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강화군을 가려면 경기도 김포를 거쳐서 가야 한다. 거치지 않고 가려면 영종도에서 따로 배 빌려 타고 가는 길이 유일. 강화도를 가려면 김포를 거쳐야 하기에 강화 오일장과 대명항 수산시장을 같이 돌아봤다. 사실 이런 일정이 꽤 괜찮다. 강화도에 외포리 수산시장이 있으나 수산물보다는 새우젓에 집중되어 있다. 강화 상설시장 또한 대명항과 비교하면 수산물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 약점 아닌 약점이다.
강화 풍물 시장은 2, 7장이다.
강화 오일장은 2, 7장이다. 강화읍 상설시장 주변에서 열린다. 시장 내 주차장이 있어 주차 또한 편리하다. 상설시장의 1층은 채소, 순무 김치, 젓갈, 수산물, 잡곡 등의 상점이 있다. 2층은 식당가로 주메뉴는 밴댕이다. 밴댕이의 제철은 봄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제철은 겨울부터 초봄까지다. 강화도에 벚꽃이 피기 전까지가 내가 보는 제철이다. 꽃이 피면 산란이다. 산란기의 생선은 많이 잡히나 제철이라 보기는 어렵다. 많이 잡히던 때를 제철이라 여기던 풍습이 관행이 되어버린 결과다. 겨울 밴댕이의 고소한 맛은 먹어본 이들은 안다. 여름 밴댕이, 특히 9월의 밴댕이는 맛이 심심하다. 여름철에 굳이 찾아 먹을 생각이 들지 않는 생선이다. 2층 식당들 사이에 떡 만드는 곳이 두 곳이 있다. 강화도 쑥으로 만드는 떡이 꽤 괜찮다.
오일장은 할매들 구역과 전문 장사꾼이 갈라져 있다. 주차장 쪽은 강화도 할매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상설시장 쪽 구역은 전문 장사꾼 구역이다. 할매 쪽은 바구니 앞에 두고 근처에서 재배한 것이 주 품목, 다래며, 밤이며, 열무, 가지 등이 주 품목이다. 전문 장사꾼은 생선부터 일반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품목이 다 있다.
9월 말, 시장에는 수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밤과 고구마, 땅콩이 많았다. 셋 모두 땅속에서 캐낸다. 땅콩은 바로 삶아 먹으면 좋지만 둘은 두고 있다가 먹어야 제맛이 난다. 둘 다 숙성이 필요하다. 갓 캐냈을 때는 전분이 많다. 시간을 두고 숙성을 하면 효소는 전분을 이당인 엿당, 즉 말토스로 바꾼다. 익은 군고구마에서 나는 달콤한 향이 엿당의 향기다. 처음 캔 고구마는 퍽퍽하다. 이는 밤이든 물이든 호박이든 다 같다. 시간을 두고 전분은 엿당으로 바뀌면서 물성이 조금씩 바뀐다.
갓 캔 고구마는 퍽퍽하다. 두어 달 지나야 제맛이 든다.
변하는 정도가 달라도 시간이 쌓이면 퍽퍽한 밤도 물고구마처럼 말랑거린다. 햇호박고구마 사서 찌거나 구웠을 때 퍽퍽한 질감에 놀란 적이 한두 번 있을 것이다. 고구마 특성이 원래 그렇다. 이는 밤도 마찬가지다. 전분이 사람이 단맛을 잘 느끼는 이당과 단당으로 분해가 되어야 맛있다. 고구마나 밤은 햇것이 무조건 맛있지는 않다. 9월과 10월 사이에는 이들은 박스로 사는 것보다는 조금씩 사서 맛보는 것을 권한다. 맛이 들지 않은 것을 박스로 굳이 사서 처박아 놨다가 싹 틔울 필요는 없다. 산 고구마는 빛을 차단한 실내 온도에서 보관하는 것을 권한다. 차가운 곳에 두면 냉해를 입는다.
우엉을 말렸다. 1년 두고두고 쓴다.
오일장을 오면서 사려고 마음먹은 게 우엉이다. 가을이 되면 뿌리채소들이 제철이다. 연근을 비롯해 토란, 우엉이 대표다. 그중에서 우엉은 가을에 사서 말려서는 일 년 내내 사용한다. 말린 우엉은 수육이나 백숙 등의 고기 요리에 빠지지 않는다. 기름진 맛을 차분하게 만드는 게 우엉이다. 파는 곳을 찾아보니 딱 한 곳. 한 개에 2,000원. 세 개 5천 원 주고 샀다. 재래시장의 묘미는 이런 흥정에 있다. 강화도 오일장에서 가을이 깊어지면 고구마도 좋지만 이것 하나는 꼭 사야 한다. 백합이다.
백합은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자란다. 강화도의 바다는 한강, 임진강과 북한의 예성강이 흘러들어온다. 질 좋은 백합이 근방의 갯벌에 나온다. 모든 갯벌에 있지는 않다. 모래가 적절히 섞여 있는, 거기에 민물이 흘러들어와야 백합이 잘 자란다. 강화 근처 볼음도 산이 많았다. 가을 지나 강화 오일장에 간다면 고구마와 백합은 꼭 사야 한다. 맛이 다르다.
시장을 빠져나와 길상면에서 가서 빵을 사려고 했다. 오래전부터 천연발효종으로 빵을 만드는 곳이다. 매번 갈 때마다 수, 목 쉬는 날이었다. 방문한 날은 금요일. 괜찮겠다 싶어 갔지만 역시나 임시휴일. 나랑 인연이 닿지 않는 빵집이다. 길상면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초지대교가 있다. 초지대교 건너면 바로 대명항이 나온다. 수도권의 항구답게 관광지로 변한 항구다. 관광지 항구의 특징이 가격이 다소 나간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바가지가 심하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다. 바닷가에 떨어진 소래 중심의 상가와는 달리 심한 호객도 없다. 다만 현금을 권하는 건 여전했다. 가을은 여름 산란을 마친 꽃게가 살을 찌우는 계절. 봄은 암게, 가을 수게라는 말은 실상은 맞지 않는다. 누가 만든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봄에는 수게를 사고 가을에는 암게를 산다. 사람들이 찾지 않은 걸 사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다. 살이 없지 않을까?
둘 다 살이 차 있다. 금어기인 산란기를 빼고는 살은 다 꽉 차 있다. 우리의 인식만 가을 수게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꽃게를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살만 발라서 양념으로, 게장, 탕, 찜 등으로 먹는다. 내가 꽃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된장에 조리는 것이다. 어릴 때 인천에서 자랐기에 가을이 되면 가끔 꽃게 조림이 밥상에 올라왔다. 그때는 그게 수게인지 암게인지 몰랐다. 어느 것은 알이 있었고 어떤 것은 없었다는 구별만 있었다. 만드는 방식은 간단하다. 물을 끓인다. 마늘과 된장, 그리고 설탕 아주 조금 넣는다. 꽃게를 넣는다. 40분 조리면 끝난다. 맛은 된장과 꽃게가 알아서 낸다. 내 입맛에는 간장 게장 뺨을 475대 때리는 맛이다. 갑각류는 열을 받아야 특유의 향과 맛이 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생각에 딱 맞는 요리가 된장 조림이다. 대명항에서 꽃게 살 때 팁은 다리가 떨어진 녀석을 사는 게 좋다. 다리 다 달린 것은 비싸다. 같은 날 모양 좋은 것은 25,000원(강화도 오일장도 같았다), 다리 떨어진 암게는 15,000원이었다.
꽃게 된장조림
선택은 사는 사람의 결정. 29년 차 식품 MD인 나는 15,000원짜리로 4kg 사서 잘 먹었다. 여기는 아이스박스 가격을 따로 받는다. 갈 때 보네 팩 챙겨가면 2,000원도 절약하고 환경 보호도 할 수 있다. 보름달이나 초승달일 때 가면 더 저렴하다. 물살이 세서 게가 많이 잡힌다.