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667
암호명 같지만 본명을 이야기하면 누구나 아는 이름이 나온다. 80년대 이후 태어난 이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이름을 얻기 전 실험실에서 ‘통일벼’ 대신 IR667로 불렸다. 70년대를 관통하면서 식량 자급의 총아로 군림하다 뒷배를 봐주던 박정희 정권의 몰락과 함께 했다. 박정희 정권이 몰락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맛이 안 맞았기 때문이다. 통일벼는 인디카종을 기본으로 육종한 품종이라 생산력은 좋았지만 밥맛이 일반미에 비해 떨어졌다. 여기서 일반미는‘추청벼’, 일본에서 도입한 품종으로 현재의 ‘추청’ 쌀은 추청벼를 개량한 것이다. 인디카 종이 밥맛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찰진 밥을 좋아하는 동북아 사람들과 안 맞았을 뿐이다,
70년대 전국에서 미질이 떨어지는 통일벼를 심게 했고, 심은 쌀을 사주면서 추곡 수매 제도가 정착됐다. 통일벼는 충남과 전라도 등 남부지방에서 재배했다. 더운 지역의 품종인 인디카종의 유전 형질이 있어 봄이 늦게 오는 경기도에서는 재배하기가 어려웠다. 경기도에서 일부 통일벼를 심었지만 다른 지역처럼 통일벼로 통일하지는 않았다. 경기도 농민들은 통일벼 대신 아키바레를 심었고, 생산한 쌀은 서울 일반 미곡상들이 전량 사들였다. 통일벼는 정부에서 수매를 하고, 아키바레는 일반에서 사들인 결과, ‘정부미’와 ‘일반미’라는 용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맛이 떨어지는 정부미, 그 정부미를 생산하는지 역의 쌀은 맛이 없다는 관념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2000년대 충남 홍성군 유기농 단지에 갔을 때 다른 유통업자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홍성이나 충남 쌀은 맛없어서 밥쌀로 못쓰고 가공에나쓴다” 했었다.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역으로 쌀맛을 구분하는 관념이 남아 있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통일벼와 아키바레만 있던 시절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 오대, 신동진, 일품, 호품, 삼광 등 지역에 걸맞은 쌀을 재배하고 있다. 쿠팡 시절 지역 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쌀이 있었다. 포항에서 재배한 삼광이었다. 밥맛이 다른 어떤 지역의 쌀보다 맛있었다. 가격 은경 기미보다 저렴했다. 가격은 경기미보다 비싸지만 밥맛이 월등했던 안동의 백진주도 있었다. 근래에는 충남 서산에서 재배한 골드퀸 3호를 주로 먹고 있다. 골드퀸 3호는 반 찹쌀계로 아밀로스 함량이 13%로 고시히카리나 추청보다 아밀로스 함량 3~6% 적어 쫀득한 식감이 일품이다. 쌀을 구입할 때 지역을 고려하는 것은 시대 상황과 동떨어진 선택이다. 품종을 선택해 내 입맛에 맞는 쌀을 찾는 것이 먼저다. 그다음 도정일자 빠른 것을 선택하면 된다. 굳이 지역 프리미엄이 붙어 있는 쌀을 비싼 가격에 살 이유가 없다.
“근현대 한국 쌀의 사회사”를보면 밥맛 좋은 쌀이 보인다. 근래에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