만, 네 명 정원으로 간다. 다른 모임도 아마 그럴 테지만 이것은 당분간 우리 모임의 잠정적인 룰이다.


그렇게 함께 미술을 감상하러 미술관에 가는 우리 모임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첫째, 대체로 스피커보다는 리스너 성향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막상 한번 말을 하면 제법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지만 먼저 나서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자신의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두 번째, 단정하다. 뭐, 잠옷바람이나 운동복 차림으로 오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미술관에 갈 때만큼은 꼭 단정하게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정장까지는 아니지만 갖춰 입은 캐주얼 차림이거나 가끔은 세미 정장을 입은 사람들도 본다. 세 번째. 사람을 배려하는 상냥함이 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작품 앞에 한참을 서서 보다가 다른 사람이 와서 그 작품 앞에 서있으면 웃으며 말없이 자리를 비켜준달까. 혼자 기꺼이, 오롯이 감상하시라는 배려의 차원에서. 섬세한 영혼들 같으니... 앞서 세 가지 특징을 모임의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건 아닌데, 대체로 갖고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이성을 만나러 왔다가 이런 분위기에 실망하고 금세 탈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해한다. 나쁘게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해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렇게 하나 둘 걸러져 남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나이 먹어 가는 이 모임이 나는 꽤 좋다.


가끔은 모임에서 만나서 연애로 이어지거나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 큰 성인 남녀들끼리 서로 좋아서 만나는 일이라면 나는 대환영이다. 축복해줘야 할 일이다. 내가 모임장이 되기 전에 그렇게 두 커플이 결혼했다. 연애는 서로서로 그보다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무튼 연애를 하다가 헤어져서 한명이 탈퇴를 하건, 둘이 만나느라고 바빠서 모임에 못 나오건 잠시나마 한철 만나서 맛있는 커피 마시면서 같이 작품 보고 이야기 나눈 시간이 있었다면 그걸로 된 거다. 세월이 지나면서 오랜 벗의 소중함 못지않게 찰나의 인연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나는 회원들과 후기 나눔을 할 때 철저하게 감상 위주로 하며, 개인적인 이야기도 잘 안 한다. 가령 몇 년을 본 회원들 중에도 사는 지역이나 하는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굳이 묻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라... 프리랜서예요. 아. 무슨 일 하세요? 글써요. 아... 책 내셨어요? 아니요. 혹은, 직장 다녀요. 어느 직종이에요? 철강이요. 아. 포스코 같은. 네. 비슷한데. 저희는 자재 만드는 곳이에요. 라는 식의 겉만 에두르는 대화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작품 관람 후 두 시간 동안 작품, 화가, 작품 속 제재 등에 대해서 신나게 떠들다가 시간이 되면 쨘! 하고 인사만 꾸벅 나눈 뒤 해산해 버린다. 당연히 연락처도 모르고, 심지어 닉네임으로 불러서 본명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이런 관계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 나는 가끔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너무 피곤하다. 그 사람은 분명 지난번 일은 어떻게 되었어? 잘 돼가? 라고 물어볼 텐데, 그럼 나는 아직 과정 중에 있으며 어떠한 에러 사항이 있었다는 걸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귀찮다. 내 밑바닥까지 알고 있는 친구는 어떻고. 내가 아무리 고흐니 모네니 윌리엄 터너니 떠들어대도 그 친구는 나에게서 자기가 가장 잘 아는 개구쟁이 같은 내 모습을 기대하고 끄집어 내 같이 놀려고 하잖아. 그러니, 미술감상모임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는 반 익명의 관계에서 훨씬 자유로운 내가 될 수 있는 순간들은 소중하게 지켜내고 싶은 거다.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것과도 비슷한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앞으로도, 이 먼 지인들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


이번 주에도 모임에 나간다. 이번 주에 함께 관람할 전시는 세종미술관 필립 콜버트 전. 이번 주에는 어떤 질문을 준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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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갤러리 현대.김민정 개인전'Time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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