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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D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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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Jun 12. 2024

좋은 올리브유를 갈색병에 담는 이유

 

오일장에서 가장 바쁜 곳은 기름 짜는 방앗간이다.

몇 년 전부터 저온압착 기름이 유행이다. 로컬매장이 있는 지방의 어디를 가나 저온압착 참기름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좋은 현상이다. 참기름에 대한 어릴적 기억은 어쩌다 방앗간에서 짜온 진한 향의 참기름이 전부였다. 하얀색 소주병에 담긴 참기름의 고소한 기억이 아련히 남아 있다. 참깨를 수입하지 않던 시절의 추억이다. 

참기름은 고소해야 한다는 생각을 깨고 세상에 나온 것이 저온압착 참기름이었다. 2013년도 지리산에서 처음 그 참기름을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 “굳이?”였다. 저온압착이란 게 참깨와 참기름에 있어서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물음만 가지고 있었다. 참기름과 들기름을 사용해 보니 그동안 고정관념에 쌓여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고온에서 참깨를 볶아 기름을 짜면 진한 향이 의례 참기름의 향으로 알고 있었다. TV 속 CF에서 “진하고 고소해요”라는 멘트를 신봉하고 살아왔음을 알았다. 저온에서 볶은 깨에서 짠 기름은 진하고 고소하지 않았다. 뭔가 심심한, 참기름처럼 강렬한 임팩트가 없는 기름이었다. 그러나 작은 반전이 있었다. 저온에서 볶은 기름은 다른 식재료의 향을 헤치지 않았다. 고온에서 볶은 깨에서 추출한 기름은 음식의 향을 지배했다. 나물에 넣든, 어디에 넣든 온통 참기름 향이 지배했다. 여전히 우리는 그것이 한식의 맛이라 하기도 한다. 웃기는 소리. 저온에서 추출한 기름은 식재료의 향과 조화를 이룬다. 향을 건드리지 않고 더 빛나게 해준다. “설마?, 뻥!”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싶다. 먹어 보지 않고 예단했던 2013년도의 나도 그랬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저온압착 참기름 넣고 비빈 밥을 먹는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저온압착으로 기름 생산하는 곳이 많아졌다. 많아진 것은 좋은데 이상하리만큼 포장에 관련한 것은 거의 동시다발로 퇴보하고 있다. 애써 기름을 잘 짜서는 쉬이 상하는 병으로 바꾸고 있다. 올리브유는 두 개의 버전이 있다. 엑스트라 어쩌고저쩌고하는 기름의 병을 생각해보자.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휴대전화기를 들어 검색을 해보자. 검색은 엑스트라 올리브유면 된다. 그다음 그냥 올리브유로 검색을 해보자. 두 오일의 차이가 비싸고 싸고 가격만 보여도 괜찮다. 그럴 수 있다. 그다음은 용기를 보자. 대부분 엑스트라 오일은 불투명에 담겨 있는 반면에 다른 것은 투명하다. 이유는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엑스트라 올리브유는 압착으로 추출한다. 눌러서 짜기에 추출되는 기름의 양은 적지만 불포화 지방이 많은 기름이다. 그냥 올리브유는 여기서 짜고 남은 것이나 올리브 열매를 용매에 넣고 추출한 것으로 효율이 높으나 포화도가 높다. 불포화도가 높다는 것은 산화에 약하다는 것. 기름의 산화를 진행하는 3가지 요소는 산소, 빛, 열이다. 그래서 엑스트라 올리브유를 불투명 병에 꽁꽁 감싸서 보관하는 이유다. 포화도가 높으면 산화 안정성이 좋다. 일반 올리브유, 해바라기유, 대두유 등 튀김용 오일이 다들 투명 병에 담긴 까닭이다. 올리브유가 아니어도 불포화도가 높은 코코넛유, 아보카도유 등도 전부 갈색 병에 담겨 있다. 다들 빛이 얼마나 기름 산화에 관여하는지 알고 있기에 그렇다. 이들이 이쁘지 않은 갈색병에 담는 이유가 디자인에 대한 감성이 부족해서 는 아닐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식품 안정성이 우선으로 두기 때문이다. 우리네 식품 MD는 디자인 감성이 너무 뛰어나 불투명 갈색병에 든 저온압착 기름을 전부 투명 병으로 바꾸는 디자인 혁명(?)을 일으켰다. 한 번은 XX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기름병을 보고는 깜짝 놀라 업체와 유통업체 담당에게 이야기하니 한쪽은 손님이, 한쪽은 담당이 원해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탄한 적이 있었다. 다음에 다시 개선되어 다행이지만 여전히 세상의 저온압착 기름은 투병한 병에 담겨서 유통하고 있다. 식품 MD가 공부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유통업체의 누구도 투명 병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을 알지 못했거나 알아도 디자인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지나쳤을 것이다. 특히 들기름의 경우는 불포화도가 참기름보다 높다. 참기름의 소비기한보다 짧다. 그런데도 같은 병에 담는 만행(?)을 여전히 저지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기름의 산패가 이뤄지는 게 들기름이다.  

2024년 6월, 일산에서 열린 식품 박람회에 다녀오면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도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지만 다시 쓴다. 이날 전시회에 나온 프랑스나 이탈리아, 멕시코의 오일은 전부 갈색병에 담겨 있었다. 우리네 참기름이나 들기름 거의 전부 투명한 병에 담겨 있었다. 저온압착을 하지 않던 시절에는 갈색병이었다. 기름을 짜는 방식을 최신으로 바꾸고 보관은 가장 떨어지는 방식으로 퇴보했다. 진보와 퇴보를 동시 진행하다 보니 여전히 우리네 기름은 그 자리에 있는 듯 보였다. 유일하게 저온압착 기름을 갈색 병에 보관하는 곳은 딱 한 군데였다. 지리산처럼! 12년 전에 지리산 남원에서 봤던 그 업체만 유일했다. 

#음식 #음식강연 #음식인문학 #식품MD

https://brunch.co.kr/publish/book/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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