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작업이 거의 끝나갑니다. 초고 중 하나입니다.
‘헬(hell)로우 방학’. 방학이면 걱정부터 앞선다. 윤희 삼시세끼를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학교 급식 한 끼가 집밥 하는 이에게는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방학 때가 되면 절실히 알게 된다. 아침밥을 챙기고 나면 금세 점심이다. 점심까지 잘 먹은 윤희가 “아빠 머랭 쿠키 해줘”. 두어 달 전이었다. 갑자기 옆에 찰싹 붙더니만 쿠키를, 그것도 머랭 쿠키를 해달라 했었다. 머랭?, 티브이에서는 봤어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달걀흰자와 설탕을 섞고 팔 아프게 저서서 크림 비슷하게 만드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물론 거품기가 있으면 손쉽게 할 수 있지만 양식에서 쓰는 조리법이라 해 볼 생각조차 안 했다. 집에서 양식이라고 윤희한테 해주기는 했지만 카레, 소스 없는 스테이크 정도지 머랭을 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딱 한 번은 케첩 만들어 소스 만들어 본다고 설친 적은 있었다. “응, 다음에 하자, 응 다음에 하자” 하면 질질 끌었지만 방학인 지금은 안 해 줄 방법이 없었다.
해야지 생각하고 움직이기 전 인터넷에 떠다니는 레시피 검색을 먼저 했다. 해 본 적이 없으니 일단 봐야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레시피 몇 개를 살펴보니 재료는 간단했다. 달걀흰자, 설탕이 기본이고 레시피에 따라 몇 가지 재료만 추가하면 될 듯싶었다. 흰자에 설탕, 밀가루 조금 들어가는 가장 간단한 레시피로 결정하고 머랭 쿠키 만들 준비를 했다.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고 설탕을 개량한 다음 거품기를 준비했다. “김윤, 시작하자!”. “아빠 성공할 수 있어?”. “아니, 처음부터 잘 한 적 없잖아. 잘 알면서 하하”. “하긴, 식빵이나 쿠키도 그랬으니”. 윤희랑 심심하다고 식빵 만든 적이 몇 번 있었다. 대학 다닐 적 ‘제빵 연구회’에서 4년 활동한 경력이 있어 나름대로 자신 있게 덤볐지만 항상 망신만 당했다. 식빵을 구우면 주저앉고, 쿠키를 반죽해 오븐에 넣으면 건빵이 나왔다. 식빵은 몇 번 하면서 파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형태나 맛이 비슷하게 나올 정도까지 만들었다. 그 뒤로 쿠키는 몇 번 시도했다가 여전히 건빵이 나온 뒤로 안 만든다. 술빵은 그냥 떡도 아니 것이 빵도 아닌 것이 나와 몇 번을 버렸다. 아빠가 해주는 밥은 믿어도 아빠가 빵 한다고 하면 안 믿는다. 그나마 브라우니 성공으로 겨우 체면치레했지만 만들다 실패한 횟수가 쌓이고 쌓여 불신의 벽은 굳건하다.
차갑게 한 흰자를 거품 내기 시작했다. 큰 거품이 나고 차차 거품이 작아진다고 쓰여 있었는데 그렇게 된다. 오늘은 좀 되려나? 속으로만 설레발쳤다. 겉으로 했다가는 나중에 실패했을 때 윤희한테 배로 놀림당하기 일쑤다. 어느 정도 거품이 된 듯싶어 설탕을 넣고 본격적으로 머랭을 치기 시작했다. 거품이 크림으로 변하고 점도가 생긴 듯싶어 밀가루를 넣으려고 하는데 윤희가 밀가루를 보고 기겁을 했다. “아빠 밀가루 왜 넣어?”. “아빠가 본 레시피에 밀가루 있던데?”. “아냐 유튜브 안 봤어?”. “응 아빠 네이버 봤는데”. “아녀 밀가루 넣는 거 아녀?”. “아냐 넣어도 괜찮아?”. “실패하면 어쩌려고?”. “김윤, 우리가 한두 번 실패했냐?, 실패 없이 성공도 없다. 그리고 처음부터 성공한 적도 없잖아”. “하긴 아빠 마음대로 해”. 밀가루를 넣고 반죽을 마무리했다. 생각해 보니 짤주머니가 없다. 혹시나 하고 주방을 뒤지니 짜개는 나온다. 어쩔까 하다 지퍼 백 한쪽을 작게 오려내고 짜개를 끼우니 임시방편 치고는 훌륭했다. 반죽을 넣고 오븐 판에 짰다. “아빠 유산지는?”. 그러고 보니 유산지도 없었다. “안 떨어지면 어떡해?”. “식혀서 탁탁 치면 떨어질 거야”. 판 위에 모양 좋게 짜는데 모양이 찌그러졌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아빠 이렇게 되는 게 정상이야?” 의심 가득 담아 물어보는데 난들 알 수 있나. 처음인데. 반죽을 다 짜고 오븐에 넣었다. 레시피에 180도에서 25분 정도 굽는다 해서 예열을 그 온도에 해 놨다. 반죽이 익는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빠 누룽지 냄새나?”. “설탕 하고 달걀이 같이 익으면 비슷한 향이 나”라고 했지만 오븐 속을 보니 사진으로 보던 색과 전혀 딴판이다. 오븐 속 쿠키는 갈색이고 봉긋하게 서 있어야 할 모양은 구이 판과 넓게 퍼져 한 몸이다. 냄새가 수상한지 슬슬 윤희가 오븐 곁으로 다가왔다. “쯧쯧” 혀 차고는 이내 돌아섰다. 잔소리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서로 잘 못 한 거에 대해 잔소리를 잘 안 한다. 해봐야 틀어진 일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거니와 마음만 상한다는 알기 때문이다. 오븐에서 판을 꺼내 식혔다.
판을 바닥에 탕탕 쳐 띄어 내려했지만 생각만 그럴 뿐 현실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옆에 앉아 지켜보던 윤희가 “머랭이 머래!(아재 개그다. 뭐 이래!)”. 숟가락으로 누룽지 긁듯 긁어냈다. 입에 넣으니 씹힌다. 혼자 먹고 있으니 한 입 달라 입을 벌렸다. “아빠 진짜 누룽지 같아, 머랭 쿠키는 입에 넣으면 녹는다 했는데 아빠 거는 안 녹는다. 진짜 신기하다, 깔깔깔”. 처음에 식빵 만들다 실패했을 때는 민망했는데 이제는 끄떡없다. “김윤, 다시 재료 준비해서 만들자”. “아빠는 참 꾸준해. 처음은 항상 실패해”. 짜는 주머니와 유산지 등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 내 옆에서 윤희가 누룽지 맛 쿠키를 씹으며 한 마디 더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