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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Apr 30. 2024

지극히 미적인 시장_창원

새벽시장은 옳다.

새벽시장은 옳다. 뭐가 옳을까? 전국의 새벽시장을 거의 다 가본 결과 일단은 가격 저렴! 음식점을 하든 아니면 일반인이든 저렴한 가격만큼 좋은 것이 없다. 게다가 물까지 좋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처음 새벽시장은 만난 것은 삼척이다. 

삼척 새벽시장

2019년, 늦겨울 새벽의 삼척은 신세계였다. 이 선도에, 이 생선이 이 가격에? 놀라면서 지갑을 열었던 기억. 이후로 강릉, 원주, 전주, 군산까지 각각의 색채를 입고 있는 시장은 오일장이나 상설시장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마산어시장의 새벽시장은 일요일에 열지 않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미답의 새벽시장이 있었으니 바로 창원 새벽시장이다. 창원에는 두 개의 새벽시장이 열린다. 일요일에만 열리는 시장과 매일 어시장에서만 열리는 시장이 있다. 매일 열린다고 하는데 내가 간 일요일은 쉬는 날이었는지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었다. 일요일만 열리지 않는다면 주말 창원 여행 시 토요일은 어시장을, 주말은 일반 새벽시장을 가면 여행의 재미가 더할 듯싶다. 새벽을 달려 어시장에서 꽝을 치고는 3km 정도 떨어진 새벽시장으로 갔다. 롯데마트 마산점을 찍고 갔다. 마트 근처 가기 전부터 길가에 주차가 많이 되어 있었다. 주차 분위기만 보더라도 이건 ‘진국’이야 하는 감이 왔다. 6년 차 시장 전문가의 촉이다. 서둘러 주차하고 시장 구경에 나섰다. 창원 상남시장 주변으로 오일장을 갔던 적이 있다. 바닷가를 품고 있는 시장치고는 재미가 별로 없었다. 상남시장 오일장을 몇 번 찜 쪄 먹고도 남을 정도의 재미가 있었다. 

새벽시장은 선수와 비선수의 격전장이었다. 앞에 바구니 몇 개에 한두 품목만 놓고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다양한 품목을 전시하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방문은 4월 말, 여전히 봄나물이 대세, 대부분 창원과 인접한(?) 하동이나 산청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늦봄, 남쪽 지방의 장터를 사면 꼭 사는 게 제피, 산초라 부르는 초피 잎이다. 사서 장아찌를 담거나 아니면 냉동고에 두었다가 매운탕이나 라면 끓일 때 조금씩 넣으면 그만이다. 제피 잎 파는 곳을 보면서 쓱 지났다. 가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잎의 크기를 봤다. 잎이 작은 것이 향도 적당하고 부드럽다. 이런 것으로 전을 부치면 먹기 전부터 침샘이 솟는다. 

몇 군데 제피 잎 파는 곳 중에서 조금만 가지고 나온 할매 것을 두 대야를 샀다. 제피 잎을 사면서 보고 지나쳤던 줄기가 보라색인 돌미나리 또한 같이 샀다. 둘만으로 전을 부치면 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 전을 부칠 때는 물 조절이 관건. 씻은 다음 물기를 털지 않고 그대로 입구가 넓은 그릇에 담고는 달걀 하나와 소금 조금에 부침가루 조금 넣고 버무리면 반죽 끝이다. 이 상태로 전을 부치면 겉은 부침가루의 아삭함이 속은 나물의 촉촉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게다가 밀가루가 적은 밀가루 사용으로 빠르게 부쳐낼 수 있어 ‘겉바속촉’이 가능하다. 

바다를 품고 있기에 개조개 파는 이들이 꽤 있었다. 알 크기가 큰, 바닷속에서 채취한 바지락 또한 꽤 괜찮아 보였다. 바지락을 살까 하다가 조금 더 구경하다가 수산물, 말 그대로 다양한 어종이 있는 난전과 맞닥뜨렸다. 눈에 우선 띈 것은 커대란 민어 두 마리. 한 마리는 배가 홀쭉하다. 배가 정상인 녀석 가격을 물으니 4만 원이다. 한 마리 구이용으로 손질해달라 하고는 바닥에 버리듯 쌓인 생선에 뭐가 있는지 살펴봤다. 홍어, 붕장어, 감성돔, 볼락류를 비롯해 자리돔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커다란 은대구 가격을 물으니 한 마리 1만 5천 원. 만일 민어를 사지 않았으면 은대구를 샀을 것이다. 구이용으로 은대구만 한 것이 없다. 대구 친척 같은 이름이지만 대구와는 상관없는 농어목의 물고기로 실제 이름도 붉은 메기다. 현지 식당에선 명랑이라고도 한다. 오랜만에 시장 보는 재미를 느낀 창원 새벽시장이었다. 이번에는 새벽 어시장을 놓쳤지만, 그래서 몇 개월을 보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겨울이 오면 새벽시장 구경을 할 것이다. 여름도 있는데 왜 겨울까지 기다려야 하지? 지금부터 바다는 맛있는 것을 덜 내준다. 겨울이 올 때까지 맛을 채우는 시기인지라 그렇다. 창원의 새벽시장은 재미지고, ‘맛진’ 시장이다. 근처라면 자주, 애용하는 시장이 됐을 것이다. 

천일염과 버무려서 통에 담아준다. 그냥 액젓 사는 게 낫다

창원 새벽시장을 보고는 부산 기장으로 향했다. 고속도로상으로 약 70km 정도. 수많은 산지를 다녔지만 멸치 터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작년에 일부러 멸치 터는 것을 볼 생각으로 오일장 취재 가는 김에 다녀왔는데 너무 일러 보지 못했다. 기장 대변항에 도착하니 항구의 한쪽 면을 가득 채운 임시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잡아 온 멸치를 천일염을 더해 즉석에서 비벼 주는 점포다. 점포마다 그물에서 털어낸 멸치가 상자 가득 쌓여 있었다. 상점 뒤는 배를 댈 수 있는 곳이다. 마침 딱 배 한 척이 잡은 멸치를 털어내고 있었다. 그물코에 걸린 멸치를 여럿이 달라붙어 털고 있었다. 뱃일이 참으로 고된 일이지만 멸치 털어내는 일은 고됨의 강도를 끝없이 밀어 붙이는 듯 보였다. 이렇게 힘들게 떨어낸 멸치에서도 계급이 결정된다. 

형태가 온전한 것은 횟감용이다. 그물에 어설프게 걸려서 대가와 내장이 온전하다.

모양 좋은 놈은 조림이나 횟감으로 사용되고 나머지는 그냥 액젓용이다. 액젓용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냥 액젓 사는 게 좋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액젓은 생선, 소금 그리고 시간이 만든다. 멸치에 천일염으로 버무린 다음 공기가 통하지 않게 해서 긴 시간을 보관해야 한다. 맛이 완성되는 시간은 일도, 달도, 월도 아닌 년이다. 그것도 3년이 시간이 켜켜이 쌓여야 비로소 액젓 완성이다. 오늘 담아서 3년 뒤에 꺼낼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잘 만든 액젓 사는 게 이득이지 않을까 한다. 직접 보는 것 외에는 어떤 장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오기 허전해서, 멸치 횟감 파는 곳에 잠시 들려 조금 샀다. 큰 멸치, 여수 쪽에서는 이런 멸치를 정어리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멸치회는 맛이 별로다. 개인적인 취향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산란기의 부드러운 식감은 나와 맞지 않는다. 회무침할 때 창원에서 산 제피 잎을 넣으니 그제야 맛이 났다. 멸치회 무침을 먹으면서 눈감고 생선 이야기를 안 해주고 테스트를 한다면 서대, 준치, 반지, 웅어, 전어 구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나는 구분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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